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나는 매일 병원으로 가는 길을 달린다.
아침 6시 45분이면
환우분들이 하나둘 1층으로 내려와
차에 올라탄다.
공기가 차가운 날이면 감기라도 걸릴까 봐
차 히터를 먼저 세게 틀어 둔다.
처음 만난 날에는
서로 눈인사만 하고 조용히 자리에 앉는다.
말이 많지 않은 아침이다.
하지만 같은 시간에
같은 병원으로 치료를 받으러 다니기 시작하면
조금씩 달라진다.
누가 하루 보이지 않으면
“오늘은 안 나오셨네” 하며 안부를 묻고,
병원이 넓어 길을 못 찾으면
서로 길을 알려주기도 한다.
서로 이름을 다 알지는 못해도,
같은 길을 함께 가는 사람들 사이에는
묘한 동지애가 생긴다.
내가 하는 일은 암 환자분들을
종합병원으로 모셔다 드리고,
치료가 끝나면 다시 모시고 오는 일이다.
처음에는 그저 운전이라고 생각했다.
누군가를 태우고 병원에 모셔다 드리고,
치료가 끝나면 다시 모셔 오는 일.
그렇게 하루를 보내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알게 되었다.
병원으로 가는 길은
단순히 이동만 하는 길이 아니라는 것을.
차 안에서는 생각보다 많은 이야기가 오간다.
어떤 분은 평생 열심히 살았는데
왜 내가 이런 병에 걸렸는지 모르겠다고 말한다.
어떤 분은 치료를 시작하면서
“그래도 완치될 수 있지 않겠냐?”라고
희망을 이야기한다.
항암 치료가 시작되면
몸이 얼마나 힘든지 조용히 털어놓기도 한다.
나는 그저 운전대를 잡고 있지만,
그 짧은 이동 시간 동안
사람들은 자신의 삶을 이야기한다.
젊은 시절의 이야기,
가족 이야기,
그리고 앞으로 남은 시간에 관한 이야기까지.
어떤 분은 이렇게 말했다.
“최대한 천천히 전이되게 해달라고
의사에게 부탁했어요.”
완치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남은 시간을 말하고 있었다.
언젠가 통증이 심해지면
가족들과 여행을 다니며
마지막 시간을 준비하고 싶다고 했다.
밤하늘의 별을 보고,
바다에 가서 파도 소리를 듣고,
그 기억을 마음에 담고 싶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듣는 동안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희망을 말하기도,
기적을 말하기도 조심스러웠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고개를 끄덕이며 이야기를 듣고,
안전하게 병원까지 모셔다 드리는 것뿐이었다.
차 안은 이상한 공간이다.
병원으로 가는 짧은 이동 시간 동안
사람들은 평소 쉽게 꺼내지 못하는 이야기를
조용히 꺼낸다.
어떤 사람은 집에 가기 싫다고 말한다.
집에 가면
다시 해야 할 일들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또 어떤 사람은
하루라도 더 살 수 있기를 바란다.
나는 매일 다른 인생을 태우고 길을 달린다.
처음에는 그 이야기들이 마음에 오래 남았다.
어떤 날은 마음이 무겁기도 했고,
어떤 날은 이상하게 따뜻해지기도 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생각하게 되었다.
이 길에서 만난 이야기들을 기록해 보고 싶다고.
이 브런치 북은
병원으로 가는 길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다.
그리고 그 길 위에서
내가 조금씩 배우게 된
삶에 대한 기록이기도 하다.
거창한 이야기는 아닐지 모른다.
다만
병원으로 가는 20분, 30분 사이에 오가는 말들,
그 말이 남긴 표정들,
그리고 그 순간들 속에서
내가 느꼈던 마음을 조용히 적어 보려고 한다.
이 글은 특별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삶에 관한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시간을 안고 살아가고 있고,
그 시간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매일 선택하며 하루를 보낸다.
나는 오늘도 병원으로 가는 길을 달린다.
그리고 그 길 위에서
또 한 사람의 이야기를 만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