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천히 걸어본다. # 행성 -47
오랜만에 아침 산책을 했다.
3주 전이었으면 아침 일찍 일어나
운동부터 했을 텐데,
뱃속에 작은 혹을 떼어내느라
이제야 산책부터 다시 시작했다.
의사 선생님이 천천히
걸으라고 했던 말이 생각났다.
머릿속으로 '천천히'를 생각하며 걸었다.
매일 아침저녁으로 다녀서,
익숙했던 길이지만
오랜만이라 그런지 풍경이 낯설었다.
그새 풀들이 다 사라지고,
아침 햇살을 받아 반짝이던 햇살들이
바람에 흩날렸다.
그 느낌이 마음에 들어 적어 보았다.
시는 모르지만,
제법 시처럼 모양새를 띈 내용이었다.
가을이 가고 겨울이 오는 듯
시원한 공기엔 차가움이 섞이고
숲처럼 무성하던 풀들은 사라져
짧은 잔디만 남았네.
조금만 기다려 주지
그새를 못 참고 가버렸나.
풀들이 다 사라지니
안 보이던 길이 보이고
길 끝엔 의자가 보이네
풀이 많은 날엔
앉을 수 있을까 생각했는데
길이 보이는 지금은
텅 비어 아무것도 없네
외롭고 쓸쓸해 보이는
의자에 앉아 본다.
걷지 못했던 길을 걸어본다
천천히, 천천히 지금을 느껴 본다.
푸르던 여름은 가고
가을을 지나, 겨울이 오니
이제 이 길에는
새하얀 눈으로 덮이겠지.
덥기도 하고 춥기도 했던
나의 가을은
이렇게 지는구나
이제 곧 따뜻한 겨울,
순백의 눈이 나를 반겨 주겠네.
계절이 바뀌듯 그렇게
나도 바뀌는 것 같다.
잠깐 멈춰 있었을 뿐인데
그 사이 마음의 계절도 지나가고 있었다.
누군가에겐 아무 일 없는 하루지만
나에겐 다시 시작하는 하루였다.
걷는 동안 차갑지만
시원한 바람이 불었다.
그 바람이 좋았다.
얼굴을 간지럽게 스치는 바람결에
그동안 나는 너무 많은 걸 잊고 살았나.
싶었다.
아침 공기의 냄새,
참새들의 짹짹 소리,
햇살이 얼굴에 닿을 때의 따스함
고작 3주라는 시간 동안
이렇게 좋은 것을 잊고 살았다.
내 마음속의 아픔은
이제 제법 사라진 듯하다.
오늘 하루도
의미 있는 아침으로 시작했으니,
충분히 행복한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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