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 #22 - 끝내 우리는 함께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괴사성 폐렴이라는 병은
생각보다 훨씬 버거운 병이었다.
입원하기 전까지는 기침도 안 나오더니
기관지 내시경을 하고 나서
2박 3일 동안 밤낮을 가리지 않고
기침이 나왔다.
입이 바짝 말랐고,
목소리조차 나오지 않았다.
그것만으로도 고통스러웠다.
하지만 병원에 누워서
많은 생각을 정리할 수 있었다.
우리의 다툼이 돈이 없어서일까?
나는 그녀를 싫어하고 있나?
나는 그녀를 사랑하고 있나?
나는 그녀를 행복하게 해 줄 수 있을까?
평소엔 지나가듯 생각했던 것을
노트에 하나씩 적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나의 감정은 하나씩 정리가 되었다.
돈이 없어서 우리는 다툼이 잦았을까?
돈이 없어서 다툼은 있었지만
그게 오로지 돈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럼 돈이 많으면 다투지 않았을까?
돈이 많았어도 우리는 서로 다른 점이 많아서
다투었을 것이다.
나는 그녀를 싫어하고 있나?
나는 그녀를 싫어하지 않는다.
내가 그녀를 싫어했다면
그녀의 얼굴이 보고 싶지도 않았을 것이다.
나는 그녀를 사랑하고 있나?
지금 현재로는 나는 그녀를 짝사랑했던 거 같다.
하지만 너무 힘들다 더 이상 이어갈 자신이 없다.
나는 그녀를 행복하게 해 줄 수 있나?
나는 그녀를 행복하게 해주고 싶었지만,
그녀는 나와 함께할 때 오히려 불행했다.
그녀는 그녀의 가족들과 있을 때
그리고 교회일을 할 때
가장 행복해한다.
나의 마음을 결정하는 순간이었다.
침대만 커튼으로 가려져있는 공간에서
나는 울고 또 울었다.
다른 입원 환자들이 들을까
소리를 삼켜가며 울었다.
그녀에게 메시지가 왔다.
"오빠 필요한 거 있음 얘기해 줘~
밥은 잘 나와?
이따가 오후 수업 시작 하기 전에
갈 수 있음 갈게"
그녀는 나에게 세상 친절하게 대해줬다.
하지만 나의 마음은 아프기만 했다.
"아냐 괜찮아 밥도 잘 나오고
바쁜데 오지 않아도 돼"
"오빠가 아프고 나서 많은 생각이 들었어
나도 더 노력해 볼게
우리 서로 다시 잘해 보자"
"그 얘기는 6월 이후에 하기로 했으니
그때 얘기 하자"
나는 그녀가 다시 노력해 보자는 말을
듣지 않았다.
난 이미 노력을 계속해왔고
연애 4년, 결혼 생활 3년 내내
그녀를 위해 애써왔다.
하지만 결론은
나는 그녀를 행복하게 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는 거다.
그녀와 나는 행복한 순간이 서로 다르다.
나는 그녀와 대화를 하고, 산책을 하고,
영화를 보고, 여행을 가고
우리가 함께 하는 순간이 행복했다.
하지만 내가 행복해하는 그 순간들이
그녀는 노력을 해야만 가능했고,
결국 내 행복을 위해선
그녀가 애써 노력해야 했다.
하지만 그녀는 교회일이나,
센터에서 수업을 하기 위해선
체력을 아껴야 했다.
그로 인해
나와 함께하는 순간들은 줄어들었고
내가 행복해하는 순간들은 점점 사라졌다.
병원에 있는 열흘이라는 시간은
내 인생에 가장 마음 아픈
이혼이라는 것을 결심하는 순간이었다.
7월 초
퇴원을 하고 나서 집으로 왔다.
깨끗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열흘 밖에 입원을 안 했는데
왠지 모르게 집이 낯설게 느껴졌다.
나는 이혼 이야기를 어떻게 꺼내야
그녀가 덜 상처받을지 고민했다.
상처 없는 이별은 없겠지만
그래도 최대한
그녀에게 상처를 주고 싶진 않았다.
이야기를 하는 것조차 힘들었고
나에겐 용기가 필요했다.
그녀와 얘기를 할 땐
눈물을 흘리지 않으려 애써 참았다.
그러다 보니 나의 말투는
어느새 퉁명스러운 사람이 되어있었다.
"우리 잠깐 얘기 좀 할까?"
"알겠어"
"우리가 7월에 얘기하자고 했잖아
생각 좀 해봤어?"
"응 나는 오빠가 이번에 아프고 나서
많은 생각이 들었고 반성도 많이 했어
그래서 내가 더 많이 노력해야겠다고 생각했어"
"나는 너무 힘들었어 그래서 이혼을 생각했어
그래도 1달 정도 더 생각해 볼까 해
생각이 바뀌진 않겠지만"
"1달 뒤에도 이혼할 생각인데
굳이 왜 더 생각해?"
그녀는 나의 말에 화가 난 거 같았다.
그녀도 이렇게 지내는 게 힘들었을 테니까.
"그래도 시간은 필요할 것 같아서"
"1달 동안 기다리는 것도 힘들잖아
1달 후에도 똑같은 결정 내릴 거면
뭐 하러 1달을 기다려"
"그럼 그냥 이혼하자는 거지?
알겠어"
이렇게 대화는 끝났다.
다음날 저녁
그녀는 퇴근 후 조금 늦게 들어왔다.
아무래도 교회에서 기도를 하고 온 거 같았다.
"오빠 잠깐 얘기 좀 해"
"어 얘기해"
"우리 다시 노력해 보자
내가 잘할게"
"아냐 난 마음에 결정을 내렸어
병원에 있으면서도 마음을 정리했어"
그리고 그동안 있었던 나의 마음
내가 왜 이혼을 결정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나는 그녀를 행복하게 해주지 못하고
그녀도 나를 행복하게 해주지 못하는 결론을
얘기했다.
"정말 나한테 미안하다면
우리가 헤어지는 동안에라도 잘해줘
부탁할게"
"알겠어...
난 오빠가 평생 내 옆에 있을 줄 알았어
그래서 더 못했나 봐 미안해"
그녀도 나도 울었다.
떨리는 그녀의 어깨도 감싸줄 수 없었고
내 눈물을 닦아줄 사람도 결국 나뿐이었다.
우리는 이제
아픔도 혼자 감당해야 하는 사람,
사랑했지만 끝내 함께할 수 없는 사람임을
받아들여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