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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번만 더 May 01. 2024

24. 물건이란 있다가도 없는 것

19일 차, 레온 - 오스피탈 데 오르비고 36km

 8월 20일 일요일

아침에 짐을 싸다 이어 플러그를 잃어버렸다. 일어나자마자 분명히 케이스에 잘 넣어서 어딘가 안전한 곳에 잘 모셔 둔 것까지 기억이 났다. 하지만 그게 어디인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습관대로 슬링백에 넣었으려니 하고 더듬었지만 만져지지 않았다. 침대를 뒤집어 엎고 뒤이어 가방을 풀어헤쳤지만 손바닥만 한 가방 안에 콩알만한 이어 플러그는 달리 갈만한 곳이 없었다.


나름 숙면을 취하는데 큰 역할을 하는 물건이라 꼭 찾고 싶은데, 계속 가방을 털어봤자 헛수고였다. 비싸지도 않고 그저 구입하면 되는 물건이지만, 주말에 문을 여는 약국은 레온을 벗어나면 찾기 힘들 것이었다. 하릴없이 7시가 되도록 뒤적거렸지만, 더 이상 시간을 들인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다. 더 지체할 수도 없었으므로 찜찜한 마음을 안고 알베르게를 나섰다.


물론 나만 물건을 잃어버리는 건 아니다. 레온을 벗어나는 길에 싸구려 보잉 선글라스를 주웠다. 선글라스는 순례길에서 정말 잃어버리기 쉬운 물품이다. 그리고 대부분 해를 등지고 걷기 때문에 크게 쓸 일이 없는 물건이다.


한 시간여 걷다가 만난 기부제 쉼터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는데 페데리카가 도착했다. 얘는 자기 스틱을 알베르게에 두고 왔다고 하는데, 다시 가지러 돌아가지는 않겠다고 했다. 다리가 아프다고 해서 내 스틱 한 짝을 주었다. 내 스틱도 어차피 마리아에게서 공짜로 받은 것이다. 이래저래 다들 얻고 잃고 하는 곳이다.


레온에서 오스피탈 데 오르비고로 가는 길은 트로바호 델 까미노에서 두 갈래로 나뉜다. 북쪽 길은 차들이 씽씽 지나치는 큰 도로를 따라 걷는다. 볼 것은 없지만 거리상 조금의 이점이 있다. 남쪽 길은 작은 마을들을 거쳐 꼬불꼬불 가니 좀 더 걸어야 한다고 한다. 두 길의 거리 차이는 한 5km 정도 나는 모양이다.



순례자 대부분은 (내가 볼 땐 95%는 틀림없다) 북쪽길로 향하는데, 홍콩에서 온 조이썸은 굳이 남쪽대체 길로 가겠다 했다. 그녀는 무거운 배낭에 특이한 모양의 기타를 짊어지고 있었다. 배낭이 한 짐인 걸 봐선 걱정 근심이 많은 타입이다.


거기로 간다는 말을 듣고 남쪽길에 호기심이 동했지만 5km는 적은 거리가 아니기 때문에 약간 고민하다 동전을 던져보기로 했다. 도안이 나오면 북쪽, 숫자가 나오면 남쪽으로 가기로 했다.


결과는 남쪽. 결국 오늘 가야 할 거리는 35km가 넘을 것이었다.


 

남쪽길 고생의 시작



루돌프 출몰 지역



“세상은 우리의 알타미라 동굴이다.“ 그래피티 메시지가 멋지다. 살짝 과장하면 뱅크시라고 해도 믿어줄 만하다. 세상은 우리의 창의성, 예술성, 그리고 개성과 자아를 표현할 공간이다.



이렇게 그녀와 함께 걷게 되었다. 빠리 근방에서 워킹 홀리데이를 하고 있다는 그녀는 이젠 애들 보는 일에 지쳤다고 한다. 아하, 오페어(Au pair)를 하고 있는 모양이다. 오페어는 쉽게 말하면 식모 일이다. 현지 가정에서 아이를 돌보고 가사노동을 하며 숙식과 약간의 돈을 제공받는 프로그램이다. 물론 나는 오 페어를 해본 일은 없지만, 나의 외국 생활 시작이 호주 워홀이었기 때문에 대략 들어 알고는 있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걷다가 두 번째 마을을 지나며 길을 잘못 들었다. 따라갈 앞사람이 없는 길에선 종종 있는 일이다. 지도를 확인해 보니 이미 1km 정도 지나쳐 온 듯했다. ‘어찌해야 하나’ 그녀의 얼굴엔 이미 불안과 불신이 가득 찼다.


어차피 길은 길로 통할 것이고 그 길은 결국 사람이 사는 곳으로 통할 것이므로 나는 무사태평이다. ‘방향만 맞으면 되지’하는 대책 없는 낙관과 만용이다. 사실 이런 문명사회의 한복판에선 크게 위험하거나 잘못될 일이 없다.


결국 그녀는 갈림길로 다시 돌아가기로 하고, 나는 앞에 두 갈래길 중 비포장길을 택했다. 아마도 포장길은 아까 갈라진 북쪽 도로로 돌아갈 터였다. 무작정 발걸음을 서쪽으로 옮겼다.



뭔가 잘못되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잘못을 인정하고 돌아가진 못하겠다. 돌아가기엔 너무 멀리 왔기 때문이다.



지도를 확인하니 현재 두 길의 가운데로 산을 뚫고 지나가고 있었다. 옛날부터 순례자가 안 다니는 길엔 이유가 있는 법이었다.



비포장길이 점점 험해지고 산으로 통하는 길 위엔 사람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멀리서 사냥꾼의 총소리가 간간이 들리는 가운데 내 발소리에 놀란 토끼 떼와 사슴들이 덤불 속으로 황급히 흩어졌다.



겨우 길의 흔적만 있는 산과 숲을 헤치고 Chojas de Arriva 어쩌고 하는 마을에 도달하니 이미 12시가 다 되었다. 여기서 다시 마을 아래 남쪽 까미노로 돌아와 걷기 시작했다.




곧 무더위가 찾아왔고, 땡볕 아래 직선 아스팔트 도로를 지나게 되었다. 똑바로 뻗은 10km의 직선인데 마을은커녕 그늘과 쉼터가 1도 없다. 이런 길이 왜 까미노에 들어있는 것인가, 지역구 국회의원이 까미노에 넣어달라고 압력을 가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유지에서 사냥이 이루어진다는 뜻


걸음도 느리고 배낭도 무거운데 이 길 어딘가를 걷고 있을 조이섬이 걱정스러웠다. 괜히 나 때문에 길을 잘못 들어 더 고생하는 게 아닌가 미안스럽기도 했다.


낡은 트랙터 엔진을 양수기로 쓰고 있었다


오랜만에 만난 작은 가게에서 아이스크림을 사며, 혹시 기타를 멘 작은 동양 여자아이를 보았느냐 물었지만, 주인장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나보다 앞서는지 뒤에서 따라오는지도 알 수가 없었다. 마을을 벗어난 5km 지점에서 15:12분에 여길 지나갔다고 쪽지를 적어 아스팔트 바닥에 돌로 눌러두었다.



낡은 포장도로가 끝나자 이제는 비포장 돌길이 5km나 이어졌다. 발바닥이 쓰리고 아까 동전을 던진 내가 원망스러웠다.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뜯어말리고 북쪽 길로 가라고 해줄 텐데. 왜 나는 사서 고생을 하지 못해 안달인 것일까. 여기 구간이 메세타보다 더 힘들었다. 물론 날씨 탓도 있다. 길을 잃고 헤맨 것을 합하면 40km쯤 걸은듯하다. 약간 어지럽고 일사병 기운이 돌았다.



철로도 건너고,



5시 반에서야 겨우 오스피탈 데 오르비고 초입에 도달했다. 그늘 하나 없는 무성의한 쉼터가 객을 맞이했다. 바로 숙소로 향할까 했지만 다시 구경하러 나오지 않을 것이 뻔하므로 마을을 먼저 돌아보았다.



마상시합으로 유명하다는 길고 긴 다리를 지났다. 다리 밑에선 교각을 끼고 십 대들이 물놀이에 한창이었다. 가슴까지 차는 깊이에서 플라이낚시를 하는 조사들도 보였다. 해가 지고 다리에 불이 켜지면 멋질 것이다.



6시가 되어 알베르게에 체크인하였다. 오늘은 공립이 아니고 마을 중심에서 꽤 떨어진 Verde Hostel이라는 곳이다. 이때는 잘 몰랐지만 여기는 요가와 명상 프로그램이 있고 비건 메뉴로 저녁과 아침이 제공된다 했다. 컨셉을 잘 잡아서 그런지 특이한 거 좋아하시는 분들에게 인기 만점인 듯했다. 요가+오가닉 비건 메뉴. 대강 감이 오시는가? 뭔가 건강한 삶을 체험하고 있다는 그런 기분을 제공하는 곳이다. 페데리카는 이런 곳에 꼭 들러야 하는 타입이다.



꽤 늦게 도착하였으므로 개인 정비할 시간 없이 바로 요가 시간이 시작되었다. 스트레칭, 요가와 명상이 이어지고 까미노에서 얻은 것들을 이야기하며 나누는 시간이 이어졌다. 원형으로 지은 요가 하우스가 상당히 멋졌다.



맥주는 보리에서 나왔으니 비건 메뉴인가 보다. 그렇게 치면 와인도 포도에서 나왔으니 나도 이때만큼은 비건이다.


실내공간은 약간 협소하지만 많은 공을 들인 집이라고 할 수 있다. 실내공간의 퀄리티가 떨어지는 것은 아니나, 원래 계획한 숫자보다 침대를 더 구겨 넣은 느낌이다. 빨랫줄 부족이나 쓰레기통 부족 같은 사소한 문제도 있었다.



한켠에 야채를 기르는 비닐하우스가 있고, 넓게 잘 가꾼 잔디 위에 해먹, 테이블, 벤치를 배치하여 이야기하며 놀기 좋게 만들어 놨다. 히피스러운 분위기를 가미하고, 요가 하우스까지 더해서 뭔가 발리 우붓이나 태국 치앙마이 같은 데서 많이 본, 동양 판타지를 가진 서양 사람들에게 잘 먹히는 그런 분위기다. 수영장만 있으면 완벽한데 아쉽게도 없다. 대화가 어렵고, 방에서 와이파이를 붙잡고 사는 분들에겐 좀 난감할지도 모르겠다.



식사 전 항상 노래를 한다고 한다.



모기가 뜯거나 말거나, 날이 어둑해지도록 기타와 우쿨렐레를 뚱땅대며 노래를 부르고, 종이 말이 담배를 돌려 빨며 또 이야기가 이어졌다. 제공되는 맥주는 이미 동이 났지만 누구도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이렇게 계속 마주치는 사람들이 있다는 건 행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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