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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윤민정 Mar 04. 2024

나의 비거니즘 시작 기록하기

물살이 비질을 다녀와서

* 물살이: '물고기'를 대체하는 단어. '고기'가 되기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라 물에 사는 생명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 비질: 도축장, 농장, 수산시장 앞을 찾아가 육식주의 사회에서 고통받는 비인간 동물의 현실을 목격하고 증언하는 활동



신여성 <우리의 비거니즘 시작 기록하기> 마지막 모임으로 마포농수산물시장에서 물살이 비질을 함께했다. 예전에 모임원들이 개별적으로 동네 횟집 수족관 앞에서 물살이 비질을 한 다음에 만나서 감상을 나눈 적은 있는데 함께 비질을 한 건 처음이다.


나는 생선회를 엄청나게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주변에 비건 친구들이 꽤 있고, 비거니즘이 좋은 가치라고는 생각했지만, 어릴 때부터 식성 때문에 육고기를 먹지 않았으니 이 정도면 윤리적 기준치(?)를 충족했다고 자부하며 더는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신여성 비건 모임에 참여하던 초반에만 해도 비거니즘 책도 읽고 사람들 얘기도 들어보면서 시민으로서 교양을 쌓자는 마음 정도였던 것 같다. 게다가 소, 돼지 같은 포유류보다 물살이는 심리적 거리가 멀지 않나? 내가 물살이가 죽는 모습을 보면서 잔인하다고 생각하거나, 생명에 대한 연민을 크게 느낄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마포농수산물시장의 수산물 코너는 규모가 작아서 비질 활동이 쉽게 눈에 띄었다. "어서 오세요, 찾으시는 것 있으세요?" 상인들이 말을 걸 때마다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괜찮아요. 그냥 좀 볼게요." 대답하면서 걸음을 옮겼다. 수족관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느릿느릿 이동하는 우리들은 시장에서 이질적인 존재였을 것이다.


시장에서 비질을 하는 동안 어떤 선을 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공간에서는 판매자-소비자 외에 무엇도 될 수 없다고 믿어 왔는데, 지금 이 순간의 나는 팔고 사는 관계에서 벗어나 다른 길을 걷고 있었다. 이제까지 비거니즘 모임을 하면서 만났던 사람들이 떠올랐다. 여러 사람들이 나에게 각자의 위치에서 물살이 착취를 목격하며 느낀 고통을 들려주었고, 물살이 비질을 다녀왔던 경험을 글로 쓰고 읽다가 눈물짓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어떻게 물살이가 죽는 것 때문에 울 수 있지?' 렇게 생각하면서도, 무언가 이들이 중요한 것을 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고, 이들이 보는 것을 나도 보고 싶었다.


남이 거듭되고 비거니즘 이야기를 더 많이 접하게 되면서 내 감각은 조금씩 바뀌었다. 홍은전 작가의 책 <나는 동물>, 팟캐스트 <흉폭한 채식주의자> 등이 나를 성큼 옮겨 놓았는데, 사전에 모임 친구들의 말과 글, 얼굴을 만나지 않았다면 같은 책을 보거나 방송을 들어도 별 감흥이 없었을 것이다. <나는 동물> 을 읽다가 <동물 홀로코스트>에서 인용된 이 문장과 마주쳤을 때, 비로소 비건 모임 친구들이 무엇을 보고 있었는지 어렴풋이 짐작했다.

“동물과의 관계에서 모든 사람들은 나치이다. 그 관계는 동물들에게는 영원한 트레블린카(유대인 처형수용소)이다.”

비건 모임 친구들은 인간의 손에서 죽어가는 물살이들을 목격하면서, 그 뒤편에 아득하게 이어진 착취의 역사 또한 한꺼번에 보고 있었던 게 아닐까? 인간이 인간을 착취하는 메커니즘과, 인간이 비인간 동물을 착취하는 메커니즘이 별개가 아니라는 것을 알기에, 횟집 식탁 앞이 아니라 몸통이 반쯤 잘린 채 전시되어 있는 방어들, 수조에서 몸부림치는 미꾸라지들, 수조 벽 너머에서 다각거리는 게들 가까이에 있고 싶었던 게 아닐까? 하긴 이것도 너무 인간중심적인 생각인지 모르겠다. 나는 과로와 가난에 시달리는 사람들의 삶에 대한 연민을 경유해서야 비인간 동물의 고통에 접근할 수 있었는데, 다른 비건인들은 어땠는지 궁금하다.


비질이 끝나고 비건 식당에서 함께 밥을 먹고 헤어졌다. 비거니즘에 관심이 생기면서 인간에 대한 절망감이 너무 크게 든다고 칭얼거리는 나를 보고, 모임 친구들이 "민정이 그 시기를 지나고 있군요." 호호 웃었다. 내 절망감을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짐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있으니 기댈 곳이 있다는 생각에 맘이 조금 편해졌다.


식사를 마치고 저녁에 같이 차를 타고 오면서 한 친구가 "전염병 상황에서 생추어리에 있는 소와 돼지한테도 살처분 명령이 내려오면 어쩌지?" 이야기를 꺼냈다. 또 다른 친구가 곧장 "싸워야지." 대답했다. "싸워야지. 그렇게 균열을 내는 거지." 생추어리의 소와 돼지를 염려하던 친구도, 한치의 망설임 없이 단호하게 싸우겠다고 대답하는 친구도 갑자기 너무 멋있게 보여서 짜릿했다.


나는 언제나 사는 게 무서웠다. 어릴 때는 장래희망을 이루지 못할까 봐 무서웠고 어른이 되어서는 크게 성공하진 못해도 남들 사는 것만큼은 살아야 할 텐데 도태될까 봐 무서웠다. 지금도 맨날 무섭다. 신여성을 운영한 이후에는 사업이 망할까 봐 무섭고, 작가로 활동한 이후에는 양적인 면에서든 질적인 면에서든 글을 잘 쓰지 못할까 봐 무섭다. 내가 나에게 바라는 기준치를 충족하지 못한 채로 살다가 죽을까 봐 무섭고, 무서움에 시달리면서도 더 노력하지 않는 자신의 나약함이 경멸스럽다. 또한 그럴 일이 없을 거라고 생각하면서도 이상하게도, 굶어죽을까 봐 무섭다. 어떨 때는 무서움이 극도에 달해 질식할 것 같다.


비건 모임 친구들 사이에서 느낀 짜릿함을 평화로움이라고 말해도 좋을 것 같다. 돈이 많지도 않고, 그럴싸한 직함이 있지도 않고, 그밖에 자본주의 사회가 힘이라고 명명한 가치들을 적게 갖추었고, 어딜 가면 괴짜 취급 받을 게 분명한 사람들과 함께 있는 이 순간 놀랍게도 삶의 불안과 공포가 멈췄다. 폭풍우 가운데 고요한 햇살이 비치는 것마냥. 이 순간이 지나고 나면 금방 또 무서워지겠지만, 삶에서 아주 잠깐이라도 무섭지 않은 순간을 만날 수 있다니 기적 같았다. 이 평화로움을 필사적으로 붙잡고 싶었다.



* 신여성 프로그램 <물살이 비질, 소리와 쓰기로 기록하기>, <나의 비거니즘 시작 기록하기> 모임을 마치고 쓴 글입니다. 모임 기획하고 이끌어주신 소민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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