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온타나스는 마법처럼 떠오른다

13일 차, 부르고스 - 온타나스 30.8km

by 한번만 더

8월 14일 월요일


대망의 메세타로 진입하는 날이다. 많은 동료들이 부르고스에서 하루 더 쉬기를 원하였고, 얼른 다시 걷고 싶었던 나는 아침 일찍 길을 나섰다. 5:30 AM. 온타나스 까지는 먼 길이다.



부르고스 공립 알베르게의 정문이 열리기 전, 새벽 일찍 길을 나서려면 비상문으로 나가야 한다. 빨래 너는 곳에서 계단으로 내려가면 철문이 있고 철문 옆에 스위치가 있다.



부르고스는 인적 없이 깊게 잠들어 있었다. 커다란 도시를 빠져나오는데 한참이나 걸렸다. 드디어 도시의 포장된 바닥이 끝나고 익숙한 흙과 자갈길이 시작되자 안도의 한숨이 저절로 나왔다. 포기한 줄 알았던 오선생님을 만났다. 반가운 얼굴이었다. 버스로 부르고스로 와서 어제 하루를 쉬셨다고 했다.



8:20 AM, Tardajos에 도착했다. 오선생님과 바르에 들러 아침을 함께 하였다. 뭐가 그리 미안한지 자꾸 뭔가를 사주려 하셨다. 아니면 오늘 긴 거리를 간다니 격려를 해주시려는 걸까. 온타나스는 너무 멀다며 오르니요스 델 까미노에서 끊어 가신다 했다. 아마 여기서 헤어지면 이젠 못 보지 싶다. 체력 또한 까미노의 만남과 이별을 좌우한다.



덕분에 아침을 든든히 먹고 나니 어느덧 8시 40분이 되었다. 길을 나서려는데 어디선가 댄스뮤직이 들려왔다. 그리고 버스 정류장과 근처 벤치에는 젊은 애들이 마구 널브러져 있었다. ‘아하 어디선가 파티가 벌어지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마을로 들어갔다. 한 차고 안에서 디제이가 음악을 틀고 있고, 밤새 진행 되었을 파티의 마지막 생존자 몇몇이 아직도 춤을 추고 있었다. 슬쩍 지나가며 들여다보니 얼른 들어오란다. 호기심이 일어 못 이기는 척 들어갔다.


시골 마을에 열리는 전형적인 거라지 파티다. 디제이들이 마을들을 돌아다니며 장소를 빌려 파티를 여는 것이다. 작은 마을에는 이렇다 할 유흥 거리가 없기 때문에 이런 게 한번 열리면 주변 모든 마을에서 젊은이들이 몰려온다. 일전에 호주에서 경험해 봐서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대강 알고 있다.


허름한 차림에 배낭을 메고 스틱을 들고 차고에 들어서자 모두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맙소사 순례자가, 그것도 동양인 순례자가 파티에 오다니 하는 표정이다. 사실 이런 시선도 오래전에 익히 겪어본 일이다. 이런 때는 잘 노는 걸 보여주어야 섞여 들어갈 수가 있다. 배낭과 등산화에 다리가 무겁지만, 이제는 기억조차 잘 안 나는 스텝을 밟아보았다. 다행히 춤이 마음에 든 모양이다. 이러면 일단 시험은 통과한 셈이다.



신기한지 다들 모여들어 사진을 찍었다. 루시라는 여자애는 몇 바퀴 돌려줬더니 자꾸 자기랑 춤을 추자며 손을 잡아 끌어당겼다. ‘그래 이왕 이리된 거 조금만 놀다 가지.‘ 2유로짜리 동전을 하나 건네주고 진토닉을 부탁했다. 30분쯤 지났을까 문 닫고 청소할 시간인지 전부 큰 길가로 나왔는데, 다들 힘든지 길바닥에 그냥 드러누워 버렸다. 청춘들은 어느 나라나 다 똑같다.



그렇게 길바닥에 앉아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예쁘고 키가 훤칠한 데다, 영어와 불어를 곧잘 하는 마르타는 세상일에 관심이 많은 모양이다. 여행자에 대한 동경과 큰 도시에 대한 환상이 눈에 가득하다.


‘그래 그럴 나이지, 노는 게 좋고 작은 고향 마을을 떠나고 싶을 그런 나이.’


마르타가 바르로 아침을 먹으러 가자며 자꾸 권했다. 이미 많이 먹었고 오늘 온타나스까지 가야 해서 바쁘다니 무척이나 서운해한다.


헤어지기 전 단체사진을 찍었다


왼쪽 끝의 마르타, 가운데 앙헬라


어느새 열 시가 가까워 왔고 이젠 정말 떠날 시간이었다. 중간에 놀 수도 있고 쉴 수도 있다. 목적지로 가야 하는 것만 잊지 않으면 된다.



얘가 루시다.


타르다호스를 뒤로 하고 다시 길을 나섰다.


메세타의 시작


알콜이 한잔 들어가서인지, 이제 몸이 적당히 풀렸다. 속도를 올려 빠르게 오르니요스 델 까미노를 지났다. 들판 너머 아득히 지평선이 보였다. 산이 많은 나바라와 라 리오하에선 볼 수 없는 풍경이었다. 포도도 올리브도 이젠 보이지 않는다. 추수가 끝나 그루터기만 남은 밀밭이 끝없이 펼쳐져 있고, 돌밭을 개간하며 쏟아져 나온 바위 무더기가 줄지어 늘어서 있었다.



해바라기마저 해를 피해 고개를 숙이는 이곳. 메세타 고원이다.


도착 예상 시간을 훌쩍 넘겨 한시가 되었지만 아직도 메마른 들판 위를 걷고 있었다. 중천에 오른 스페인의 태양이 나를 탈수기처럼 비틀어 대었다. 메마른 수건 마냥 이젠 땀도 말라 버렸다. 쏘는 파리가 자꾸 달려들어 피를 빨아대었다. 팔을 열심히 앞뒤로 휘젓고 있는데도 어느샌가 달려들어 팔에 큼직한 구멍을 내었다.

마테오와 엔젤라를 처음 만난곳

이 구간의 유일한 그늘, 표지판 밑 손바닥만 한 공간을 나누며 다정히 쉬는 이들이 있었다. 이탈리아에서 온 마테오와 안젤라이다.



셋이서 길을 재촉하여 산 볼을 지났다.


거리상 무척 온타나스에 가까워졌으나 아직도 마을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마테오가 그러는데 온타나스는 갑자기 마법처럼 나타나는 마을이라고 어디선가 읽었단다. 그도 그럴 것이 이 마을은 움푹한 분지에 위치하여, 오십여 미터 내로 들어와야 비로소 모습이 보인다.


분지에 위치한 온타나스

갑자기 땅에서 떠오르듯 온타나스가 나타났다. 사막을 건너 루트 골레인을 처음 발견했을 때의 느낌이었다.




온타나스는 마치 사막의 샘물 같은 소중한 마을이다. 마을 곳곳에 샘이 흘러나오며, 큼지막한 야외 공공 수영장이 있다. 숙박시설도 꽤 있는 것을 보면 뭔가 휴양지 같은 느낌이 난다. 수영장 덕에 주변에서 큰 인기가 있을법하다. 수영장은 순례자 가격 1.5유로. 여름철엔 관리도 잘되고 안전요원도 있다.




여러 파티를 알리는 포스터가 붙어 있다. 가운데 것이 오늘 아침에 들렀던 곳이다. 온타나스에서 수영장 파티가 열린다고 한다.



오늘 묵을 알베르게 엘 푼티도이다. 바르에서 리셉션을 겸하고 있다. 나무로 된 바가 너무 앙증맞고 예쁘게 생겼다. 집에다 하나쯤 차려놓고 싶을 정도로 귀여운 바다.



빨간색 음료수 냉장고마저 깜찍하다



창에 방충망이 달려있는 것도 처음이었다. 운에 따라 일층 침대만 있는 3인실이 배정된다. 세명 일행이라면 배정받을 가능성이 높다. 주방은 없다. 숙박 10유로, 와이파이 있음.



돌로 지어진 알베르게 건물 안은 마치 동굴처럼 시원하였다.


집은 사라지고 문설주만 남았다


숙소 바로 앞 광장과 바르는 밤늦도록 순례자들로 시끄러울 예정이었다.


아담하지만 여기저기 돌아보는 맛이 쏠쏠한 마을이다. 기후와 지리 조건이 다르니 마을 역시 이색적이다.


이 마을에선 식료품 가게를 찾지 못했다. 유일하게 하나 있는 과일가게의 물가는 엄청났다.


숙소 옆 레스토랑에서 저녁을 사 먹었다. 15유로짜리 순례자 메뉴도 좋지만 8유로짜리 1, 2, 3번 콤보 메뉴도 이것저것 다양하게 맛볼 수 있어 좋았다.



2번 빠에야와 돼지고기가 나오는 메뉴를 시켰다.


페데리카


이렇게 온타나스에 저녁이 찾아왔다.



땅거미가 내려앉은 온타나스는 호롱불처럼 아련하게 흔들리며 빛나고 있었다.


어두워진 광장의 야외 테이블엔 여전히 순례자들이 모여 앉아 하루가 가는 아쉬움을 달래었다.


뒤쪽 언덕에선 파스칼과 어느 남자가 마을을 내려다보며 데이트 중이었다. 둘이 시시덕대며 내는 웃음소리가 간간이 들려왔다.


5:35 ~ 2:24

부르고스 ~ 온타나스

한여름 메세타에 들어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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