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그리워했던 것

11일 차, 토산토스 - 아타푸에르카 25.2km

by 한번만 더

8월 12일


토산토스 알베르게의 아침은 따뜻하다. 아침식사를 하며 어젯밤에 미처 끝내지 못한 말들을 계속 이어 나간다. 새로운 이야기가 시작되기도 하여, 환송은 자꾸만 늦어진다. 여운이 남았거나 이야기가 많은 이들은 하루 더 머물기로 하기도 한다.


신발을 신고 문을 나서려다 다시 의자에 주저앉고, 배낭을 어깨에 메었다 내렸다 하길 몇 차례씩 반복했다. 오늘이 일 년에 한 번 돌아오는 기도날이라길래 더욱더 그러하기도 했다. 남을까 하다가 오늘의 일은 오늘 오는 이들의 것이요, 나의 일은 다음 마을로 전진하는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고, 8시가 가까워 알베르게의 문을 완전히 나섰다.



우크라이나에서부터 개와 함께 장장 4천 km를 걸어왔다는 아저씨. 어제 토산토스에서 저녁을 먹고 바깥에서 텐트를 치고 개와 잤다.


왜 이렇게까지 힘들게 가십니까


오늘은 어디까지 걸어볼까. 일단 아헤스 Ages까지 걷고 나서 한마을 더 갈지를 결정하기로 했다. 늦게나마 결론이 내려지자 발걸음은 자연히 빨라졌다.


처음 피레녜를 걷던 그날처럼 뛸 듯이 걸으며, 다른 마을에 묵어서 밤새 보지 못했던 반가운 동료들을 만나 아침 인사를 나누었다. 벨로라도에서 출발했을 헤쥐아니-제퍼슨 부부를 제일 먼저 만났고 (그들은 오늘도 손을 꼭 잡고 걸어간다), 아침 일찍 출발했을 그러나 아직 얼마 못 가신 다리를 절며 나아가는 어르신들을 지나쳐, 버스 타기와 병원 가기 그리고 느리게 걷기를 반복하면서도 그룹과 헤어지지 않으려 애쓰는 파스칼을 다시 만나고, 어제 보지 못해 그리웠던 얼굴들을 찾아 자꾸만 앞으로 나아갔다. 난 여기서 무엇을 찾고 있는지 알 것만 같았다.

왜 나는 이 대목을 쓰며 새벽 네 시 십이 분에, 스페인 작은 마을 아타푸에르카 알베르게의 이층 침대에서, 주체하지 못하는 눈물을 숨죽여 흘리고 있는 것일까.



발이 날개를 단 듯 가벼웠다. 부르고스로 들어가기 위해 넘어야 하는 산의 입구 - 비야 프랑카 몬테스 데 오카의 카페와 교회에 반가운 얼굴들이 한데 모여있었다. 산을 넘기 전에 든든히 배를 채우려는 것이리라. 스페인 시골 마을의 낯선 성당 마당에 앉아 너무 힘들어 버스를 탈까 고민한다는 오선생님을 만났고, 산 입구에선 “너 또 산에서 뛰는 거냐?”라고 소리치는 세르게이의 말을 귓가로 흘리며 자꾸 앞으로 나아갔다.



소나무들이 열병하듯 양옆으로 늘어서 있고, 길게 그려진 돌 화살표가 길을 인도하는 가운데, 가슴을 활짝 펴고 왕처럼 걸었다. 나는 혼자 걷고 있었지만, 이 길 위에 있는 이들과, 그리고 이미 집에 돌아간 이들과 함께 걷고 있는 것이었다. 오늘도 어떤 이들과 한 마을 한 숙소에 묵고, 또 내가 그리워하는 어떤 이들은 다른 마을에 묵게 되고, 하지만 내일은 길 위에서 혹은 부르고스에서 그들을 다시 만나게 되리라. 그리고 거기서 집으로 돌아가는 이들도 있으리라.



아헤스는 세월의 흔적이 먼지처럼 곳곳에 내려앉은 작은 마을이다. 바르에서는 듣기 좋은 음악이 흘러나왔다. 이제 종아리에 근육이 슬슬 올라와서, 저 바르에 들어가 앉을까도 하였지만, 그래도 아직은 조금 더 걷고 싶었다. 바로 전에 나온 노래의 제목이 궁금했지만 들어가서 물어보진 않았다.

마음은 그래도 마지막 마을이 눈에 보일 때가 가장 힘든 법이다. 불과 2-3km 앞인데 손에 잡힐 듯 잡히지 않는 다음 마을. 하루 중 가장 힘든 순간이다.


저 길 끝에 오늘의 목적지 아타푸에르카가 있었다.



베이지와 연두색은 어울리지 않을것만 같았는데


El Peregrino 알베르게에는 집 같은 따뜻함이 있었다. 그 따뜻함은 외벽과 담장의 페인트 색에서, 나무를 사용한 주방 인테리어에서, 심지어 테이블 보의 무늬에서조차 알베르게 주인장의 마음과 함께 묻어 나왔다.



미국에서 온 소녀들과 수줍은 어깨를 함께 부딪혀야 빨래를 할 수 있는 좁은 세탁실이다. 호주 어느 촌구석, 마음에 들어 꽤나 오래 살았던, 한 캐러밴 파크에서 느껴졌던 감정이 되살아났다.

숙박은 11유로이고 와이파이는 없다. 와이파이가 없는 곳에선 대화가 보다 많아진다.



마당에 앉아있으니 어제 코를 골던 이탈리아 부자와 옮긴 방에서 코를 골던 독일 아가씨가 연이어 도착했다. 막 체크인을 하려던 그녀의 얼굴이 어두워 왜 그러냐 했더니 어제 저 사람들 때문에 잠을 잘 못 잤는데 또 만나서라고 한다. 너도 코 골잖아 했더니 자기도 안다며 화를 내었다. 오늘 좋은 휴식을 원하니 호텔을 찾아보겠다고 하며 발칵 나가버렸다. 자기의 단점을 바로 보기는 어려운 법이다. 그리고 면전에서 면박을 준 나도 아직은 멀었다.


니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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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이탈리아 순례자들이 두 그룹이나 이 마을에 들었다. 얘들은 내가 파스타를 할 때면 그냥 지나가는 법이 없이 꼭 저마다 한 마디씩 한다.

“맘마미아, 소금은 물이 팔팔 끓으면 넣어.”,

“양파는 이 정도 크기로 썰어야 해.”,

“마늘과 양파를 천천히 오래 볶으라고.”,

“면은 8분만 삶아.”

등등 1인분 점심을 끓이는데 이탈리안 코치가 무려 6명이나 달라붙었다. 헬스 사이언스 PhD 학생이라는 니꼴로는 아예 자기가 해준다며 팔을 걷고 나섰다. 암만 봐도 얘는 칼질부터 어설펐지만 우여곡절 끝에 파스타를 완성해 냈다. 한입 먹고 만족한 표정을 지으며, “와 파스타 기가 막히게 익었는데?” 하니까 좋아 죽는다. 이번엔 지나가면서 다들 한입씩 간을 보며 평을 했다. 아무래도 이탈리아 애들 있을 땐 파스타를 하면 안 되겠다.



사실 이탈리아 그룹과 함께 할 때면 그냥 가만히 있어도 입에 뭔가 들어온다. 음식 자랑을 하지 못해 안달이 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뭔가 요리하는 이들이 있다면 옆에 지나가면서 딱 한마디만 던지면 된다.

“와 그거 굉장하게 생겼는데? 이탈리아 요리야?”

그 순간 요리 설명과 자랑이 시작되며 넌 꼭 맛을 봐야만 한다며 접시에 한가득 담아준다.

“한국 요리도 좋지만 이탈리아 요리가 세계 최고구나!” 하며 부심을 자극해 주면 그게 곧 이탈리아 음식 무료 식권이다.


옆에는 와인 사다 마시는 무리가 있었다. 역시 같은 요령으로 옆에 지나가면서 이탈리아 와인을 칭찬하면 된다.

“프랑스 와인, 스페인 와인, 이탈리아 와인 어떤 게 제일 좋아?”

“당연 이탈리아 와인이지”

“아 정말? 대단한데?” (물론 얘들은 지금 스페인 와인을 마시고 있다.) 거기에 적당히 스페인 와인을 까주자.

“스페인 애들 와인 마시는 거 봐봐, 맛이 없고 싸니까 레모네이드에 섞어 먹잖아.” 하며 틴토 데 베라노도 까주자. 이러면 얘들은 이미 기분이 좋아져서 자기들 와인을 마구 권하기 마련이다.



오늘도 어김없이 이탈리아 패거리가 저녁 주방을 점령했다. 이들이 한번 뜨면, 작은 상점 물건 정도는 몽땅 쓸어온다. 한방에 수십 인분씩 만들어서 배 터지게 나눠 먹고 마시며 파티가 벌어졌다. 오늘은 내일 부르고스에서 돌아가는 사람들의 환송까지 겸해서 유난히 와인이 더 풍족하다.



미국에서 온 AJ와 아나가 이탈리아 키즈 그룹에 끼었다.


여기서 까르보나라로 1차 저녁을 먹고


그리고 스페인식 초리조 펜네로 2차 저녁을 먹었다.



여기 불려 가서 먹고, 저기 불려 가서 먹는 순례길의 하루가 또 저물었다.


7:49 ~ 2:02

토산토스 ~ 아타푸에르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