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오늘도 순례길은 술례길

8일 차, 로그로뇨 - 나헤라 29.0km

by 한번만 더

8월 9일 수요일



워킹 스틱이 생겼다. 마리아가 걷기를 포기하며 자기 것을 주고 갔다. 몬하르딘에서 주웠던, 그동안 잘 써오던 대나무 지팡이는 남겨두었다. 또 필요한 누군가가 주워 갈 것이다.


로그로뇨에서도 마리아를 비롯해 꽤 많은 이들이 집으로 돌아갔다. 벨기에에서 온 커플은 애초에 로그로뇨까지만 걷기로 했다 한다. 한국 분 한 분도 올해는 여기까지만 걷는다고 하신 것 같다. 또 몇몇은 로그로뇨에 하루 더 머물겠다며 남았다. 물론 새로 합류한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누군가 남기고 간 타월이 주방에 쓰이고 있었다


어제 28km의 쓴맛을 봐서인지, 오늘도 다들 재깍재깍 일어났다. 해가 뜨기 전에 한 발짝이라도 더 가려는 마음은 다 똑같았다.


현관으로 내려가 신발을 신으려는데 얼굴이 울상인 파스칼과 마주쳤다. 막 가방을 메고 나서려던 그녀는 다시 가방을 내려놓으며 양쪽 다리가 전부 아파 나서지 못하겠다고 했다. 아마 버스를 탈 모양이었다. 오른쪽 무릎이 안 좋으니 왼쪽 다리가 보상 동작을 하고 있었고, 그 때문에 왼발 새끼발가락이 점점 안 좋아지고 있었다. 나도 무릎이 아프다 했더니 자기는 오늘 걷지 않으니 쓰라며 무릎 보호대를 벗어주었다. 거절하지 않고 받아서 차고 나왔다.


파스칼과 페데리카는 어제 병원에 다녀왔다고 했다. 그제 비가 그친 후 더위가 시작됐고, 이미 150km 도 넘게 왔으니 이쯤에서 어딘가 병이 나거나 힘들어 포기한다 해도 전혀 이상한 건 아니었다. 오히려 탈이 나지 않는 게 신기할 지경이다. 아무리 건강한 사람도 누구나 물집 몇 개씩은 가지고 있었다.


5시에 일어나서 준비했는데 이러저러하다 보니 5시 45분이 됐다. 알베르게를 나와서 걷다 보니 로그로뇨 외곽 즈음에서 조나의 뒷모습이 보였다. 여전히 손에 잡은 스틱이 너무 길었다. 잠시 멈추라 해서 스틱을 줄여주고 잠시 노르딕 워킹을 가르쳤다. 얘도 몸치인지 왼발과 왼팔이 같이 나온다.


이럴 땐 한쪽씩 땅을 찍는 연습부터 하는 게 좋다. 왼팔에만 스틱을 들게 하고, 오른발 나갈 때 왼팔로 스틱을 찍으라고 알려줬다. 한참 후 반대쪽도 똑같이 연습시키고 양쪽을 합치게 하니 과연 결과는? 영상에 보시는 바와 같다. 피아노 연습할 때 한 손씩 하고 합치는 것과 똑같다.


로그로뇨를 벗어나며 만난 호수에선 연신 커다란 고기들이 수면으로 뛰어오르고 있었다. 호수를 끼고돌아 다시 순례길로 접어들었다.



이렇게 물병을 놓아두는 이유는 개가 문 앞에 오줌 싸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정말 되는 건지 잘 모르겠다.

이레네

이탈리아에서 온 이레네. 나는 항상 그녀를 보면 “알료.”하고 말을 건넨다. 마늘이라니 내가 생각해도 참 뜬금없다. 그래도 그녀는 웃으며 항상 내 발음을 고쳐 준다. 내 이탈리아어 발음이 우스운 모양이다.



조나가 노르딕 워킹을 하게 되어서 예상보다 빨리 나바레떼에 도착하였다. 전에는 시속 2km였는데 오늘은 세 시간 반 만에 12km를 넘게 주파하다니 본인도 놀라워하는 눈치였다.


카페에 앉아 잠시 쉰 후 조나를 두고 먼저 길을 떠났다. 아름다운 나바레떼를 잠시 돌아보고 상점에 들러 과일을 샀다. 그리고 마을을 벗어나 다시 들판으로 나섰다.


이젠 나헤라까지 16~17km쯤 남았다. 나도 어쩌면 쓰러지거나 피치 못하게 중도 포기를 해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저 최선을 다하리라 생각했다. 그래도 혼자 걷고 싶어졌다.



땡볕에서 한참을 걷고 거의 쓰러지겠다 싶을 때쯤 첫 번째 쉼터가 나타났다. 정자에서 신발을 벗고 잠시 누웠다. 다행히 습하지는 않아서 그늘에 들어오면 살만했다.



계속 이어지는 리오하의 야트막한 언덕엔 와인의 고장답게 끝없이 포도밭이 펼쳐져 있었다. 푸른 포도잎의 물결이 바람에 일렁였다. 완만하게 기운 언덕, 자갈 많은 석회질 토양, 여름의 풍부한 일조량, 온난 습윤한 겨울 등 포도 농사에 아주 좋은 조건이다. 보르도의 포도 산업이 초토화되었을 때 보르도 사람들이 리오하로 이주해 밭을 일구었던 것은 그런 연유다.


아직 다 익지 않아 아직 초록빛 기운이 돌건만, 탐스럽게 열린 포도가 침샘을 자극했다. 포도송이 끝이 뾰족 튀어나온 모양을 보니 이게 말로만 듣던 템프라니요 종인가 보았다. 어제 저녁에 뜯은 와인에선 살짝 보르도를 연상시키는 좋은 맛이 났었다.



열두 시 반에 두 번째 쉼터에 도착했다. 여길 지나고 나면 이제 나헤라가 멀지 않은 것이다.



한시 반경 시가지의 다리를 건너 공립 알베르게로 향했다. 나헤라의 공립 알베르게는 여기 오는 길만큼이나 악명이 높다던데 다른 데로 갈까 하다 직접 겪어보기로 했다.



나헤라 공립 알베르게의 숙박은 6유로이다. 싼 게 비지떡 아닌가 싶지만 의외로 있을 것이 다 있고 거실과 침실에 에어컨이 가동된다. 샤워와 화장실은 성별 분리되어 있다. 두 개씩밖에 없지만 사실 총 4개가 있는 셈이므로 크게 나쁘지 않다. 살짝 기다리니 차례가 금방 돌아왔다. 침실공간이 넉넉하고 침대는 나무 침대다. 순례자들이 나무 침대를 기피하는 이유는 나무 틈새에 베드버그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기대보다 훨씬 좋았는데 여기가 왜 시설이 안 좋다고 악명이 높았는지 모르겠다.


후에 듣기로 코로나로 문을 닫은 동안 침대 규모를 줄이고 내부 단장을 새로 했다고 한다. 그래서 지금은 많이 개선이 된 것이다.



주머니에 있는 동전을 모두 털어 기부함에 넣었다. 세탁기에 쓸 동전은 남겼어야 했는데 하고 나중에 후회했다.


체크인하고 40분 정도 지났을 무렵, 놀랍게도 조나가 도착했다. 조나와 함께 빨래를 모아 세탁기를 돌렸다. 오늘은 손빨래가 귀찮은 날이었다. 불볕더위에 빨래는 금방 바삭하게 구워졌다.




한국분 한분이 무거운 배낭과 함께 힘겹게 공립 숙소에 들어오셨다. 오선생님이라 하셨다. 인사를 하고 함께 시내로 나갔다.


시에스타 시간이 지났어도 무시무시한 열기는 계속 나헤라를 달구고 있었다. 어차피 해가 떨어질 때까지 더울 것이기에 얼른 상점에 다녀와 쉬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다. 뒷산이 예뻐는 보였지만 이 날씨에 언덕에 올라갈 일은 언감생심이었다. 거리 구경을 하다 일사병인지 싶은 살짝 어지러운 느낌이 들었고 얼른 에어컨이 있는 슈퍼마켓에 들어갔다. 단백질을 보충해야겠어서 저렴한 서민음식 삼겹살을 집었다. 그리고 곁들일 와인을 꽤 좋은 것으로 골랐다. 알베르게로 돌아와 고기를 구워 저녁을 함께 먹었다. 이렇게 저렴한 돼지고기라니 스페인으로 이사 올까 싶은 마음이 들었다.


이탈리아 친구들은 오늘도 여럿이 저녁을 함께 지어먹는다 했다. 순례자들로 가득한 주방과 테이블은 늦게까지 붐비고 활기찼다. 무더위에 여기까지 왔다는 별것 아닌 무용담을 자랑스레 서로 늘어놓았다. 시답지 않은 이야기와 서로 권하는 와인이 소등 시간까지도 끊이지 않았다. 오늘도 순례길이 술례길이었다.


5:45 ~ 1:45

로그로뇨 ~ 나헤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