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가느냐고? 무엇을 얻었느냐고?
이제 포르투에서 아침 9시 버스를 타고 파리로 돌아갑니다. 다음날 아침에야 도착하는, 자그마치 만 하루가 걸리는 긴 여정입니다. 버스 안에서 기억을 정리하며 글을 많이 쓸 생각이었습니다.
한 시간이나 일찍 나간 깜빠냥 터미널엔 버스회사 직원이 나와 있었습니다. 중간에 환승 안 해도 된다며, 티켓에 써진 것 아닌 다른 버스를 타라고 하였습니다.
믿어도 될까, 저는 여기 시스템이 영 미덥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러저러하는 사이에 원래 타기로 되어있던 9시 버스가 떠나버렸으니, 새로 온다는 버스를 기다릴 밖에 도리가 없었습니다. 아무튼 뒤늦게 버스가 한대 나타나 사람들이 반신반의하며 올라탔습니다. 예정된 시간보다 30분도 더 지나서야 드디어 버스가 출발했습니다.
버스는 아마란떼와 빌라 레알을 거쳐, 이 동네 저 동네 다 들러가며 천천히 스페인 쪽으로 향했습니다.
포르투갈을 벗어나 사모라에 다다르니 드디어 한번 더 보고 싶었던 메세타가 펼쳐졌습니다.
까예따나와 테레사가 여기서 가까운 곳 출신 이랬는데, 하며 괜히 남쪽을 한번 바라봤습니다.
부르고스를 지날 때쯤 누군가에게 “순례는 어땠어?” 하고 카톡을 받았습니다.
어땠느냐고요? 설명할 말이 없었습니다. 포르투의 호스텔에서 만난 사람들에게도 까미노가 뭔지 설명하려고 무진 애를 썼었습니다만, 겪어보지 못한 사람들에겐 어떻게 설명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한 달이 넘는 시간 동안 거의 천 킬로미터나 되는 길 위에서, 매일같이 일어났던 특별한 일들을 뭉뚱그려 “그냥 걷는 거야, 계속.” 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버스 안에서 또 눈물 지었습니다. 이게 무슨 꼴이람, 하며 눈물을 훔치다 말고 웃음을 지었습니다.
순례를 마치고 나니 눈물도 웃음도 말도 부쩍 많아졌습니다.
아타푸에르카에서 고개를 넘어 부르고스로 들어가던 그날이, 마치 어제인 것처럼 생생하게 떠올랐습니다. 버스가 공항 옆을 지나갈 때 순례자들이 걷고 있는지 쳐다보았으나 이미 늦은 오후라 길 위엔 아무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이 이 길을 걷는 이유는 정말 많습니다.
저렴하게 유럽 장기 배낭여행을 할 수 있어서, 뭔가 있어 보여서, 순례증을 받고 싶어서, 그냥 걷는 게 좋아서, 자연이 좋아서, 종교적 이유에서, 지친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자신의 한계를 넘는 도전을 하기 위해서, 트라우마를 극복하기 위해서, 벽을 무너뜨리고 스스로의 마음을 열기 위해서, 여행이나 사진 인스타그램의 콘텐츠를 위해서, 책을 쓰기 위해서, 뭔가에 몰입하고 싶어서, 살을 빼기 위해서, 연인과 함께하는 여행으로, 가족과 함께, 새 친구를 만들기 위해서, 사람들이 왜 걷는지 이유가 궁금해서, 스스로의 이유를 찾기 위해서, 심지어 이유 없이 걷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 외에도 많은 이유가 있고, 그 모든 게 정답입니다.
여기서는 각자가 원하는 것을 얻게 됩니다. 저마다 다른 말을 하는 이유는 각자 다른 것을 얻어오기 때문입니다. 친구를 원하면 친구를 얻게 되고, 바쁜 삶에 지쳐 혼자만의 시간을 갈구해 왔다면, 원하는 만큼 마음껏 고독해질 수 있습니다. 자연도 실컷 원하는 만큼 즐길 수 있고, 걷기를 좋아하면 원 없이 걷게 됩니다. 증표를 원하면 순례증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소셜 미디어에 인생샷을 올리며 조회수와 구독자를 얻을 수도 있습니다. 여러 가지를 동시에 얻을 수도 있습니다.
저는 운이 좋게도 많은 것을 얻었습니다. 대화에 열린 사람들과 소통하는 즐거움, 고통과 기쁨을 함께 나누며 공통된 목표를 추구할 때 느끼는 동지애, 그 연대 의식 안에서 마음의 상처가 치유되었습니다. 무뎌졌던 감정이 회복되고 눈물이 많아진 건 덤입니다.
하지만 원하는 모든 것을 얻지는 못합니다. 본인에 달려있기도 하지만 또 어떤 때는 운이 크게 작용하기도 합니다. 불과 몇 분의 차이로 누군가를 만나게 되거나 혹은 만나지 못하게 되기도 합니다. 일생일대의 경험이 되기도 하고, 실망하기도 합니다. 친구를 많이 만들고 싶어도 말이 통하지 않으면 어쩔 수 없이 혼자 걷게 되기도 합니다.
그리고 뭔가 얻지 않아도 좋습니다. 그저 가볍게 걷기만해도 좋습니다. 순례는 꼭 성과를 내야만 하는 비즈니스가 아니니까요.
인생을 바꿀만한 경험인가 물어보시면 제 대답은 “그렇다”입니다. 조금만 더 일찍 왔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생각이 잠시 들지만, 이번 8월이 완벽하고 가장 좋은 때였구나. 나는 이때 오도록 되어 있었구나 하는 결론에 다다르게 됩니다.
버스가 어느새 세느 강을 건넜고 파리에 돌아왔습니다. 하지만 스무 시간 동안 글은 단 한 문장도 쓰지 못하였습니다. 40일 만에 출발했던 그 자리로 돌아왔지만 저는 이제 예전의 제가 아니었습니다.
처음부터 이런 글을 쓰려던 것도 아니었으며, 제가 이렇게 많이 변할 줄도 몰랐습니다.
이젠 지난 40여 일간 저의 글이, 그리고 제가 어떻게 변해왔는지 다시 돌아볼 차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