10. 시절인연

7일 차, 로스 아르코스 - 로그로뇨 27.6km

by 한번만 더

8월 8일


다들 이른 새벽부터 결연하게 부스럭 댔다. 로그로뇨까지 28km나 되므로, 평소보다 먼 길을 가야 하기 때문이다. 치즈와 하몽을 넣은 커다란 샌드위치를 만들어 반은 간식으로 싸고, 반을 아침으로 먹었다.


짐을 싸며 공용 콘센트에 꽂아놓은 배터리와 케이블을 회수했다. 그런데 위치가 바뀌어 있었고 배터리는 충전되지 않은 상태였다. 확인해 보니 케이블이 안에서 끊어진 모양이었다. 모레노가 자기 것 충전한다고 만지작거리던데 그때 뭔가 이상해진 모양이었다. 하지만 심증만 있을 뿐이고, 그저 때마침 고장이 났을 수도 있다. 설령 모레노 짓이라도 악의를 가지고 그런 것이 아닐 테니 굳이 뭐라 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모레노는 친절한 친구다. 친절하다는 건 세르게이와 모레노 등 이탈리아 친구들이 몸이 안 좋은 사람들을 응급 처치해 가며 다음 목적지까지 데려오기 때문이다. 중간에 주저앉은 사람들을 마사지해 주고 함께 걸어오기 때문에 세르게이와 모레노는 어제도 알베르게에 늦게 들어왔다.


우크라이나 출신 세르게이(이탈리아에서는 세르쥐로 통한다)는 접골사인데, 도착해서도 아픈 이들을 마사지해 주고 테이프를 붙여주는 등 계속 바빴다. 론세스바예스에서 수비리까지 걷는 길에 만났고 어제도 에스떼야에서 몬하르딘까지 함께 걸어온 바 있다. 그리고 모레노는 가위와 붕대가 든 커다란 응급처치 가방을 가져왔다. 세르게이에게 큰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로스 아르코스의 알베르게에는 건물이 두 개인데, 내가 묵은 본관 맞은편 건물엔 전기 꽂을 자리가 모자랐다. 침대 옆에 콘센트가 있는 게 아니라 화장실 앞에 있는 것을 공동으로 이용하니 이건 그리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도 밤새 남의 물건에 손대는 사람이 없었다. 애플워치, 에어팟, 모바일폰 등이 밤새도록 그대로 남아 있었다.



아무튼 배터리가 5%뿐인데 이대로면 가는 길에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이미 우리는 모바일폰에 매여 살아간다.

일단 누군가의 케이블로 30%까지 충전하고 출발했다. 출발 준비는 일찍 끝났지만 이것 때문에 거의 7시가 되어 출발했다. 가는 길에 배터리를 아껴 써야 했고, 로그로뇨에 도착하면 바로 케이블부터 사야 했다.


여기서 강 선생님과 작별을 했다. 강 선생님은 천천히 출발해서 중간 어느 마을에서 멈추실 모양이다.



동쪽 뒤를 돌아보니 하늘이 뿌옇게 밝아왔다. 뒤꿈치 물집 잡힌 곳이 좋지 않아서, 어제보다 속도를 조금 늦춰 걸었다. 다라와 메리 등 아이리쉬 친구들이 인사하며 추월해 갔다.

파스칼과 페데리카를 만났다. 파스칼은 프랑스, 페데리카는 이탈리아 출신이다. 그러나 자기들은 절대 프랑스나 이탈리아 사람이라고 하지 않는다. 파리 사람, 밀라노 사람이라고 한다. 파리지앵은 그러는 거 익히 알고 있었고, 이탈리아는 남부 북부 격차가 심해 그런다고는 알고 있었지만, 밀라노 산다고 실제로 그러는 건 처음 봤다.


이번이 세 번째 까미노인 파스칼은 무릎이 좋지 않아 쉬고 버스 타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페데리카도 골반과 엉덩이 쪽에 문제가 있다고 했다. 이젠 문제가 없는 사람이 더 적었다.


빰쁠로나 알베르게 앞에서 처음 만났던 파스칼


파스칼이 다 나은 것 같다며 속도를 올리더니, 결국 무릎을 부여잡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내리막을 게걸음으로 천천히 내려올 수밖에 없다. 내가 파스칼과 간다며 페데리카 보고 먼저 가랬더니, 자기도 같이 가겠다 하였다. 결국 이렇게 세 명이 오늘의 최후미 그룹을 형성했다. 중간중간 모든 곳에서 쉬어가며 일단 다음 마을인 비아나까지는 가기로 했다. 거기 가서 상태를 보고 버스를 타거나 걷거나 정하기로 했다.

평소 같았으면 후다닥 지나쳤을 작은 쉼터 Casita Lucia에서 멈추어 쉬었다. 한국 분들이 남긴 한글이 여기저기 가게 벽에 쓰여있었다. 오래된 스피커에서 들릴 듯 말 듯 흘러나오는 노래는 음질이 깨끗하지 않아 오히려 정겨웠다. 나무 그늘 아래 앉아 놓인 테이블에 앉아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콜라를 한껏 들이켰다. 목구멍 깊이 쩌릿한 느낌이 좋았다. 둘이 피워대는 담배연기조차 달콤하게 향기로웠다.


페데리카와 파스칼, Casita Lucia 에서


비아나 입구에 있는 작은 공원에 도착했다. 나무 그늘 아래 벤치와 테이블, 샘까지 모든 것이 반가웠다. 공원의 벤치에서는 모레노와 세르게이가 두 명을 마사지 중이었다. 여기에 파스칼과 페데리카를 맡겨 두고, 마사지가 끝난 독일 여학생과 출발했다.


함부르크에서 온 조나는 피부가 유난히 창백하고 약한데, 선블록을 바르지 않고 반바지만 입고 다녀 다리의 화상이 매우 심했다. 그 외 물집과 근육통 등 온갖 고통에도 시달리고 있었다.


걷는 속도도 매우 느려 어제 저녁때가 다 되어서야 새빨갛게 익은 다리를 끌고 로스 아르코스 알베르게에 들어왔었다. 그리곤 어찌나 힘들었는지 저녁 식사와 음악회도 전부 생략한 채 바로 자러 가더니, 아침엔 5시에 알베르게를 떠나는 걸 보았다. 걸음이 느리니 일찍 출발하려는 모양이었다. 팜플로나에서 하루를 더 쉬며 짐을 5kg 정도 덜어 집에 소포로 보냈다는데 아직도 배낭이 10kg은 족히 된다. 힘들면 스틱을 쓰라는 말을 듣고 스틱을 샀다고 한다. 그녀의 배낭엔 한복 입은 인형이 매달려 흔들리고 있었다.



조나에게 양산을 씌워주었다. 양산을 쓰고 가는 게 뭔가 부끄러운 눈치지만 타는 건 싫으니 꾹 참고 가는 듯 보였다. 비아나부터 로그로뇨까지 11km쯤 양산을 함께 쓰고 왔다.



나바라를 벗어나 라 리오하에 진입했다.


오늘 묵을 곳은 라 리오하의 주도인 로그로뇨이다.

로그로뇨 공립 알베르게를 찾아 들어갔다. 공립 알베르게는 대개 비슷비슷하다. 이제는 와이파이 잘되고, 콘센트 많고, 빨래 널어둘 곳이 많으면 좋은 곳이라 생각한다. 벙크 아래쪽 침대를 쓸 수 있다면 금상첨화이다.




숙박이 10유로, 건물 내부엔 계단이 많았다. 여기까지 오면 죄다 다리가 말을 안 들어 계단과 탑 벙크 오르기를 기피하게 된다. 샤워실 화장실은 남녀 층별로 분리되어 있다. 리셉션엔 엄지손가락 쪽쪽 빨며 이어폰 끼고 인터넷만 보는 아저씨가 앉아있었다. 맨 위층까지 와이파이가 잘 오지 않지만 다행히 전기 충전할 곳은 넉넉한 편이었다. 당연한 것이 당연하지 않음을 겪어봐야 고마움을 실감하게 된다.


조나는 기부제 알베르게로 들어갔다. 한번 안을 둘러봤는데 침대 놓인 것도 그렇고 공립과 아주 비슷해 보였다. 조나는 이 정도면 깨끗해서 마음에 든다고 했다. 성격이 크게 까탈스럽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3시가 넘어서야 클라우디아 할머니가 붕대투성이 다리를 절며 들어왔다. 분명 중간에 세르게이와 모레노를 만난 모양이었다.



공립 알베르게의 마당에는 발을 담글 족욕탕이 있다. 다들 발을 담근 채 둘러앉아 담배와 맥주를 즐기며 스몰토크를 나누었다. 무릎 쪽이 좋지 않아 세르게이에게 의견을 물었다. 이리저리 만져보고 눌러보더니 크게 심각하지 않다며 근육이 강화되면 차차 좋아질 거란 대답을 들었다. 세르게이에게 콜라를 한 캔 뽑아 권했는데 그는 물만 마신다며 사양했다.


이탈리아 친구들이 저녁으로 리소또를 할 거라며 같이 먹자고 했다. 그래서 저녁시간이 되기 전에 미리 타파스 거리를 구경하러 나섰다.



이렇게 삐뚤빼뚤하게 건물을 지어도 이상이 없는 걸까 의심되었지만, 언제부터인가 똑바른 것보다 기울어지고 구부러져 있는 것에 더 마음이 갔다. 이 세상에 완전무결한 것은 없으므로.


알레-홉


알레-홉은 우리나라로 치면 아트박스나 다이소 1층 같은 포지션이다. 각종 케이블이나 이어폰 등 전자 잡동사니들을 구할 수 있다. 큰 도시마다 있다. 2m짜리 충전 케이블을 10유로 주고 샀다.




타파스 거리는 로그로뇨의 명물이다. 낮장사를 노리고 일찍 여는 집이 간혹 있지만 대개 8시는 넘어야 본격 영업 개시다. 여기서 하루 더 머물겠다면 첫날에는 통금 없는 숙소를 잡고, 둘째 날을 공립에서 묵도록 하자. 첫날은 늦게까지 놀고, 그다음 날은 공립에서 묵고 원래대로 출발하는 게 정석이다. 첫날을 공립에서 묵으면 통금 때문에 이틀 묵는 의미가 별로 없다. 그래서 제이크 일행은 신나게 마시고 놀 요량으로 에어비엔비를 잡아서 갔다. 로그로뇨의 양송이 타파스와 잔술에 가산을 탕진하는 분들이 많다고 한다.


파란 점 찍힌 곳이 공립 알베르게이고, 표시해 둔 구역이 먹자골목이다.


8시나 되어야 문을 연다


훤 해 보이지만 이미 8시가 다된 시간이다



혹시 타파스 주문이 어렵다면 참고하세요.

https://m.blog.naver.com/nicechopin/223303714660


9시쯤 넘어 그레타가 요리한 리소또로 저녁을 먹고 리오하 와인 세병을 땄다. 알아듣지 못하는 이탈리아어 대화가 음악처럼 노래처럼 들렸다. 중간중간 알아듣는 이탈리아 단어는 음악용어뿐이니까 그런 모양이다. 열두어 명이나 되다 보니 접시와 냄비가 수북하게 쌓였다. 보답으로 식사 후 설거지를 말끔하게 해 주었다.


다들 피곤해 보였지만 이야기는 그칠 줄 몰랐고 나는 너무 늦기 전 살짝 빠져나와 잠자리에 들었다.


옆 침대에 자리 잡은 유르겐 아저씨는 이미 잠들어 있었다. 이게 독일과 이탈리아의 차이인가 하며 얼른 일반화해 버렸다. 이 독일 아저씨와 첫날 생장에서 같은 숙소를 썼었는데 여기서 또 만났다. 아마 내일도 또 보겠거니 생각했다.


6:50 ~ 2:30

로스 아르코스 ~ 로그로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