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당신의 짐이 무거운 이유

16일 차, 까리온 데 로스 꼰데스 - 사아군 39.2km

by 한번만 더

8월 17일


오늘은 토마스와 JP, 그리고 내가 가장 먼저 일어났다. 주방에 모여 각자 요기를 하고 짐을 꾸렸다. 우리 세명은 오늘 사아군까지 가기로 했다. 토마스와 내가 JP의 코 고는 소리를 들었다고 하니, JP는 자기가 또 코를 골면 창밖으로 던져버리라고 농담을 했다.


먼 길을 가야 하기도 하고, 유성우도 볼 겸 해서 5시 반에 알베르게를 나섰다. 이번 주는 달빛이 없어 별을 보기 좋은 때다. 하늘을 올려보며 별자리 이름을 하나 둘 기억해 냈다. 카시오페이아, 페르세우스, 플라이아데스 성단, 큰 개 자리, 오리온.


옆에 가는 JP가 큰 국자(big dipper)를 실제로 보는 건 처음이라며 호들갑을 떨었다. 너 사는 곳엔 별이 보이지 않느냐 물었더니 댈러스에서 한 시간쯤 교외로 나가면 보이겠지만 직접 나가본 적은 한 번도 없다고 했다. 까미노를 보름이나 걸었으면서도 전혀 하늘에 관심이 없었다는데, 오늘 유성우 이야기를 해주지 않았다면 또 헤드램프 켜고 땅만 보고 갔을 것이다. 별똥별을 하나 둘 세며 신기해하더니 이내 엄청 빠르게 발걸음을 옮겼다. JP는 배구 코치라서 그런지 키도 크고 체력이 좋았다.


토마스는 이미 어둠 속으로 빠르게 사라진 지 오래였다. 사진을 여기저기 찍고, 하늘도 보며 걸으니 JP와도 거리가 점점 벌어져 사아군에서 보자며 먼저 보냈다. 사진 한 장 찍는 동안에도 20-30m 정도는 충분히 벌어진다.



까리온 다음에 17km의 광야 구간이 찾아왔다. 중간에 커피를 파는 푸드트럭이 하나 있고, 벤치가 있는 쉼터도 있다. 5시 반에 나왔는데 여기저기 사진을 찍다 보니 생각보다 많이 오지는 못했다.



이제는 앉아 쉴 때마다 신발을 벗어 말린다. 초반에 커다란 물집을 안겨주었던 새 신발이, 보름새 길이 들어 꽤 편안해졌다. 물집도 많이 아물었다.



쉬는 사이에 반가운 얼굴 여럿이 따라와 옆에 나란히 앉았다. 서로 간식을 나누어 먹고 다시 길을 재촉했다.



제비가 많았던 마을 세르바토스 델라 께사 , 쌍살벌이 유난히 떼 지어 날아다니던 마을 레디고스도 지났다. 작은 마을이 연이어 있으면 거리가 빨리 줄어드는 느낌이다. 하지만 아직도 사아군까지는 먼 길이다. 시속 4km로 걸으면 10시간이 걸리는 거리이니 절대 만만하지 않다. 휴식을 고려하면 오후 4시는 되어야 도착할 것이었다.



까미노의 필수품 유성 마커



사랑해



너도 힘내


선답자들의 흔적이다. 길 위에 돌로 만든 거대 화살표와 “사랑해” 그리고 “너도 힘내”



딱 한그루 홀로 남겨진 해바라기.



이제 팔렌시아를 지나 레온에 들어섰다.



오후가 되며 해가 뜨거워졌지만 다행히 바람이 꽤 불어 땀을 식혀주었다. 다리는 점점 무거워지고 발이 아파왔다. 오늘 너무 무리해서 걷는 게 아닌가 싶었다.



사아군은 스페인 사람들에겐 까미노 프란세즈의 중간 지점이라 불리는 도시이다. 그들은 론세스바예스를 출발점으로 보기 때문이다. 프랑스 생장에서부터 넘어온 사람들은 이미 절반을 지났다. 그런데 의외로 여기서 하루를 묵는 순례자들이 많지 않다. 이유인즉, 까리온으로부터 애매한 거리에 있어서 일 것이다. 약 40km 이기 때문에 하루에 오긴 좀 어렵다. 그렇다고 이틀에 오기엔 20km +20km로 너무 쉬운 이틀이 되어 버린다. 여기까지 온 순례자들은 이미 체력이 너무 좋아져서 20km쯤은 이른 오전에 룰루랄라 피크닉처럼 끝내버린다. 그래서 여기는 그냥 뛰어 넘어가는 그런 도시가 되어 버렸나 보다. 하지만 여기 하루 묵었으면도 하고, 그 다음 30여 km 씩 두 번 걸으면 내일 모레는 레온에 당도하리라는 계산이 섰다.



도시가 내려다보이는 외곽 언덕에서부터 알베르게까지 한 시간 반이나 걸렸다. 눈에는 보이는데 거리는 좀체 줄어들지 않았다. 해는 점점 높아만 지고, 발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발바닥이 부서져 나가는 듯한 아픔이 전해져 왔다. 마지막 7km 구간은 정말 정말 쉽지 않았다.



3시 56분 드디어 알베르게 도착. 총 열 시간 반이나 걸렸다.




숙박이 7유로 밖에 하지 않는 Santa Cruz 알베르게이다. 들어가면 봉사자들이 물과 사탕을 권하며 반갑게 맞아주신다. 오스피탈레로 보뇨가 자기는 전직 신부였다며 소개를 해왔다. 아침에 같이 출발한 JP와 토마스는 도착한 지 꽤 되었는지, 이미 샤워를 마치고 멀끔한 모습이다. 각방에 벙크 베드가 두 개씩 있는 4인실로 되어있고, 놀랍게도 샤워와 화장실은 방안에 있다. 세탁기 사용은 3유로. 혜자 알베르게 중 하나이다. 유일한 단점이라면 전원 콘센트의 수가 적다.



다과 및 커뮤니티 디너는 자유롭게 참여 가능하다. 스페인어 위주로 돌아가기 때문에 영어 사용자에게 원활하지는 않지만, 분위기는 상당히 좋으며 내용도 충실하다. 적극 참여를 권한다. JP가 영어와 스페인어를 구사하는 능력자이기 때문에 다과와 담소 시간에 통역을 도맡아 해 주었고, 덕분에 좋은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간단한 그림이 그려진 카드 중 하나를 주제로 골라 각자 이야기 하는 시간을 가졌다. 나는 배낭이 그려진 카드를 골랐고, 이야기할 차례가 돌아와 가방 무게와 소유에 대한 이야기를 하였다. 4kg가 안 되는 짐으로 걷고 있으며 걸어보니 정작 필요한 게 많지 않더라며 이야기를 꺼냈고, 보뇨는 두려움과 걱정이 많은 사람일수록 가방이 무겁다고 자신의 경험을 담아 이야기했다. 나는 걷기와 소유를 엮어 레오 톨스토이의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에 대한 이야기로 화답하였다. 그는 책 이야기가 무척 마음에 들었는지 꼭 읽어보겠다고 했다.


짐이 가벼우니 걷기 좋고 비싼 물건이 없으니 도둑맞을 염려도 없었다.


아마 조금의 부족함과 불편함을 감수하면 가방에 짓눌리는 일이 훨씬 줄어들 것이다.



알베르게 바로 앞에는 슈퍼마켓 디아가 있다. 과일이며 먹을거리를 잔뜩 샀다.



페데리카는 오늘 어느 마을에 머무르고 있을까. 문자를 할까 하다 그만두었다. 어디선가 다시 만나게 될 것이므로.


5:30 ~ 15:56

까리온 ~ 사아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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