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는 중

첫 출근을 마친 하루 # 행성 - 27

by 이청목

내가 하게 된 일은

암 환자분들을 종합병원에 모셔다 드리고

다시 모시고 오는 일이다.


아침 7시부터 환자분들은

치료를 받으러 가야 한다.


그전에 승합차를 따뜻하게

데워 놓기 위해

출근을 20분 일찍 한다.


전날부터 기대와 설렘,

긴장감으로 잠이 오지 않았다.


혼자 월급도 계산해 보고,

꽉 채운 한 달이 언제인지

확인도 해본다.


고정지출을 빼고 3만 원만 더 남으면

치킨을 먹어야겠다고 다짐했다.


아직 출근도 하지 않았는데

생각은 집까지 이사하고 있었다.


억지로 눈을 감고 잠을 청했다.


‘따르릉’ 힘차고, 정신없고,

성가시게 울리는 알람 시계를 끄려고 일어났다.


새벽 4시 50분

드디어 첫 출근하는 날이다.


평범한 월요일

하지만 나에겐 평범한 월요일이 아니다.


오늘은 좋은 일이 있을 거야

혼자만의 주문을 외웠다.


커피포트에 물을 끓이며

차가워진 방 안의 공기를 데웠다.


뜨거운 물을

마시기 좋게 식혀서 한잔 마셨다.


언제나 똑같이 삶은 달걀을 먹고,

첫인상을 좋게 하려고

신경 써서 머리도 만졌다.


6시 정각 집에서 나왔다.


얼마 만에

새벽 버스를 타고 출근하는 건가?


20살 때

회사 다닐 때였으니 벌써 15년 전이었다.

시간이 정말 빠르다.


그새 버스 정류장은

바람을 피할 수 있는 안전 쉘터가 생겼다.


버스가 몇 정거장 남았는지 알려주는

버스 전광판을 뛰어넘어


스마트폰으로 버스가 어디서 오고 있는지,

몇 정거장 남았는지,

어떤 경로로 가야 가장 빠른지

자세히 알려준다.


정말 세상이 좋아졌다.

혼자 흐뭇하게 웃음이 나왔다.


버스가 왔다.


버스에 올라타고 스마트폰을 보며

몇 정거장 남았는지를 계속 점검했다.


한 번에 가는 버스가 있었는데

그 버스를 타면 크게 돌아가서

회사에 늦는다.


늦지 않으려면

버스를 갈아타고 가는 방법밖에 없었다.


버스를 갈아타고 시계를 봤다.


출근 시간까지 몇 분 안 남았는데

계속 신호등에 걸린다.

속이 타들어 갔다.


첫 출근에 늦으면

큰일 난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6시 38분 버스에서 내렸다.

부리나케 뛰어 병원으로 올라갔다.

다행히 6시 40분 정확하게 도착했다.


팀장님께 인사를 하고 첫날

업무교육을 간단하게 받았다.

그리고 바로 환자분들을 이송했다.


그렇게 정신없이

2시간이 훌쩍 지나고 나서야

잠시 쉬는 시간이 생겼다.


병원 사람들과 인사를 했다.


누가 누구인지는 아직도 모르지만

인사를 깍듯하게 했다.


“잘 부탁드립니다.”


잠시 밖에 혼자 나와

정신을 차리고 있었다.


그때 병원 앞에서

어떤 사람과 눈을 마주쳤다.


자동으로 인사가 나갔다.

"안녕하십니까."


그분은 나를 쓱 한번 쳐다보고는

‘네’ 하고 그냥 갔다.


알고 보니 그냥 지나가는 사람이었다.


혼자 민망해서

차에 타서 큭큭큭 거리며 웃었다.


그분한테는 의원 이미지가

조금이라도 좋았겠다고 스스로 위로했다.


오후가 되니 당이 떨어졌다.

커피믹스를 한잔 마셨다.


뜨거운 사막에 시원한 오아시스같이

지치고, 춥고, 힘들 때 따뜻하고

달콤한 맛으로 눈을 뜨게 해 줬다.


이래서 믹스를 못 끊는다.


오랜만에 먹는 커피믹스.

중독이 될까 봐 걱정도 되지만

정신을 차리게 해 준 커피가 맛있었다.


드디어 퇴근 시간이 다가왔다.


20분 남았는데

시간이 안 간다.


그저 오랜 시간 동안 몸에 밴 습관처럼

5분에 한 번씩 시계를 봤다.


째깍째깍 '땡'

퇴근 시간이다.


팀장님은 밖에서 누군가와 얘기하고 있다.

빨리 들어와라 마음속으로 몇 번이나

말했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팀장님의 얼굴이

환한 빛이 비쳐 보였다.


“오늘 수고했어요. 얼른 퇴근해요”


드디어 퇴근했다.


차량 운행, 시설, 주유하는 방법,

환자분들 어떤 병원으로 가야 하는지 등.


정신은 없었지만 오랜만에 느껴 보는 기분에

보람도 됐다.


비록 월급을 받으며 일을 하는 거지만

아픈 분들을 이송해 드리면서

조금이나마 도움을 드리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곳에서 얼마나 일을 할지는 아직은 모른다.

체력이 된다면

오랫동안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오늘 하루를 지나며 알게 됐다.

새로운 시작은 늘 거창해서가 아니라,

아주 사소한 것들로 시작된다는 걸.


새벽 공기, 따뜻한 물 한잔,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커피믹스 한 잔이 정신을 붙잡아 줬고,

환자분들을 이송하며 보람도 느꼈다.


내 생각엔

다시 일한다는 건

돈을 버는 일만은 아닌 것 같다.


이렇게

일상으로 돌아가는 감각을 느꼈으니,

오늘도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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