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표 예매와 가방 챙기기
순례길에 대한 생각을 수년간 막연히 해왔었다. 언제부터, 왜 하게 되었는지도 정확히 모르겠다. 어느 다큐멘터리를 보고 멋지다고 생각해서였을까. 하지만 정작 구체적 계획은 세우지 않고 있었다. 몇 번인가 달력을 보고 계산기를 두드렸지만, 견적을 내볼수록 실행은 뒤로 미뤄져만 갔다.
언젠간 해야지, 언젠간 해야지.
엄청나게 힘들다던데. 여행에 드는 비용, 한 달이 넘게 걸리는 시간, 그리고 수고를 생각하면 발걸음은 쉽사리 떨어지지 않는다.
어디든 가야겠다는 마음이 든다면 일단 티켓을 끊고 볼일이다. 그래야 모든 일이 시작된다.
7월 중순, 파리에서 생장으로 내려가는 티켓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프랑스길의 출발점인 Saint Jean Pied De Port 생 장 삐에 드 뽀흐. 순례자들 사이에 흔히 생장으로 불린다. 생장은 작은 마을이라 파리에서 한 번에 가는 교통편이 없으므로 근처 도시에서 갈아타야 한다.
Bayonne 바욘까지 기차나 버스를 타고 가서 생장으로 다시 기차를 갈아타는 루트가 일반적이다. 그렇지 않으면 Biarritz 비아리츠까지 비행기를 타고 가서 바욘 이동 후 다시 생장으로 이동하는 방법도 있다.
일단 프랑스 철도앱 SNCF 커넥트에서 바욘행 기차표를 검색해 보았다. 파리 Monparnas 몽파르나스역에서 바욘으로 가는 TGV 떼제베도 있고 파리 Austerlitz 오스떼를리츠역에서 밤새 내려가는 야간열차가 있다. 바욘에 도착하기만 하면, 생장까지는 한 시간 거리이다.
https://www.sncf-connect.com/en-en/
유럽 내 도시 이동경로가 궁금할 때는 Rome2rio 앱을 사용하자. 출발도시 도착도시를 입력하면 여러 교통편과 경로를 보여준다.
다음과 같은 일정으로 예약하였다.
7월 31일 8:41 PM 파리 오스떼를리츠 역 출발
8월 1일 9:43 AM 바욘 도착
출발이 불과 보름 후이다.
[다음번에는?]
일정에 따라 버스, 야간 열차, TGV를 골라가자. TGV는 가급적 한 달전 예매, 야간 열차라면 침대차를 예약하겠다. 파리 드 골 공항에서 바로 바욘으로 가겠다면 버스를 선택해도 좋다.
바욘에서 생장으로 가는 열차는 예매해도 되고 현지에 가서 사도 된다. 열차가 취소되면 버스 대체 편이
운행하니 일단 바욘역으로 나가보자.
Albergue 알베르게
알베르게는 순례자를 대상으로 운영하는 호스텔 같은 숙소를 말한다. 공립과 사립이 있는데, 공립 알베르게는 비교적 저렴하여 장기 순례자들에게 큰 도움이 된다. 대개 예약을 받지 않고 선착순으로 들어간다. 순례자 여권을 가진 사람만 묵을 수 있다.
Credential 크레덴시알, 크레덴셜
순례자 여권이라고도 부르는 순례자의 신분증이다. 거치는 곳마다 여기에 세요 Sello를 찍어 본인의 순례를 기록, 증명하게 된다. 순례자용 알베르게는 이것이 없으면 받아주지 않는다.
Sello 세요
순례자 여권에 찍어서 그 지점의 통과를 증명하는 도장. 숙소, 성당, 까페, 안내소 등에 비치되어 있다. 각 장소마다 고유의 도안을 가지고 있으므로 모으는 재미가 있다.
일찍 가서 생장 공립 알베르게에 줄 서실 분들은 바욘에 오래 머무를 여유 없이 오전에 떠나셔야 한다. 사립 알베르게를 이용하실 분들은 예약 후 여유 있게 움직이셔도 좋다.
짐을 싸기 시작했다. 세세하게 알아보고 챙겨가는 것은 없다. 모자란 건 사서 쓸 예정이다.
슈퍼마켓에서 구입한 25리터 백팩.
사실 배낭은 가볍고 막 굴려도 되는 제품이 좋다. 배낭여행 몇 번 다니고 나니 크고 아름다운 브랜드 배낭이 필요가 없다는 걸 뼈저리게 느꼈다.
집엔 30만 원 가까이 주고 산 배낭이 있는데 이거 메면 배낭을 모시고 다니는 느낌이다. 길바닥이나 풀밭에 철퍽 앉기도 하고, 때로 비도 맞으며, 어깨끈이 땀으로 절여질 배낭여행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물건이더라. 그리고 기차, 버스, 호스텔에서 빈번히 노출되는 절도의 위험까지 고려하면 비싼 백팩은 배낭여행에 좋은 선택이 아니다. 그리고 너무 클 필요도 없는 게, 장거리를 장기간 가야 하는 순례길에선 짐을 최소화하는 게 중요하기 때문이다. 간식과 물까지 전부 포함해서 무게로는 7kg, 부피로 25리터를 넘기지 않는 게 목표이다. 짐의 무게가 무거워지면 무릎, 허리, 어깨가 짓눌리는 고통을 맛보게 될 것이다. 너무 무거워서 못 걷게 되면 버리거나 돈 들여서 배송서비스로 보내는 수밖에 없다.
[다음번에는?]
가방 크기에는 크게 불편함이 없었으나 바깥 포켓이 하나뿐이라 모든 물건이 뒤섞였다. 구분된 포켓이 몇 개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 편이 짐을 싸기에도 좋고 물건을 재빨리 찾아 꺼내기도 좋다. 시중에 가볍고 작은 가방이 많다. 크고 무거운 트래블 백팩은 필요 없고 35리터 전후의 가벼운 제품을 가져갈 생각이다.
걸을 때 입는 옷
티셔츠 1, 카고 바지 1, 집업 후디 1
세 개 다 원래 있던 물건이다. 카고 바지는 동대문에서 5천 원을 주고 구입한 물건인데 얇고 금방 말라 아주 좋았다. 건빵 바지의 장점인 많은 주머니는 크게 필요가 없었다. 배낭과 힙색을 거의 항상 휴대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용도로 집업 후디를 하나 챙겼다.
나중에 여벌 옷이 필요하면 현지에서 조달하면 되므로 큰 걱정은 필요 없다. 프랑스와 스페인의 도시엔 Decathlon이나 intersport라는 아웃도어 매장이 있고 현지인들은 여기를 이용하는 편이다.
안면과 목이 완전히 가려지는 사막형 모자 15유로, 목이 긴 장갑 한 켤레를 10유로 주고 구입했다.
상의가 반팔이라 쿨토시를 챙겼다.
[다음번에는?]
잘 마르는 옷이라면 다 좋다. 다음에는 속건성 의류로 한벌. 그리고 집업 후디 대신 방수 바람막이. 물론 계절에 따라 경량 패딩이나 내의를 추가해야 한다.
잠옷 겸 외출복 겸 수영복
티셔츠 1, 반바지 1
티셔츠는 폴리에스테르 100%, 반바지는 나일론 100%이며 물에 젖어도 금방 마른다. 여차하면 바로 수영도 가능한 제품들이다.
[다음번에는?]
동일한 구성. 물놀이할 곳이 많아서 아주 좋은 선택이었다.
신발
데카트론에서 59유로짜리 트레킹화 구입. 외출 겸 실내화는 3천 원짜리 슬리퍼.
[다음번에는?]
트레킹화의 접지력이 좋고 튼튼하며 돌부리를 차거나 할 때도 앞 뒤축이 다 보호되어 괜찮았다. 다만 장거리를 걸을 때 쿠션이 약간 부족한 감이 있었는데, 깔창을 별도로 깔거나 양말을 두 겹 신는 게 어떨까 생각했다. 많이 걸을 땐 쿠션이 약간 더 필요한 느낌이다. 발가락 양말 + 울양말 조합을 많이 사용한다고 한다. 신발을 바꿔볼 생각도 있다. 여행 전문가 세명을 만났는데 우연찮게도 그들은 모두 같은 브랜드신발을 신고 있었다.
등산용 일반 양말 두 켤레, 속옷 두벌
입고 있는 것을 제외하면 여벌은 하나씩 뿐이다.
[다음번에는?]
속옷 여벌이 하나라 둘 다 마르지 않은 경우 입지 않고 다닌 날이 며칠 있었다. 구입해도 되는 것이긴 하나 거기선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 날씨에 따라 수량을 조절하자. 양말 세 켤레 속옷 세벌이면 충분할 것이다.
치약, 칫솔, 선크림 50+, 수건 필수이며 그다음 샤워타월, 샴푸, 바디워시, 면도기, 세안제, 니베아 크림 등.
무게 줄인다고 올인원 워시나 세숫비누 하나만 들고 가시는 분도 있다. 액체류가 은근히 무게가 나가므로, 최대한 줄이는 게 좋다.
[다음번에는?]
샴푸와 바디워시는 올인원 제품으로 가져갈 예정. 손빨래도 이걸로 해결할 생각이다. 손톱깎이는 두세 번 정도 쓸 것으로 보고 가져가지 않았는데, 신경 쓰이고 매우 불편했다. 무게도 가벼운데 왜 챙기지 않았을까 후회했다. 얼굴과 몸에 바르는 것은 모두 니베아 크림으로 해결했다. 이거 의외로 라 메X 크림과 매우 비슷하다.
상비약
밴드, 바셀린, 후시딘, 안티푸라민, 진통제, 지사제나 소화제 약간.
[다음번에는?]
스테로이드 연고를 하나 챙기겠다. 의외로 습진, 피부염, 두드러기, 발진을 겪는 사람이 많다. 컴피드라고 물집에 붙이는 밴드가 있다. 필요하면 현지에서 구입하여 사용하면 된다.
힙색, 슬링백, 크로스백 등 아무거나 하나 필수.
여권, 모바일폰, 지갑. 세 가지 몸에 항상 지녀야 하는 것을 넣고, 샤워할 때나 밥 먹을 때나 잘 때나 꼭 가지고 다니도록 한다.
선글라스
챙겼는데 걸을 때는 거의 필요가 없었다. 방향상 거의 해를 등지고 걷기 때문. 관광하고 놀러 다닐 때 주로 사용한다. 분실이 많이 일어나는 품목이다.
코 고는 사람 분명히 있으므로 귀마개 필수. 이어폰은 챙기지 않았다. 음악은 듣지 않을 생각이다. 그 외 안대, 충전기와 케이블, 작은 전자레인지 그릇 하나, 플라스틱 포크 하나, 다회용 장바구니, 옷핀 약간, 빨래집게 6개.
[다음번에는?]
안대는 그리 쓸 일이 없다. 열 시 되면 모두 소등 후 곯아떨어진다. 케이블은 짧은 것을 챙겼는데 2m짜리 긴 것을 추천한다. 전기 콘센트가 침대에서 좀 떨어져 있을 경우가 있다. 전자레인지 그릇과 포크는 쓸 일이 별로 없다. 나중에 갈리시아에서 몇 번 필요한 적 있었는데 그땐 사면된다. 옷핀은 젖은 빨래를 가방에 매달아 말리는 용도로 사용하는데, 조금만 무거워도 지탱하지 못한다. 옷핀을 믿다 떨어뜨려 잃어버리는 사람이 많다. 빨래집게는 간혹 부족한 곳이 있다. 그리고 네임펜이나 유성매직 하나. 이건 어디다 쓰는지 가보시면 안다. 물론 모든 건 현지에서 구입해도 된다.
침낭, 판초우비, 스틱도 결국 사지 않기로 하였다. 가다가 필요하면 스페인에서 구하기로 했다. 접는 양산 겸 우산을 넣었다. 비만 오면 우산 쓰고 걷고, 비바람이 불면 판초와 배낭커버가 없으니 하루 쉬겠다는 생각이다.
[다음번에는?]
침낭이나 라이너. 자다가 추우면 옷을 껴입고 잤다. 계절에 따라 가벼운 걸로 넣을 생각. 판초도 계절에 따라 필요하다 여겨지는데, 한여름이면 방수 바람막이로 충분. 스페인은 8월이 가장 건조한 달이다. 스틱은 꼭 필요하다로 생각이 바뀌었다. 장기전 이므로 체력유지에 큰 도움이 되며, 내리막길에서 무릎 충격 완화를 위해 꼭 사용하자.
이젠 떠날 일만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