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을 결심했다.

이별 # 9 - 사랑과 현실 사이, 나는 사랑을 선택했다.

by 이청목

그렇게 시간은 흘렀다.


우리는 서로를 배려한다며

평일에는 수요일, 금요일 교회 가는 날

만났고 집에 바래다주는 게 전부였다.


토요일은 그녀가 피곤하지 않은 날에만

가끔 만날 수 있었다.


나는 매일 보고 싶었지만,

그녀의 상황을 이해하며

교회에서라도 만나는 걸로 만족했다.


돌이켜보니

둘만의 시간을 따로 가진 적이 거의 없었다.


이 점이 속상해서

목사님께 상담을 드린 적도 있었다.


하지만 목사님의 대답은

“결혼하면 많이 달라질 거다”라는 말씀과

“선교지에서 만나 교제하면 잘 산다”라는

말뿐이었다.


나는 그 말씀을 믿고 참고 기다렸다.


그녀는 차멀미가 심하고 늘 피곤하다고 해서

어딜 놀러 가는 건 꿈도 못 꿨다.


그래서 주말에 시간을 낼 수 있으면

우리 집에서 영화 보고, 밥 먹고,

배달 음식을 시켜 먹으며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그럴 때마다 느낀 건,

그녀는 우리 집에 오면

손끝 하나 까딱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오빠 물 좀 갖다 줘.”

“오빠 휴지 좀 줘.”

“오빠 아이스크림 먹자.”

늘 이런 말만 했고,


치우는 것도 나는 바로 치우는 성격인데

그녀는 다 쉬고 나서야

천천히 치우는 스타일이었다.


그래서 내가 웃으며 물어봤다.


“근데 왜 가만히 앉아서 다 해달라고 하는 거야?”


그녀는 이렇게 대답했다.

“나는 오빠가 이렇게 해주는 게

사랑받는다는 느낌을 받아.”


나는 솔직히 말했다.

“나도 네가 뭔가 해줘야

사랑받는다고 느끼는데?”


“나는 손님이잖아.”


“그럼 결혼 전까지는 같이 안 할 거야?”


“오빠가 좀 해주면 안 돼?”


“아니, 안 되는 게 아니고 같이 하면 좋잖아.

그래서 하는 말이지.”


이처럼 사소한 부분에서

그녀와 나의 차이가 보이기 시작했다.




시간이 흘러 교제한 지 1년쯤 되었을 때,

교회에서 터키 선교여행을 간다는 소식이 있었다.


나는 이번에도 신청했다.


이스라엘에서

그녀에게 마음을 품고 고백했던 기억이 있었기에,


이번에는 교제 중인 상황에서

함께 터키에 간다는 것이 나에겐 큰 의미였다.


교회에서는

이스라엘 때보다 두 배나 많은 인원이 신청했고,

청년들만 해도 10명 가까이 되었다.


나는 그녀와,

그리고 이스라엘에 함께 갔던

청년 자매 한 명과 함께 스텝으로 섬기게 되었다.


그동안 술도 안 마시고,

사람들을 배려하려 애쓰고,

말투도 부드럽게 바꾸려 노력하다 보니

교회 안에서 나를 따르는 동생들도 많이 생겼다.


가장 좋은 건,

어머니와 누나, 매형, 조카들까지 모두

“네가 많이 달라졌다, 부드러워졌다”라고

칭찬해 준 것이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그녀 덕분이라며 고마워하라고

그녀를 칭찬하곤 했다.




터키에 도착한 뒤 나는

사진 촬영을 담당하게 되었다.


목사님께서 자료로 쓰실 사진과

성도들의 모습을 담아야 했는데,

자연스럽게 그녀와 함께 다니고 싶었다.


그러나 그녀는 내게 대뜸 말했다.

“오빠, 좀 떨어져서 걸어. 청년들 좀 챙겨.”


“같이 좀 가면 안 돼?

우리가 교제하는 거 다 아는데…”


“여기는 공적인 자리잖아.”


그 말에 기분이 확 상했다.

선교지에 와서도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목사님께서 우리 둘을 따로 불러 말씀하셨다.


“청목 형제,

여기는 선교지니까

되도록 같이 다니는 건 자제하세요"


"네? 아까 서로 얘기하고 나서

같이 안 다녔는데요..."


"나도 청목형제가

같이 다니려 하는 거 많이 봤어요”


그 말을 들으니 억울했다.


이미 나는 그녀 말대로

떨어져서 다니고 있었고,

단지 사진 찍는 일을 하다 보니

우연히 겹쳤을 뿐인데…


그녀가 목사님께 이야기를 전한 것 같았다.


그래서 목사님이 내 상황을 잘 알지도 못한 채

지적하는 듯 느껴져 마음이 무거웠다.

그리고 너무 서운했다.


‘내가 너무 쪼잔한 걸까?’

스스로 자문했지만, 동시에 이런 생각도 들었다.


‘교제 후 처음으로 같이 온 해외 선교지인데…


교회 안에 있는 것도 아니고,

손잡고 다니자는 것도 아니고,

그냥 옆에 걷고 싶었던 건데,

이마저도 안 되다니.’


서운하고 기분이 상했지만,

내 감정에 휘둘리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오히려 더 청년들을 챙기고,

그녀는 신경 쓰지 않으려 애썼다.




터키에서 돌아온 뒤 나는 많은 생각을 했다.


교제한 1년 동안 있었던 일들을 정리해 보니,

교회에서의 그녀와

둘이 있을 때의 그녀는 달랐고,


교회일이 나보다 더 중요한가?라는

생각이 들어서

시간이 지날수록 마음이 점점 힘들어졌다.



그러던 어느 날,

목사님과 단둘이 낚시를 가게 되었다.

목사님은 중요한 말씀을 하실 때면

낚시를 함께 가자고 하셨다.


낚시터에서 목사님은 내게 물으셨다.


“청목 형제, 요즘 그녀와는 어떠세요?”


나는 터키 다녀온 뒤의 감정과

상황을 솔직히 말씀드렸다.


그랬더니 목사님은 늘 하시던 말씀을 반복하셨다.


“결혼하면 달라집니다.

선교지에서 교제하면 무조건 결혼하게 돼요.”


늘 하시던 말씀이지만

그 말씀을 들으며 나는 다시 다짐했다.


그래, 지금도 내가 노력하고 있고,

그녀도 나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하지 않는가.

결국 내가 원하는 건 그녀와 함께하는 일상이고,

여행이고, 밥을 먹는 소소한 시간들이다.


그것을 온전히 누리려면

결국 결혼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마음에 깊이 자리 잡았다.


그래서 결심했다.

나는 그녀에게 결혼하자고 말해야겠다고.

그럼 지금보다 더 행복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