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차, 프로미스타 - 까리온 데 로스 꼰데스 19.8km
8월 16일
길을 걷을땐 수많은 사람들의 뒷모습을 보게 된다.
일본에서 온 아사코 - 마사키 부부다. 일 년에 한 번와서 3-4일 정도 걷고 일본으로 돌아간다. 2018년에 시작한 까미노인데 올해는 부르고스에서 사아군까지 걸을 계획이라 했다. 언젠가는 산티아고를 밟을 수 있을 거야’라고 말해주니 매우 좋아했다. 가리비가 새것처럼 보인다고 했더니 처음 것은 잃어버려 올해 새로 샀다고 한다.
지팡이가 범상치 않다. 늑대가 나오던 시절에 함께 다니면 든든했을 그런 분이다.
아르헨티나 국기를 달고 다니는 아주머니. 메시가 월드컵 트로피 들어 올리는 장면을 오른 종아리에 문신했다. 역시 축구는 메신이다.
의족을 달고 산티아고로 향하는 의지의 순례자, 그리고 그와 함께 하는 친구분. 이 친구분이 어제, 오늘의 문제남이다. 프로미타스에서 같은 방을 썼다.
오늘의 계획은 일찍 일어나 Calzadilla de la Queza로 가는 것이었다. 그러면 조금 무리가 되더라도 내일 사아군 입성이 가능할 터였다. 칼자디야 델라 께사는 까리온의 바로 다음 마을이지만, 구간 거리가 17km나 된다. 프로미타스에서 까리온까지의 20km를 더하면 총 37km를 주파해야 하는 긴 하루가 될 것이었다. 시속 4km로 가면 9시간 15분이 걸리고, 휴식을 고려하면 10시간이 넘는 거리. 새벽 5시에 출발하면 오후 2-3시 정도에 도착이 예상되었다.
하지만 여러분들도 이미 알고 계시듯 계획은 계획일 뿐, 사소한 일들 때문에 계획은 무너지기 마련이다.
이 문제적 아저씨가 밤새 코를 고는 통에, 뜬눈으로 껌벅거리다 새벽녘이 되어 겨우 깜박 잠이 들었다. 퍼뜩 일어나 보니 이미 6시 15분. 페데리카와 5시에 만나기로 했는데 약속 시간이 한참 지났다. 그리고 몸이 가뿐하지 않다. 까미노에 코 고는 사람이 없다면 얼마나 좋을까. 사실 6시 15분도 일찍 일어난 셈이긴 하다.
코골이 문제는 토론장만 가봐도 답이 없다. 흡연자가 나가서 피워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는 이미 이루어진 지 오래인데, 코 고는 사람이 나가서 자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는 아직도 이루어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이분들은 듣기 싫으면 귀마개를 하던가, 너희들이 호텔 가서 자라 하며 적반하장으로 나올 때도 있다. 이게 무슨 노양심인지 코 고는 분께서 1인실로 가는 게 맞지 않을까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 하지만 이것도 순례길의 피할 수 없는 한 부분이다. 고행 중 하나라고 생각하면 그나마 좀 낫다.
그리고 사실 나중에 집에 돌아와선 사람들의 코 고는 소리마저 그리워했다. 할 수 있을 때 조금 더 너그럽고 친절했어야 했다.
중간에 아사코 - 마사키 부부와 꽤 길게 쉬었다. 그 이후론 컨디션이 별로인데도 열심히 걸어 까리온에 들아오니 10시 20분 이었다. 중간에 휴식도 했는데 20km를 4시간에 왔으니 나쁘지 않았다.
순례 용품 상점이 보이길래 2.60유로 주고 지팡이에 신발을 신겼다. 캡이 없으면 돌바닥이나 포장도로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난다. 도시 안에서 사용하려면 필수다.
현지에서 이런 유심을 사면 한 달간은 문제없다
마을을 둘러보았다. 초입부터 유난히 기타를 메고 다니는 사람이 많고, 아이들이 벤치에 앉아 기타 교습을 받는 모습이 보인다. 여기가 기타로 유명한 도시인지 궁금했다.
플라자에 점점 가까워지고 작은 공원을 만났다. 거기에서 한 남자가 기타를 연습하고 있었다. 샘에서 물통을 채우며 잠시 귀를 기울였다. 연주는 곧잘 끊어졌으며 매끄러운 프로페셔널의 소리는 아니었으나 분명 따뜻함이 깃들어 있었다. 조심조심 정성 들인 연주에서 음악을 사랑하는 마음이 들려왔다.
60센트짜리 맥주를 사 와 남자에게 권하고 다시 앉아 연주를 들었다. 자주 시계를 보는 것으로 보아 12시엔 어디 약속이 있나 싶다. 다들 바쁘게 지나갈 뿐이므로 청중은 나 혼자였다. 12시 3분 전 남자는 나에게 맥주캔을 한번 들어 올려 인사를 하고 사라졌다. 근 한 시간이나 이러고 있었다니 이렇게 엉덩이가 무거워선 큰일이다.
날씨가 뜨겁고 피곤하기도 하고 또 기타 때문인지 이 마을이 좋아져 하루 머물기로 했다. 계획은 수정하고 루트는 새로 짜면 그만이다. 사아군에서 하루 머물까 했는데 어쩌면 그냥 지나쳐야 할지도 모르겠다.
오늘 머물 곳은 Centro del Espíritu Santo 알베르게이다. 10유로이고 평이 굉장히 좋다. 욕실 화장실도 남녀 분리되어 있고 시설이 깨끗하다. 예전에는 주방도 쓸 수 있었다고 하지만 이제는 마이크로웨이브만 가능하다. 방안에 와이파이도 잘 들어온다.
오늘도 40도에 육박하는 혹독한 날이다. 수녀님이 날도 더운데 강가에서 수영을 하고 오라 권하셨다. 하지만 그전에 조금 눈을 붙여야 하겠으므로 알겠다 하며 감사의 인사만 했다.
샤워 후 눈을 붙이려 눕는데 ‘아, 이런’, 어제 같은 방을 쓴 그분들께서 입장하셨다. 이틀 연속으로 만나게 될 줄이야. 그분들도 피곤하신지 오자마자 코를 드렁드렁 골며 낮잠을 주무신다. 결국 낮잠도 못 자고 쫓겨나듯 나왔다. 오늘 밤도 다시금 괴로울듯하다.
슈퍼마켓에 들러 과일과 토마토를 주로 샀다. 종일 입맛이 없어 점심도 저녁도 간단하게 샌드위치만 만들어 먹었다. 늘 여름엔 냉면과 수박을 주식으로 버티곤 했었다. 여기선 이러면 살이 쭉쭉 빠진다. 며칠새 거울에 비친 얼굴이 홀쭉해졌다.
6:30 ~ 10:20
프로미타스 ~ 까리온 델로스 콘데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