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락이 없던 시간들 # 행성 -28
아는 지인에게 회사를 소개받았다.
부담스러웠다.
혹시 내가 잘 못하면 피해를 주는 건 아닐까.
나 때문에 욕을 먹는 건 아닐까.
무리하게 소개해 준다는 건 아닐까.
부담을 안고 면접을 봤다.
2주간 교육이 있는데
1주일 동안은 자료를 외우고,
1주일 동안은 실습한다고 했다.
교육에 필요한 자료는 바로 보내준다고 했다.
하지만 보내 준다던 자료는
바로 오지 않았다.
먼저 전화해서
자료를 보내달라고 요청했고,
사 일째 되는 날 저녁이 되어서야
자료를 받을 수 있었다.
회사에서 보내 준 자료는
A4 용지로 20장이 넘었다.
너무 많은 양이라서 전화를 걸어 물어봤다.
"보내 주신 자료 잘 봤습니다.
이 자료를 숙지하면 되는 건가요?"
"아뇨, 달달 외워서 오셔야 합니다.
최소한의 것만 저희가 추려서 드린 거예요."
전화를 끊고 깊은 생각에 잠겼다.
하... 이걸 어떻게 다 외우지.
빨리 다른 일자리를 알아봐야 하나?
아니면 일단 해봐야 하나.
다른 일자리를 알아봐도 시간이 흘러가는데.
고민이 시작됐다.
나를 생각해서
지인이 소개해 준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일을 해보기로 결심했다.
파일을 출력하고 내가 외우기 좋은 방법으로
다시 자료를 추슬렀다.
질문과 응답을 만들어 소리를 내며 읽고 썼다.
1주일이라는 시간은 아주 느리면서도
빠르게 지나갔다.
그런데 회사에서는 또 연락이 없었다.
이번에도 내가 먼저 연락했다.
그렇지 않아도 중간 점검하려다 했단다.
스케줄 확인하고 미팅 날짜를 알려준다고 했다.
그리고 또 사 일째 연락이 없다.
일을 소개해 준 지인에게 전화했다.
혹시 내가 일자리를 급하게 구하고 있어서
필요하지 않은 인원을 뽑아야 했던 건지
알고 싶었다.
지인은 아니라고 했다.
그쪽에서도 사람이 필요하다고 했다.
나는 도대체 이해가 가지 않았다.
소통이 안 되고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어떻게 함께 일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잠시 후에 전화벨 소리가 울렸다.
전화를 받아보니 일을 소개받기 직전에
이력서를 넣었던 곳이었다.
연락조차 닿지 않는 회사를
계속 기다리는 것보다,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을 먼저 만나보기로 했다.
면접은 다음 날 오후 3시였다.
다음날 면접 보러 가는 오후 3시까지
지인이 소개해 줬던
회사에서는 연락이 오지 않았다.
오히려 마음이 편했다.
지금 면접 보는 곳에서 일을 하는 편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일 면접인데도 2차 면접까지 있었다.
병원에서 일하는 업무였는데
원무과에서 한번 면접을 보고
2차로 원장님과 한 번 더 면접을 봐야 했다.
병원 업무고 환자들을 도와줘야 하는 일도 있다.
원무과에서는 담배 냄새가 나면 안 된다는 걸
강조해서 얘기했다.
내가 술 담배를 안 하는 것에
점수를 받은 것 같다.
그리고 인상이 좋다는 말과 함께
원무과 면접에 합격했다.
잠시 후에 원장님 면접을 진행했다.
원장님과 면접은 금방 끝났다.
잠시 대기하라고 하셨다.
대기를 하는 동안 마음이 이상하게 편안했다.
처음에 면접 봤던 원무과 선생님이
다시 들어오라고 했다.
"원장님이 너무 마음에 들어 하시네요.
다음 주부터 바로 출근할 수 있으시죠!
다른 분들 면접을 다 취소하라고 하시네요."
나는 그렇게 회사 면접에 합격했고
다음 주부터 출근한다.
사실 조금 어리둥절하다.
그렇게 많은 이력서를 넣고,
전화를 기다리고 어렵게 면접을 봤었는데.
생각지도 않은 곳에서 연락이 와서
한 번에 출근하라는 말을 들었다.
갑자기 직업이 생겼다.
병원에서 일하는 것이 처음이라 낯설겠지만
잘 배우고 그 안에 있는 분들과도
사이좋게 지냈으면 좋겠다.
이것이 아직 행운인지는 모르겠지만
이제부터는 행운으로 바꾸려 노력해야겠다.
돌이켜보면
그 회사에서 연락이 오지 않았던 시간들이
나를 다른 곳으로 밀어준 것 같기도 하다.
아직은 잘 모르겠다.
다만 오늘은,
이 낯선 시작이
나에게는 꽤 다정한 행운처럼 느껴진다.
그러니 오늘도 행복한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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