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 #20 - 미안해, 라면 냄비 던진 거 아니야
그녀는
그녀의 어머니와, 언니, 형부
조카들과 함께 있을 때 행복해했다.
반달눈이 되며 웃는 모습,
음식을 맛있게 먹는 모습,
조카들을 사랑스러운 눈으로 보는 모습
나에게는 연애 초기에 볼 수 있는 모습이
그녀의 가족들과 함께 있을 땐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나왔다.
그녀의 열정은
교회에서 그녀가 맡을 일을 할 때 빛났다.
내가 그녀를 처음 봤을 때
그 모습 그대로였다.
그녀는 여전히
결혼 전의 모습 속에서 머무는 듯했다.
그녀가 행복해하는 모습이 좋아 보였고
그녀의 열정이 멋있어 보였다.
반대로 나와 함께 있을 땐
한없이 무기력한 모습이었고
행복도, 열정도 보이지 않았다.
일요일 교회를 마치고 집에 와서
잠깐 산책을 하자는 말에도
그녀는 힘들다며 쉰다고 했고
카페를 가자고 하는 말에도
그녀는 피곤하다며 집에 있겠다고 했다.
2달간 친구처럼 지내자고 했지만,
사실상 우리는 점점 멀어지는 시간이었다.
나는 우리 가정에 도움이 되고 싶었다.
그리고
더 이상 아내가 일하는 센터에서
얹혀 일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싫었다.
이때부터 무자본 사업에 관련된 일을
찾아보게 되었다.
여러 가지 무자본 일 중에
센터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블로그를 키워 협찬을 받는 것과
온라인으로 물건을 파는 일
이렇게 두 가지로 축소가 되었다.
그녀에게도 이 일을 하겠다고 얘기했다.
"오빠 그거 하면
언제부터 수익이 생기는 건데?"
"바로는 안 생기지 블로그도 커야 하고
글도 쌓여야 하고 시간이 좀 걸려"
"그럼 그건 집에서 하면 안 되는 거야?
센터 일 하는 것 때문에 방해되는 거면
집에서 써도 돼"
나를 위해 말을 하는 그녀였지만
나는 곧이곧대로 들리지 않았고
또 이렇게 얘기하는구나 싶었다.
난 현실적으로 말해 주었다.
"그럼 워크인으로 오시는 회원이나,
나도 없는데 네가 수업할 때
핸드폰으로 연락 오는 상담은 못 받잖아
그리고 상담을 예약하고 온다고 해도
네가 수업 중이면
어차피 내가 다시 센터를 와야 하는데
그냥 센터에서 일하는 게 가장 베스트야"
그녀는 또 나에게
센터가 아닌 다른 곳에서 일하라고 한다.
이제 이런 말을 듣는 것조차 지친다.
솔직히 나도 센터에서 일하는 게 너무 답답했다.
서로 다툼이 일어나는 것도 싫었다.
하지만 지금 다른 일을 하면
매출이 떨어질 거라 생각이 됐고
지금보다 매출이 조금만 더 올라가면
내가 다른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난 최선을 다해 노력하고 있었다.
그날 저녁 우리는 퇴근이 늦었다.
그녀는 배가 고팠는지 라면을 끓이고 있었다.
무언가 대화를 나누다가
대화는 또 다툼으로 번졌다.
"이럴 거면 나랑 왜 결혼한 거야?"
"오빤 왜 내 마음을
내 감정을 몰라주는 거야?"
대화 도중 펄펄 끓고 있는 라면이
내 눈에 들어왔다.
라면 국물은 어느새 쫄아들고 있었고
난 냄비가 탈까 봐
냄비를 들어 싱크대로 옮겨 놓으려고 했다.
펄펄 끓던 냄비는 손에 닿는 순간
화상을 입을 만큼 뜨거웠다.
나는 냄비를 싱크대로 던지듯 놔버렸다.
'탕' 소리와 함께
내 심장도 함께 내려앉았다.
라면 냄비 '탕' 소리 덕분에
그녀와 대화도 끝났다.
그녀는 주섬주섬
싱크대에 있는 라면 냄비에 물을 붓고는
그 라면을... 다시 먹었다.
평소엔 덜 익은 면을 좋아하던 그녀가,
그날은 불어 터진 라면을 그냥 먹었다.
'하...'
나는 라면 한 그릇조차 편히 먹게 하지 못하는
남편이었다.
그 순간, 그녀를 위해 쌓아 올린
모든 각오가 무너져 내렸다.
그녀가 너무나 안쓰러웠고 불쌍해 보였다.
나와 함께 사는 게,
라면 한 그릇마저 마음 편히 못 먹는 일이구나
라면이나 먹이고 얘기할걸...
마음이 찢어지는 듯해,
흐르는 눈물을 들키지 않으려
도망치듯 2층으로 올라왔다.
화장실 샤워기를 틀어놓고
한참을 흐느끼며 울었다.
그날 느꼈다.
난 그녀를 행복하게 해주는 사람이
아니라는 걸...
나만 행복하지 않은 게 아니었다는 걸...
그녀도 정말 많이 힘들겠지
아까 냄비 던진 거 아닌데 미안했다.
내가 그녀를
행복하게 해주지 못한다는 걸 알았고
그녀를 행복하게 할 힘도, 웃게 할 방법도...
내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