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조용해진 크리스마스

그래도 아직 끝나지 않았다 #행성 -37

by 이청목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

도시는 북적이는 사람들로

조금 더 시끄러워진다.


몇 년 전만 해도 12월이 되면

거리엔 캐럴이 먼저 계절을 알려 줬었다.


하지만

이제는 낭만 있는 캐럴이 흐르던 시절은

없는 것 같다.


크리스마스 주가 되어야만 반짝 캐럴이 흐른다.


그래도 연말이 되면

거리엔 환한 웃음을 띤

사람들이 늘어난다.


각자의 약속으로 송년회로,

올해가 가기 전 이유 있는 약속으로.


그 풍경을 보고 있으면

마치 모두가 같은 방향으로

행복을 향해 가는 것처럼 보인다.


나도 그 무리 안에 있었던 적이 있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

괜히 하루 전부터 마음이 들떠서

뭘 입을지, 어디를 갈지,

어떤 말을 건넬지 생각하던 시절이 있었다.


누군가와 함께 보내는 크리스마스는

아무 일도 없어도 특별했었다.


그때의 나는

크리스마스가 당연히 행복한 날이라고 믿었다.


사랑이 있고,

기다림이 있는 날이라고 생각했다.


지금의 크리스마스는 조금 다르다.


약속은 없고,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 이유도 없다.


집 안은 조용하고

시간은 평소보다 느리게 흐른다.


괜히 텔레비전을 켰다가

또 꺼버렸다.

의미 없이 냉장고 문을 열었다가

그냥 돌아와 의자에 앉았다.


혼자라는 사실이

유난히 또렷해지는 날이었다.


예전에는 몰랐는데

크리스마스는 외로운 사람에게는

외로움을 숨기기 어려운 날인 것 같다.


하지만 외로움이 있다는 건,

내가 행복해지고 싶은 마음을

품고 있다는 뜻 같다.


가끔은

‘왜 나는 지금 혼자일까’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나는 멈춰 있었던 적이 없다.


넘어지고,

정리하고,

다시 일어나느라

잠시 혼자가 되었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이 시간은

실패의 결과가 아니라

정리의 시간이다.


크리스마스가 외롭다고 해서

내 인생 전체가 외로운 것은 아니다.


올해의 겨울이 유난히 춥다고 해서

내년의 겨울도 추울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예전에 나는

행복이 사람에게서 온다고 믿었다.


하지만 지금은

내가 나를 어떻게 대하느냐에서

시작된다는 걸 조금 알게 되었다.


혼자 있는 크리스마스라고 해서

초라해질 필요는 없다.


조용한 날이라고 해서

의미가 없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이런 날에야

내 마음을 가장 솔직하게 들여다볼 수 있다.


누군가에게 맞추지 않아도 되고,

괜찮은 척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


지금은 외롭지만,

나는 다시 행복해질 사람이라는 걸

알고 있다.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보였던 날들,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던 시간들,

그 모든 날들을

나는 결국 이겨냈다.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내 인생에 남은 크리스마스를

다시 맞이할 자격은 충분하다.


언젠가 다시

누군가와 함께하는

크리스마스를 보낼 수도 있고,

어쩌면 또 혼자일 수도 있다.


하지만 어느 쪽이든

나는 예전보다

더 단단한 사람이 되어 있을 것이다.


크리스마스는 지나가고,

계절은 또 바뀐다.


그리고 나는 그 계절들 속에서

다시 웃게 될 것이다.


지금은 조금 조용한 크리스마스다.


하지만

내 인생의 크리스마스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래서 오늘도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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