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과 마음의 경계에서 # 행성 -24
오전에 환자 이송을 하고,
잠시 쉬고 있는데 팀장님이 불렀다.
환자분들과 사적인 얘기는
절대 하지 말라는 당부였다.
1주일 동안 벌써 세 번째 당부였다.
말이 돌고 돌아 살이 붙어서,
원장님 귀에 들어간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있는 곳이니 어쩔 수 없다.
물어보는 걸 외면할 수도 없다.
환자분들은
방사선 치료와 항암 치료를 받고 나온다.
본인들도 힘들 텐데 가끔 붙이는 말 한마디를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모르겠다.
환자분들이 보통 물어보는 건 다 비슷하다.
몇 살이냐, 어디 사냐,
고향은 어디냐, 결혼은 했냐.
우스갯소리지만,
A4용지에 잘 정리해서
차에 그냥 붙여 놓을까도 생각했다.
팀장님도
내 걱정을 해서 얘기해 준 걸 알고 있다.
분명 나에 관한 이야기가 돌고 돌아
팀장님께도 다시 들어갔을 거다.
팀장님이 계속 당부하시는 것도 이해는 간다.
환자분들 질문에 하나씩 대답하다 보면
끝이 없다.
고향이 어딘지부터 시작해서
부모님 나이까지 나온다.
어떤 70대 후반 할머니께서 이런 말을 했다.
나는 집에 안 가고 싶어.
여기 있으면 밥도 주고, 운동도 하고,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잖아.
그런데 집에 가면 내가 다 해야 해
할머니는 진심이었다.
내 귀에는
할머니가 아프시고 난 후
할머니의 삶을 찾았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오후에 이송하는 환자는
빨리 집에 가고 싶다고 했다.
아이들이 보고 싶고,
일도 하고 싶다고 했다.
그런데 아직 몸이 성치 않아서
집에 가면, 많은 도움이 못 될 것 같다며
미안해했다.
저녁에는 70대 할아버지를 이송했다.
사람이 너무 오래 산다며
수명이 50까지가 딱 좋다고 하셨다.
할아버지 말대로면 난 5년밖에 안 남았다.
그런데 할아버지는
누구보다 치료를 적극적으로 받았다.
말을 몇 마디 나누다 보면
이 사람이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조금은 알 수 있었다.
병을 이겨내고자 하는 분들은
입맛이 없어도 밥을 먹으려고 했고,
회복도 조금은 빨라 보였다.
그리고 나는 그 인생들 사이에서
어디까지가 일이고,
어디부터가 마음인지 자꾸 헷갈린다.
차 안은 이상한 공간이다.
짧은 이동 시간 동안
사람들은 속마음을 조용히 얘기한다.
나는 그저 운전대를 잡고 있지만
그 말이 그냥 지나쳐지지 않았다.
집에 가기 싫다는 할머니의 말이
계속 마음에 남았다.
아프고 나서야 비로소
자기 시간을 갖게 됐다는 말처럼 들렸다.
누군가는 아파서 멈췄고,
누군가는 멈춰 서야 살게 된 것 같았다.
나는 매일 다른 인생을 태우고 운전한다.
사적인 얘기 하지 말라는 말을
왜 하는지도 이제는 알고 있다.
어디까지가 일이고,
어디서부터가 마음인지
아직은 헷갈리지만
시간이 지나면 알게 되겠지.
오늘도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었고,
삶을 나눴으니 조금은 행복한 것 같다.
그래서 오늘은
-24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