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기 이사 오는 누군가에게도

따뜻한 집이 되길 # 행성 -48

by 이청목

11월 아침

일어나 커튼을 열었다.


어느샌가 뜨거웠던 창가의 햇살은

방 안을 따뜻하게 데워주는 계절이 되었다.


차를 마시며 느긋하게 창가를 바라보았다.


사람들이 분주히 오가고,

이삿짐 차량은 기다란 사다리를

하늘로 길게 뻗어 올리고 있었다.


날씨가 좋으니 이사를 많이 하는 모양이다.


나는 혼자 이사를 했다.


이사할 때 너무 힘들었어서

다음번 이사를 할 땐,

꼭 포장이사를 하리라 다짐을 했던

두 달 전이 떠 올랐다.


9월 9일 화요일 오전

나는 강동구로 이사를 왔다.


평일 오전이었고

이혼으로 헤어지게 되어 이사를 하게 된지라

누군가에게 도와달라 부탁할 사람도 없었다.


말 그대로 사람이 없었다.


교회, 집, 일터

매일 반복되던 나의 일상이었다.


그녀와 함께 다니던 교회도

더 이상 다닐 수 없게 되었다.

이제 친구도 지인도 없다.


혼자 짐을 싸고 물건을 정리하며

얼마나 울었던가.


옷가지와 이불을 박스에 담아

이사 갈 집 주소로 택배를 부쳤다.


그리고 나머지 짐을 승용차에

차곡차곡 테트리스를 하듯 실어 넣었다.


안 들어갈 듯했던 짐들이 차곡차곡 쌓이며

다 들어갔다.


강동으로 이사를 오던 날은

유난히 멀게 느껴졌다.


아쉬움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다가올 날들에 대한

걱정 때문이었을까.


이런저런 생각을 뒤로한 채

속도를 올리며 강동에 도착했다.


짐을 풀기 전,

집은 이미 낯섦으로 가득 차 있었다.


이전 사람들이 남기고 간 흔적은 지저분했고,

청소도 덜 되어 있었다.


새로 시작한다는 설렘보다,

남이 떠난 자리에 얹혀 들어온 듯한

무거움이 더 컸다.


부동산에서는 미안하다며

이전 세입자들에게 전화를 해

입주청소를 부탁을 했다.


60대 후반 정도 되어 보이는

아주머니가 오셨다.

부랴부랴 청소를 해주러 와서 고마웠다.


완벽하진 않았지만,

그마저도 내겐 감사했다.


짐을 정리하다 멈춰 선 건

수건과 신발 때문이었다.


수건은 내가 운영하던

필라테스 센터 1주년 때

선물용으로 맞췄던 것이었다.


신발은 지난 3년간 나와 함께했던 운동화였다.


신발을 버리려다 문득 떠올랐다.


한 달 전,

그녀는 함께하는 마지막 생일이라며

이전 신발과 같은 브랜드에서

신발을 사주었다.


마치 그동안 고생했다며

위로를 해주는 기분이었다.


나는 닳은 신발을 버리고,

새 신발을 신었다.


마치 지나간 과거를 보내고,

새로운 시작을 내 두 발에 신은 것 같았다.


정신없이 이삿집 정리를 하고

시계를 보니 새벽 4시였다.


아직 정리하지 못한 짐을 뒤로하고

씻고 누워 잠을 청했다.


첫날, 방 안은 공허했고 외로웠다.


불을 끄고 누우니 슬픔이 밀려왔고,

불안이 머릿속을 가득 메웠다.


출근할 곳도, 안정된 수입도 없는 현실.

고정지출과 빚은 어깨를 눌렀다.


“나는 이제 무엇으로 살아야 하나.”

스스로에게 수없이 물었다.


지금 당장은 아무런 방법은 없었다.


하지만 다짐했다.

쓰러지지 않겠다고.

다시 한번 살아 보자고.


나에게 필요한 건,

돈도 성공도 아닌

살아있음 그 자체였다.


두 달이 지난 지금은

새 집의 공기는 이제 따뜻하다.


답답하던 7평 남짓의 공간은

나에게 편안한 집이 되고 있다.


이제는 건강을 회복하며,

행복을 되찾고 있다.


억지로 버티는 하루가 아니라

의미 있는 하루를 살아간다.


저기 이사 오는 누군가에게도

이곳 강동구가 그런 의미 있는 곳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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