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차, 온타나스 - 프로미스타 34.1km
8월 15일 화요일 광복절, 그리고 성모승천 대축일
아침 6시에 길을 나섰다.
별들이 마치 쏟아질 것처럼 온 하늘에 가득했다. 소중한 마을 온타나스를 뒤로하고 어두운 들판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마을의 희미한 불빛마저 사라지자 별빛이 더욱 또렷해졌다. 이윽고 별들이 진짜로 쏟아져 내렸다.
매해 7- 8월은 페르세우스 유성우 시즌이다. 하늘만 쳐다보고 있자면 시간당 50-100 개 정도 별똥별이 떨어져 내린다. 한국은 공기도 좋지 않거니와, 빛 공해 때문에 별 볼 곳이 그리 많지 않다. 때맞춰 여기 온 것도 행운이리라. 행여 헤드램프를 켜면 별들이 달아날세라 어둠 속을 더듬어 나갔다. 하나라도 놓칠까 보아 하늘만 올려다보며 걸었다.
아쉽게도 동이 터왔다. 내일은 좀 더 일찍 출발할까 생각하며, 아직은 뻣뻣한 다리를 바삐 움직여 카스트로헤리츠 Castrojeriz에 닿았다. 분지 가운데 우뚝 솟은 언덕이 있고 언덕 위에는 이미 폐허가 된 성터가 남아있다. 온타나스가 길쭉한 분지의 초입이고 이 마을은 분지의 끝에 자리 잡고 있다.
한동안 아침 커피를 끊었었는데 순례길에 와서 종종 마시게 된다. 워낙 저렴한 스페인 물가 덕에 안 마시고 지나가면 손해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바르에 들러 카페 꼰 레체를 주문했다. 2유로 동전을 건네며 얼마가 거스름돈으로 나올까, 70일까 50일까 주인장의 처분을 기다렸다. 주인장이 잔돈을 꺼내어 70센트를 쥐여주었다.
부엔까미노를 잊지 않는 주인장 부부에게 그라시아스 부엔 까페를 외치며 다시 길을 나섰다.
마을을 나서 조금 더 길을 따라가면 분지의 끝을 알리는 만만치 않은 언덕이 있다.
저 언덕 너머 기다리고 있을 풍경이 너무 궁금하여 단숨에 달려 올라섰다. 턱밑까지 차오르는 호흡을 가다듬으며, 기대했던 바로 그 풍경을 만끽했다. 다시 눈앞에 평원이 펼쳐졌다.
그리고 잠시 카스트로헤리츠를 돌아보았다.
역시 내리막도 만만치 않다.
비행운이 이리저리 그어지던 맑은 하늘에 점점 엷게 구름이 끼었다. 때마침 바람도 솔솔 불어와 걷기엔 최적의 날씨가 되었다. 프로미스타까지 가야 하므로 꽤나 걷게 될 것인데 날씨가 돕는구나 싶었다.
중세 순례자 구호소, 오스피탈로 불렸다.
이떼로 데 라 베가가 보인다
팔렌시아를 지나가고 있다. 카스티야 이 레온주는 부르고스도, 팔렌시아도, 레온도 등 9개의 도로 이루어져 있다.
보아디야 델 까미노에서 잠시 쉬었다. 오늘이 생일이라는 로렌조에게 맥주를 한잔 샀다.
다시 프로미스타로 향하는 벌판. 쉴 곳이 없으면 그냥 서서 쉰다.
건조한 이 지역에 물을 공급하는 수로를 만났다. 수로의 주변으로 물이 많이 드는 농사가 이루어진다. 제비들이 앞다투어 물을 차며 생명을 마셨다. 물이 곧 생명이다. 수많은 동식물들이 수로의 주변에서 살아간다.
산을 깎고 돌을 골라내고 물을 대어, 이 척박한 곳을 농토로 만들어낸 그 노력에 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프로미스타에 가까워지자 수로의 본류가 보였다. 유람선도 있고 이 마을의 주요 볼거리 중 하나다.
프로미스타 공립 알베는 오래되었다기보다 낡았다고 말하는 게 조금 더 어울린다. 원래는 다른 데 가려고 했는데 공휴일이라 문을 닫았고, 다른 선택지가 크게 없었다. 그렇다고 최악의 알베르게 이런 건 아니다. 침대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할 따름이다. 조리시설은 별로 없지만 대신 실내 휴식공간이 널찍하였다. 평점 3.5점이 상당히 정확하다는 느낌. 카드는 받지 않는다. 현금 14유로.
온 마을에 라이브 음악 소리가 가득했다. 축일이라 피에스타가 크게 벌어졌다.
가게들은 전부 문을 닫고 역시 휴일을 즐기러 갔다. 축제 기간에 장사하면 더 잘 벌릴 텐데 여기서는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진다.
프로미스타에는 소문난 맛집이 두 군데가 있다. 하나는 미식 스타일을 보여주며 미슐랭에도 올라 있는 Hostería de Los Palmeros이고, 다른 하나는 순례자 메뉴로 한국인에게도 유명한 El Chiringuito del Camino이다. 두 군데가 붙어있다. 페데리카가 El Chiringuito del Camino로 가자고 한다. 여기에서 돼지갈비 순례자 메뉴를 시켰다.
그동안 다른 식당들의 순례자 메뉴는 대체로 만족스럽지 않았는데, 여기는 순례자를 대접하는 느낌이 제대로 났다. 누구는 연어를 누구는 폭립을 시켰는데 푸짐하고 맛도 훌륭했다. 사진으로 보면 적어 보이는데 실제론 접시가 큼지막하다. 와인 두병을 비우고 고기는 미처 다 먹지 못해 싸서 가져왔다.
여기 사장님은 한국어 인사도 할 줄 알고, 식당에는 한국어로 된 메뉴도 있다. 역시 올해 순례자 수 8위를 자랑하는 나라 대한민국이다. 성공적인 순례를 기원하며 독한 술을 한잔씩 서비스로 주셨다.
스페인의 밤은 길건만 공립 알베르게의 통금은 정말 빨리 찾아온다. 저녁 먹고 이야기 좀 하다 보면 ‘아 벌써 들어가야 하네’ 하는 이런 느낌이다. 이렇게 아쉬워야 내일 또 이야기를 이어가겠지.
06:00 ~ 15:00
온타나스 ~ 프로미스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