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도시의 미덕

12일 차, 아타푸에르카 - 부르고스 19.7km

by 한번만 더

8월 13일


아타푸에르카의 이른 아침, 마을은 두꺼운 구름을 솜이불처럼 덮어쓰고 있었다. 큰 도시로 들어가는 날이라 다들 아침부터 신이 났다. 이제 저 산에 오르면 부르고스가 보일 것이다. 다들 안갯속을 헤치며 산길을 더듬어 나아갔다.




코 고는 브라질 아저씨 덕에 밤새 잠을 설쳐 몸이 무거웠다. 사실 새벽까지 울며 지새운 것을 괜히 다른 사람 탓을 해보는 것이다. 안개에 젖은 옷이 무거워 더욱 움직임이 굼떴다. 그래도 굉장히 높은 산은 아니므로 어렵지 않게 정상에 올라섰고, 내려가는 동안엔 점차 구름이 걷혀 저 멀리 부르고스가 보였다.



일단 야트막한 산을 넘고 나면, 부르고스까지 남은 길은 약간 지루하다고 할 수 있다. 공항의 펜스를 따라 걷는 길이 길게 이어지며, 곧 도시 외곽의 공단 도로를 따라 걷게 된다. 오늘이 일요일이 아니었다면 수많은 트럭이 오가며 내뿜는 굉음에 시달렸을지도 모른다.



도시의 사람들은 살갑지 않다. 다들 바쁘게 어딘가로 가고 있어, 순례자를 보며 인사를 건네는 일은 드물다.


바쁜 와중에 다들 서로가 귀찮아지지 않도록, 소중한 시간을 뺏지 않도록 눈길을 피하는 것이 바로 도시의 미덕이다. 이렇게 인사에서 아껴진 수고와 시간은 어디에 사용되는 것일까. 순례자로서의 삶은 어렵지만, 다시 도시에 적응하는 일은 더더욱 쉽지 않다. 나는 왜 오늘 아침에 그렇게 신나 했을까.



부르고스에 오자마자 들린 악기 상점은 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일요일인데 열었을 리가 없다. 일요일에 가게문을 닫는 것도 이제사 알았지만, 내일 가게 문을 열 때까지 기다릴 수는 없다. 아침 일찍 길을 나서 30km는 족히 걸어야 할 테다. 이 또한 짐을 늘리지 말라는 뜻인가 보았다.


부르고스의 대성당은 그저 ‘아름답다’라는 말로는 뭔가 부족하다. 멀리 광장에서부터 보이는 고딕 첨탑이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가까이에 서면 그 커다란 몸집에 놀라게 된다. 신에게 한 발짝이라도 더 다가가고자 했던, 그들의 헛되기에 아름다웠던 염원이 절실하게 전해져 온다. 세요는 공식 기념품 샵에서 얻을 수 있다. 3대 대성당이라는 명성이 아깝지 않다.


부르고스의 공립 알베르게이다. 각 침대 공간이 나누어져 있어 좀 더 편하게 쉴 수 있다. 마치 어릴 적 많은 시간을 보냈던 아늑한 다락방의 구석 같은 느낌이었다. 이층 침대의 높이가 높아 아래 침대에서도 좀체 머리를 부딪힐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위로 기어 올라갈 땐 고소 공포증과 낙상을 주의하자. 역시나 안전 레일은 없으니까.




1인용 욕실문을 열면 샤워부스와 화장실이 있다. 그리고 각 줄마다 세면대가 하나씩 있다. 와이파이는 없다지만 일층에 내려오면 공공 무료 와이파이가 잡힌다. 숙박비 10유로를 지불했다.



짐을 풀고 거리로 나섰다. 벌써부터 알베르게 앞 작은 바르에서 동료들이 둘러앉아 맥주를 들이켜고 있었다. 그리 멀지 않은 Calle San Lorenzo 가의 좁은 골목엔 화려한 타파스들이 굶주리고 지친 순례자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로스 에레로스에 들러 틴토 데 베라노와 양송이 새우 꼬치 pincho de champiñones con gambas를 시켰다.



많은 이들이 여기 부르고스에서 그들의 올해 순례를 마감했다. 그리고 하루 더 쉬어가겠다는 동료도 많았다. 하지만 더 이상 슬퍼하거나 걱정하지 않았다. 언젠가 길 위에서, 어느 마을에서 다시 만나게 될 것이며, 내일은 또 다른 동료가 생길 것이었다. 한편 나는 집으로 돌아가는 동료들을 부러워했지만 그들은 또한 나를 부러워했다.


6:50 ~ 11:50

아타푸에르카 ~ 부르고스



처음 출발할 땐 담담한 기행문을 쓰려했는데, 글이 갈수록 감정적이 되어감을 느낍니다. 잘 읽히지 않는 혼자만의 일기장이 되어갑니다. 와인+ 의식의 흐름에 맡긴 연유일까요. 내일부터는 투표 결과대로 메세타 고원을 걷습니다. 일단 목적지는 온타나스로 잡았는데 한 번에 갈 수 있을까 모르겠습니다. 가는 데까지 가보겠습니다.


항상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부엔 까미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