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지지 않기 위해 만든 하루 # 행성 -31
나는 아침 8시에 일어난다.
집에서 글을 쓰는 작가는 시간이 자유로우니까
늦잠을 자도 되고, 편한 시간에 일어나
글을 쓰면 된다고 생각했던 사람이
바로 나였다.
하지만 실제로 내가 해보니,
완전히 다른 세계였다.
작가들은
누구보다 바쁘고 누구보다 치열하게 산다.
나는 내 사정으로 인해
5개월째 강제 전업 작가다.
내 하루의 삶은 이렇다.
강동으로 이사 온 9월부터 지금까지
주말을 포함해
단 한 번도 10시 이후까지 잠든 적이 없다.
심지어 몸이 아파도
9시 전에는 일어나서 하루를 시작했다.
아침에 일어나서
삶은 달걀과 단백질 파우더로
아침 식사를 한다.
매일 삶은 달걀을 먹는 게 물릴 때도 있지만,
그냥 밥이라고 생각하고 먹는다.
그나마 다행인 건,
단백질 파우더가 단맛을 내줘서
음료수처럼 같이 먹는다.
삶은 달걀을 딱 테이블에 치고
달걀 껍데기를 주물럭거린다.
가늘게 조각난 껍질을 까고 달걀을 먹으며
한 손으로는 핸드폰으로 SNS를 한다.
전날 밤에 올린 글이 누구에게 닿아
공감과 위로가 되었는지를 본다.
그리고 그날의 각오와 아침에 느낀 기분을
SNS에 올린다.
9시 30분이 되면 독서를 시작한다.
좋은 글을 읽어야 좋은 글이 나온다는
여러 작가 선배님들의 피 같은 조언이 있었다.
독서하며 느낀 점들이 아주 많다.
내가 다른 이들의 삶을 엿볼 수 있다는 것.
사람들이 힘든 순간을 어떻게 이겨냈는지
간접 경험을 통해 배울 수 있었다.
책을 통해 위로를 받고 공감했다.
그리고 내 글도 누군가에게 닿아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책을 읽고 나면
글을 쓰기 시작한다.
하루 중에 가장 많이 쓰는 시간이
글을 쓰는 시간이다.
어떤 글을 써야 할지 고민하고
한 주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생각하고,
핸드폰 메모장을 열어 수많은 글을 읽는다.
한 주 동안 내가 느꼈던 감정을 모아
정리하다 보면 어느새 점심이 된다.
글을 쓰기 전에는 매일 다른 음식을 먹었다.
메뉴를 고르는 데도 시간이 걸렸다.
집에서 밥을 먹으면
선택지가 하나밖에 없어서
고민을 덜었다.
밥을 천천히 먹고
설거지까지 끝내고 나면 1시 30분이 된다.
다시 글을 쓰다 보면
어느새 해가 기울어 있다.
글 쓰느라 굳었던 몸을 일으켜 본다.
온몸이 쑤신다.
특히 딱딱하게 굳은 승모근과 허리가
찌릿하고 아프다.
눈도 깜박이지 않고
밝은 모니터를 보며 글 쓰느라
붉게 충혈된 눈을 감고 스트레칭을 한다.
다 풀리지 않은 몸을 이끌고
밖에 나가 2~5km를 빠른 걸음으로 걷는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간이다.
걷는 동안은
최대한 핸드폰을 안 보려고 노력한다.
그러다 보면 여러 가지 글감도 생각나고
머릿속으로 한 편의 글도 쓴다.
집에 돌아와 생각했던 글을 다시 메모하고
저녁을 먹고 나면 어느새 해가 져 있다.
아직 집안일은 하지도 않았고
취업할 자리도 찾아보지도 못했는데
벌써 밤이다.
다시 책상에 앉아
브런치 글 중에 좋은 글을
블로그에 다시 쓰는 작업을 한다.
블로그에 글을 다 쓰고 나면
하루의 일과가 끝이다.
이렇게 자유로운 것 같지만
자유롭지 않은 생활을 한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나는 매일 같은 시간에 일어나
같은 자리로 돌아온다.
처음엔 자유로운 일을 선택했다고 믿었는데,
내 삶이 무너지지 않기 위해
이 생활을 선택했다는 걸
요즘에서야 알게 되었다.
하루의 일과는 바쁘게 흘러가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해서 좋다.
아이를 키우거나
부모님을 모시고 살거나,
직장을 다니시며 글을 쓰시는 분들은
본인의 꿈을 위해, 좋아하는 일을 위해,
고된 시간을 보내고 다시
책상에 앉아 글을 쓰겠지.
앞으로 나도 직장 생활을 하게 된다면
지금의 패턴이 많이 바뀔 것이다.
지금 내가 좋아하는 글을 쓰는 것과
책을 읽는 시간 산책을 하는 시간을
퇴근 후에야 할 수 있게 될 거다.
누군가는 평범하다고 생각할 수 있고
누군가는 꼭 그렇게까지 하냐고
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인 만큼
나는 지금을 즐기며 살아보려 한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다시 한번 생각하고 알게 되었으니
오늘도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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