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 #21 - 나 진짜 아팠어
5월 체육 대회가 있던 날
나는 차 안에서 네 시간이나 혼자 있었다.
며칠 전부터 몸이 좋지 않았다.
손발이 시리고 기운도 없었고,
장염에 걸린 듯 배도 계속 아팠다.
체육대회 당일 아침 역시 힘들었다.
체육대회만 떠올려도
괜스레 마음이 씁쓸해졌다.
상견례 전 있었던 일,
종아리 근육이 파열됐던 일
여러 가지 일들이 생각이 난다.
예배시간이 끝난 후에는
혹시 내가 코로나일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에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줄까 봐
네 시간이나 차 안에서 버텼다.
그녀는 나에게
집에 먼저 가서 쉬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나도 집에는 그녀와 함께 가야 할 것 같아서
그녀를 기다렸고
그녀는 체육대회가 다 끝나고
차로 돌아왔다.
"오빠 괜찮아?"
그녀는
체육대회 MC를 보느라 얼굴이 빨갛게
상기되어 있었다.
역시 그녀는
교회 일을 할 때 가장 열정적이고
행복해한다.
그녀가 웃는 순간이 언제였는지,
그리고 나는
그녀를 행복하게 해주지 못한다는 사실을
그때 또 한 번 깨달았다.
시간은 지나 6월이 되었다.
내 몸은 점점 지쳐 갔고
컨디션은 나아지지 않았다.
"청목아, 너 몸이 많이 안 좋아?"
교회 집사님이 물으셨다.
"네, 요즘 계속 손발이 시리고
기운도 없어요.
장염기처럼 배도 아프고요."
"너 갱년기 아냐? 요즘은
40대에도 온대.
가서 영양제라도 한 대 맞아봐"
나를 걱정해 주는 마음이 감사했다.
그녀도 내가 걱정이 되었는지
병원을 가보라고 했다.
하지만 나는 병원을 가는 것조차
그녀의 눈치가 보였다.
아파도 일을 해야 한다는 압박이 더 컸다.
하지만 몸은 계속 안 좋았고
쉬는 날 동네 병원으로 갔다.
동네 작은 병원에서는 몸살과 장염이
함께 와서 그렇다고 했다.
약을 먹으면 처음엔 괜찮았지만,
곧 효과가 떨어졌다.
센터에서 일하다가
눈이 감겼다.
기운이 없고, 어지럽고, 입맛도 사라졌다.
점심시간이 되어
그녀와 함께 점심을 먹으러 밖으로 나왔다.
"오빠 뭐 먹을 거야?"
"모르겠어. 너 먹고 싶은 거 먹자
난 딱히 없어"
"나도 먹고 싶은 건 별로 없는데..."
"그럼 그냥 부대찌개 먹으러 가자!"
그렇게 부대찌개를 먹으러 가는 도중에
혹시 내가 코로나면 어쩌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잠깐! 혹시 내가 코로나일 수도 있으니까
따로 밥 먹는 게 좋을 것 같아"
"그래, 알겠어. 따로 먹자!"
그녀는 기다렸다는 듯 바로 대답했다.
나는 화를 낼 기운조차 없었다.
오히려 그런 반응에 익숙해지고,
기대조차 하지 않게 됐다.
밥을 먹으러 가려고 했지만
몸이 너무 힘들었다.
그녀가 몇 미터 앞에 가고 있는데
부를 힘조차 나지 않았다.
그녀가 뒤를 돌아봤다.
순간 이때다 싶어 나는 겨우 말했다.
"나 몸이 너무 안 좋아서
집에 가서 쉬어야겠어
나 집에 가서 좀 쉴게.."
"알겠어 들어가"
다른 말은 없었다.
집에 가는 도중에 그녀에게서
카톡이 왔다.
'오빠, 아파서 집에 가는 건 이해하는데
통보식으로 얘기하지 말고,
상의하듯이 들어가도 될까?라고 물어봐줘"
카톡을 보며 웃음이 났다.
그리고 곧 눈에는 눈물이 고였다.
"그래서 집에 가야 할 것 같다고 얘기한 거야!
통보한 게 아니고, 얘기한 거라고
나 진짜 아파서 그런 건데
지금 꼭 이런 말 해야겠어?"
말로 표현이 안 됐다.
'난 너에게 이 정도밖에 안 되는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집에 가서도 눈물이 났고
울다 지쳐 잠이 들었다.
다음 날도 똑같이 출근했지만,
상태는 더 나빴다.
이제 서 있는 것조차 힘이 들어
계속 앉고 싶었다.
"나 수업하기 전에
병원 가서 영양제라도 맞고 와도 돼?"
"옆에 가까운 병원 가"
"아냐 조금 걸어도 잘 보는 데 다녀올게"
"오빠 힘들어하니까 말한 거야
가까운데 가면 편하니까"
"내가 알아서 할게"
내가 원래 가려고 했던 병원으로 갔다.
"간도 좋지 않고, 장도 상태가 안 좋아 보이네요.
간 초음파, 엑스레이, 피검사하고
영양제를 맞읍시다!"
말씀해 주신 순서대로 진행이 됐고
영양제를 맞으려는 순간,
간호사가 다급히 들어왔다.
"잠깐만요!! 이청목 님,
원장님부터 다시 뵈셔야 해요
"네? 무슨 일이 있나요?"
"엑스레이 결과를 먼저 보셔야 할 것 같아요"
그 순간은 영화 속 장면 같았다.
'빨리 큰 병원 가라고 하는 거
영화나 드라마에서 많이 봤는데
설마... 아니겠지?'
하지만 현실이었다.
엑스레이 사진에는
하얗게 번진 두 군데의 그림자가 선명했다.
"음...
이청목 씨 지금 엑스레이 사진을 보니
병명이 뭔지는 CT를 찍어봐야 알겠지만
심각한 상황이에요.
소견서를 써줄 테니
얼른 큰 병원으로 가세요.
작은 병원 말고 대학병원이나
종합병원처럼 큰 병원으로 가고
응급실로 바로 가셔야 하는 상황입니다."
망치로 머리를 맞은 기분이었다.
이게 지금 무슨 말이지?
나는 센터에 들려 그녀에게 설명을 하고
바로 응급실로 향했다.
그리고 곧 입원을 했다.
병명은 '괴사성 폐렴'.
말 그대로 폐가 썩어 들어가는 병이었다.
그것도 두 군데나.
태어나서
다치거나 교통사고로 입원한 적은 있었지만
병으로 쓰러진 건 처음이었다.
몸이 아픈 것도 힘들었지만
마음이 더 서러웠다.
난 밤낮없이 정말 열심히 일했고
센터도 성장했다.
처음 그녀와 했던 약속
술도 끊고, 사람을 잘 섬기고
말투도 예쁘게 하겠다는 약속도
지켜내려 애썼다.
그런데 돌아온 건
괴사성 폐렴이라는 진단이었다.
암처럼 큰 병은 아니었지만, 허무했다.
가슴 한가운데
커다란 구멍이 뚫린 것 같았다.
아무리 숨을 쉬어도
공기가 차오르지 않은 느낌이었다.
답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