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야노와 거시기 사이 # 행성 -21
아침 6시 45분이면 어김없이
환우분들이 1층으로 내려와 차에 올라탄다.
봄이라고 하기엔 아직 찬 공기다.
환우분들이 감기라도 걸릴까 봐
차 히터를 먼저 세게 틀어 둔다.
처음엔 다들 어색하다.
서로 눈인사만 하고, 존댓말을 한다.
시간이 지나고
병원에서 치료받는 고정시간이 정해진다.
그러면
매일 같은 시간에 치료받으러 간다.
그때부터 환우분들끼리는
묘한 동지애가 생긴다.
누가 늦으면 오늘 안 보인다며
안부를 물어보기도 하고,
병원이 넓어서 길을 못 찾으면
길을 알려 주기도 한다.
의원에서 병원으로 가는 차 안에서는
사적인 대화도 오간다.
같은 시간, 같은 병원으로
치료받으러 가는
할아버지 두 분이 있다.
한 분은 전라도 사람이고
또 한 분은 경상도 사람이다.
두 분은 사투리가 정말 심하다.
한 분씩 대화할 때
무슨 말을 하는지 몰라서
다시 여쭤볼 때가 많았다.
그런데
두 분은 말이 잘 통한다.
두 분의 나이는 3살 차이가 난다.
서로 대화할 때 내가 알아듣는 내용은
해라니까, 거시기,
캐라, 우야노 같은 말뿐이다.
그런데 더 신기한 건,
가끔은 서로 대화를 주고받는다기보다,
서로 동시에 말해서 목소리가 겹치는데도
말이 통한다.
전라도 할아버지가 말을 먼저 꺼냈다.
“형님 심심한데 시장 가서 한 바꾸 돕시다.
내가 호떡 사줄랑게”
“...해가꼬, ...못묵어”
경상도 할아버지는
목소리가 작아서 무슨 말을 하는지 안 들렸다.
그 말을 찰떡같이 알아듣는
전라도 할아버지였다.
“그려 그믄”
두 분의 대화는 의원 앞에 도착해서야 끝났다.
전라도 할아버지는
시장도 다니고 친구도 불러 밥을 사 먹는다.
혼자 있는 시간을
어떻게든 피하려는 사람처럼 보인다.
반대로 경상도 할아버지는
말수가 적다.
창가에 앉아 천천히 식사한다.
식사가 끝나도 일어나지 않고
창밖을 한참 바라본다.
등은 굽어 있고
어깨는 유난히 말랐다.
그 뒷모습을 보면 가엾고 마음이 쓰인다.
그래서
나라도 옆에 가서 앉고 싶어진다.
의원 안에서는 대부분 침대에 누워 있거나
기다리는 시간이 길다.
몸은 아프고 사랑하는 가족들은 집에 있다.
주말에 전라도 할아버지가 집에 가는 날이면
경상도 할아버지는 혼자 남는다.
그날은 유난히 말수가 줄어든다.
아프면 몸이 먼저 힘들어지고
그 뒤에 외로움이 따라온다.
치료가 길어지면 입맛도 떨어지고
속도 메스껍다고 했다.
우리는 다들 어딘가
각자의 병을 안고 사는 것 같다.
몸의 병이든,
마음의 병이든.
그런데 누군가와 같은 시간에
같은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그들에게는 안심이 된다.
어쩌면 동지애라는 건
거창한 게 아닐지도 모르겠다.
같은 환우라는 것
같은 치료 시간을 기다리는 것,
서로 말이 안 통해도 고개를 끄덕여 주는 것.
건강은 약으로만 지켜지지 않는다는 걸 배운다.
어쩌면 그분들이 필요한 건,
가족의 따뜻한 말 한마디와
관심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오늘도 운행하며
활짝 웃는 얼굴로 인사를 건넨다.
혹시라도 그 짧은 이동 시간이
누군가의 외로움을
조금은 덜어 줄 수 있기를 바란다.
내가 건네는 인사가
누군가의 하루를 버티게 해 주면 좋겠다.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