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일 차, 피스테라 - 비고
[무시아 - 피스테라 길 6편]
9월 6일 아침
순례를 마쳤으니 푹 잘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막상 그것도 아니었다.
아침 버스를 타는 게 이리 긴장되는 일이란 말인가. 하긴 35일 만에 처음 타보는 교통수단이다. 오로지 두 다리로만 이동하는 순례길에선, 그동안 우리가 겪어왔던 것과 시간과 공간의 느낌이 약간 다르다. 한 시간이면 대략 4-5km를 걷고, ‘하루’라는 시간은 대개 30km쯤의 거리에 해당하며, 어떤 때는 거점 도시 간의 거리를 하루라는 시간으로 치환하여 부르기도 한다.
이제 나는 그 수십일이나 걸어온 거리를 하루 만에 뛰어넘는, 도보 순례자에겐 초능력에 가까운 일을 하려는 참이었다. 그러니 이게 어찌 큰일이 아니고, 긴장이 되지 않을 수가 있단 말인가.
버스를 탄다는 느낌이란 이토록 어색하였다.
아침부터 피스테라의 버스 터미널엔 많은 이들이 모여들고 있었다. 빨리 떠나고 싶어 하는 건 아닐 테고, 혹여 버스를 놓칠세라 조바심에 일찍 나와 있는 것일 게다.
얼굴엔 다들 잠이 가득하다. 다들 나같이 밤잠들을 설친 모양이었다. 아니면 어젯밤 조금 과음을 하였는지도 모른다. 버스가 오기 전 마지막으로 피스테라의 거리를 배경으로 단체 촬영을 하는 이들도 있었다.
그리고 여행자와 순례자들 사이로, 조니가 50센트씩을 부탁하며 길 위쪽에서부터 내려오고 있었다. 내 옆에 있는 아주머니는 50센트의 청을 단칼에 거절하고 조니에게서 풍기는 냄새에 미간을 찌푸렸다.
마지막으로 그는 공립 알베르게 앞에 서있는 나에게 다가와 왜 어제 저녁에 해변으로 나오지 않았느냐고 물어왔다. 미안하다고 말하며 초콜릿 쿠키 반봉지와 주머니 속의 동전을 털어 1.20유로를 건네었다. 내년 이맘때 어디에 있을 건지 물으니 어느 길일지는 자기도 모른다고, 하지만 어딘가 까미노 위에 있을 거라고 대답하는 조니이다. 그는 이제 피스테라를 떠나 무시아로 향한다 하였고 서로 건강을 빌며 헤어졌다.
순례자들이 그를 단순한 걸인으로 여기지 않는 이유는 매우 간단하다. 그도 길을 걷기 때문이다.
그가 여느 걸인과 같이, 사람 많은 어느 대성당이나 슈퍼마켓 문전에 앉아 있었더라면 나도 이렇게까지 친절하게 대하진 않았으리라. 하지만 메세타에 발을 들인 첫날 그를 만난 이래, 우리는 그가 여기까지 걸어온 것을 보았고, 그를 마음속에서부터 동료로 인정하였다. 단지 그도 같은 길을 걷는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러니 혹시 까미노 어디에선가 조니를 마주치거든 50센트를 기꺼이 건네주시기 바란다. 그러면 그는 감사히 합장하며 자신이 머무는 들판이나 해변으로 당신을 초대할 것이다.
아코루냐 행 버스가 먼저 오고 뒤이어 산티아고로 향하는 8시 20분발 버스가 도착했다. 모두가 웅성대며 탑승하고, 곧 출발하였다. 그리고 피스테라를 벗어나는 버스의 창밖으로 조니의 마지막 모습이 멀어져 갔다.
중간중간 차창 밖으로 보이는 쎄 Cee를 비롯한 해변의 마을들은 평화롭고 아름다웠다. 피스테라와 마찬가지로 역시 누군가를 기다리며 가슴 졸이는 그런 일에 걸맞을 장소이다.
버스는 굽이굽이 작은 마을들을 거쳐 10시 35분 산티아고 터미널에 도착하였다. 산티아고 터미널 역시 누군가를 마주쳤다면 좋았을 장소가 아닐까 싶다. 내가 예약한 11시발 비고행 버스가 올 때까지, 혹시 아는 얼굴이 있을까 싶어 터미널 여기저기를 둘러보았다. 그러나 아무도 없었다.
비고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보게 될 광경이다. 기차역, 버스터미널과 함께 붙은 큰 쇼핑몰이다. 의류매장도 있고, 카페나 식당도 있으므로 굳이 바깥에 나가지 않아도 환승시간을 알차게 보낼 수 있다.
반나절이면 도시를 한 바퀴 둘러보는데 충분하리라 여겨 포르투행 5시 30분발 버스를 예약해 두었다. 하지만 터미널 바깥으로 나오는 순간, 다섯 시간으로 여길 다 돌아본다는 건 불가능하다는 걸 깨달았다. 생각보다 비고는 커다란 도시였다. 순례길에서 그동안 보아왔던 마을이나 도시와는 규모가 달랐다. 비고는 스페인에서 가장 규모가 큰 어항이라 한다.
바다를 끼고 있는 도시를 속성으로 돌아볼 때 쓰는 방법이 있다. 바닷가 쪽이 상업 및 관광 지구일 확률이 크므로 일단 바다 쪽으로 내려오는 것이다. 항구를 끼고 걸으면 어시장이 나오고, 어시장 근처에서 해산물이나 지역 음식으로 배를 채운 뒤 도시 위쪽에 위치한 번화가를 찾아가는 것이다. 그리고 언덕 가장 높은 곳에 도시의 상징물 같은 게 서있을 것이었다.
터미널에서 바다 쪽 방향으로 쭉 내려왔다. 역시나 바닷가엔 산책로, 공원, 각종 동상과 기념물들이 기다리고 있다.
해저 이만 리그의 쥘 베른 동상이 있고, 그가 비고와 무슨 무슨 관계가 있다고 적혀있다. 베른은 프랑스 사람인데 무슨 연유로 여기에 동상이 있을까 싶었다. 동상이 스파이더맨에 나오는 문어맨 악당 아니면 뿔뻬리아의 문어 요리사처럼 생겼다고 생각했다.
비고 관광 안내소에 들러 세요를 받았다. 이걸 왜 여기까지 와서 받느냐고 한다면 그냥 습관이다. 이젠 밥을 먹어도 도장, 커피를 마셔도 도장, 교회에 들러도 도장이다.
어시장 쪽으로 걷다가 방향을 틀어 광장 쪽으로 올라왔다. 어시장에 들르긴 시간이 좀 늦은 탓이다. 어시장은 대개 새벽 일찍 시작해 점심때면 영업을 끝내기 마련이다.
골목골목을 돌아다니다 파란색이 마음에 드는 적당한 곳에 들어가 점심을 먹었다.
점심 메뉴를 시키고 맥주와 커피를 더 시켜 입가심을 했다.
천천히 광장과 상업 지구를 걸으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희한하게 시내 곳곳에 짝퉁 명품을 파는 노점이 많다. 잠깐 사이에도 몇 군데의 노점을 지나쳤다.
Av. Gran Via 대로가 시작되는 곳엔, 어부와 그물을 형상화한 분수 조형물이 있다. 역시 스페인 어업의 중심도시답다.
이베리아 반도의 지형 특성상, 언덕으로 오르는 경사가 가파르다. 중앙의 대로 Av. Gran Via를 따라 오르막 무빙워크가 설치되어 있고, 무빙워크 주위로 쉼터를 조성하여 많은 시민들이 그늘에서 쉬고 있다. 도시 곳곳의 가파른 곳에도 에스컬레이터나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어 있다.
그리고 대로의 언덕 꼭대기에 말을 형상화한 커다란 조형물이 기다리고 있다. 여기가 프라자 데 에스빠냐이다.
다시 골목을 누비며 언덕을 내려와 버스 터미널로 돌아왔다. 쇼핑몰 안에서 물건을 사고 나머지 시간을 보내었다. 수박 겉핥기식으로 둘러보고 나니 더욱 아쉬움이 남는다. 2박 3일 정도 천천히 다녔으면 좋았을 것을 하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다음 목적지 포르투가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의 동선은 이렇다.
피스테라에서 산티아고, 산티아고에서 비고나 포르투 가는 버스는 온라인 예약하는 게 좋습니다. 주소는
중간에 국기 있는데 눌러서 언어를 변경하면 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