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는 이유를 물으면 풀린다.

사람은 정리되는 순간 진정한다.

by 이청목

차 문이 열리자마자 큰 목소리가 들렸다.


“내가 언제 끝났는데 이제 오는 거예요?”


날 선 말투에

무슨 상황인지 이해하려고 숨을 한 번 삼켰다.


화를 내는 환우분과

환우분을 말리는 병원동행자분의 목소리로

정신이 없었다.


차 안은 그분들로 인해

아수라장이었다.


“끝나자마자 전화했는데, 왜 이제 와요.

사람을 한 시간 넘게 기다리게 하면 어떡합니까.”


환우분의 말에

나는 속으로 시간을 떠올렸다.


전화는 10시 20분쯤 왔다.

그때 나는 이미 그 병원으로 향하고 있었다.


“지금 가고 있습니다. 20분 안에 도착합니다.”

그렇게 말했지만

실제로는 15분 만에 도착했다.


그런데도 그분은 ‘한 시간’이라고 말했다.


그날은 병원으로 가는 길이 막히지 않았다.


도착이 빨랐고,

앞사람이 치료를 받으러 오지 않아

순서가 당겨졌다고 했다.


치료가 끝난 뒤에도

환자분들은 개인적인 이유로

다른 환자분을 만나 일을 봤다.


모든 일이 끝났을 때 동행자 분이

“이제 끝났습니다” 하고 전화주신 거였다.


그 과정에서

환자분을 도와주는 동행자분이

시간을 잘못 체크했고,

그 불편함이 내게로 흘러온 것이었다.


예전의 나라면,

그 자리에서 바로 반응했을 것이다.


“제가 언제 늦었습니까?”

“왜 저에게 화를 내세요?”

목소리도 덩달아 커졌을 테다.


다른 환우분들이 있는 상황에서

오해받는 게 싫었고,

무시받는 느낌은 더 싫었다.


하지만

그런데 이번에는 달랐다.


화가 올라오는 대신,

‘이건 오해구나’가 먼저 떠올랐다.


내가 해야 할 일은 싸움이 아니라 정리였다.


나는 그분의 말을 끝까지 들었다.

말을 끊지 않았다.


어떤 말이 나오던

이미 이해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조용히 그리고 단호하게

이름을 불렀다.


“P님.”

차 안이 잠깐 조용해졌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질문을 했다.


“P님, 지금 저에게

화가 나신 이유가 뭔가요?

제가 어떤 부분을 잘못했는지 말씀해 주시면,

바로 설명드릴게요.”


그분은 다시 말했다.


“한 시간 기다렸잖아요.”

나는 바로 반박하지 않았다.


환우분이 말을 더 이상 하지 않을 때

내가 이어서 말을 했다.


“P님, 제가 전화를 받은 건 15분 전입니다.

이미 이곳으로 이동 중이었고

말씀드린 것처럼 20분 안에 도착한다고 했고,

15분 만에 도착했습니다.”


그리고 한 번 더 물었다.


“제가 잘못한 게 있나요?

화가 나신 이유가 또 있나요?”


“내가 언제 화냈어요?”


언제 화냈냐는 p님에게

억지로 미소를 만들지 않았다.

그저 담담하게 말했다.


“차에 타시면서

목소리가 많이 높았습니다.”


그 말에 그분의 기세가 조금 꺼졌다.

차 안의 공기가 달라졌다.


그때 나는 깨달았다.


사람은 ‘맞고 틀림’보다

‘정리되는 느낌’에서 진정한다.

잠시 후 그분이 조용히 말했다.


“미안합니다. 내가 화를 냈네요.”


그 뒤로 몇 번 더 사과가 이어졌다.


내리실 때는 악수까지 하며

“정말 미안합니다”라고 하셨고

나는 “괜찮습니다”라고 답했다.


그 말은 형식이 아니라, 진짜였다.


화를 내던 환우분의 마음도 이해를 한다.


치료를 마치고 나온 순간의 감정은

모든 것이 불편하고 예민했을 것이다.


몸이 불편하고 예민해지면

기다리는 시간은

평소보다 더 고통이었을 것이고

기다림은 곧 억울함으로 바뀐 것이다.


나는 그 마음을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지만,

그동안 차 안에서 반복되던 장면으로 배웠다.


차 문이 닫히고,

나는 다시 도로 위로 나왔다.

신호를 기다리며 문득 생각했다.


예전의 나는

오해를 풀기 전에 먼저 상처를 받았다.


‘내가 잘못한 것도 아닌데’라는

억울함이 앞섰다.


그리고

그 억울함을 ‘목소리’로

증명하려고 했었다.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오해는 풀면 되고,

화는 이유를 물으면 된다.


그걸 내 일로 끌어안지 않으면,

상대의 감정은 상대의 자리로 돌아간다.


요즘 글을 쓰면서 달라진 게 있다면,

감정이 올라오는 순간에도

한 번 더 생각하게 된다는 점이다.


흥분하기 전에,

문장을 고르듯 질문을 고른다.

그 작은 차이가, 차 안의 하루를 바꾼다.


나는 이 일을 하면서

사람의 말투가 그 사람의 컨디션을

대신 말해준다는 걸 자주 본다.


오늘 P 님의 큰 목소리도,

결국은

불편함과 피로의 다른 이름이었을 것이다.


이 이야기를 쓰면서

한 가지는 조심하려 한다.


차 안에서 들은 삶은

누군가의 민감한 기록이다.


그래서

‘누가’보다 ‘어떤 순간’에

초점을 맞추려 한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한 문장을 마음에 적었다.

‘침착함은 참는 게 아니라, 정리하는 것이다.’


오늘도 나는

누군가의 하루를 무사히 옮겨드렸고,

내 하루의 감정도 무사히 옮겼다.


아마 이 연재는 거창한 교훈이 아니라

이동하는 20~30분 사이에 오가는 말들,

그 말이 남기는 표정들에 대한

기록이 될 것 같다.


오늘의 나는

그 표정 하나를 조용히 배웠다.


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