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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윤민정 Aug 14. 2020

모텔 카운터 아르바이트

안녕하세요, 2주에 한 번 금요일마다 업데이트하겠다는 말을 어긴 배윤민정입니다... '아내라는 이상한 존재' 시리즈 3편을 쓰려고 끙끙거리고 있는데 되게 어렵네요. 결국 한 주 펑크를 내게 되었고... 대신 이번 주엔 과거에 썼던 글을 올려봅니다. 오래 전에 모텔 카운터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는데 그때 썼던 단상을 공유하고 싶어요. 십여 년 전에 쓴 글이라서 지금의 저와는 다른 점이 많지만, 바탕이 되는 감수성은 여전한 것 같아요. 부디 즐겁게 읽어주시길 : ) 곧 새로운 에세이로 만나요!


 



일기 쓰는 것도 한 번 그만두니까 버릇 들이기가 쉽지 않네... 일기는 물론이고 문장 자체를 쓰는 것이 정말 오랜만이다. 키보드를 두드리는 것도 뭔가 어색하군.

올해 상반기는 정신 없이 지나갔다. 친한 친구와 일을 함께 하느라 사업자등록증을 내고 대표 명함도 찍어봤다. 돈벌이도 나쁘지 않았고 비전도 있는 일이었지만, 의견 충돌로 미친 듯이 싸우다 결국 그만두게 됐다. 웬만한 막장 드라마 결혼 생활보다 훨씬 적나라하게 서로의 밑바닥을 확인한 것 같다. 이후 NGO에 취직했다 한 사람이랑 대판 싸우고 하루만에 짤림. 인생에서 꼽을만큼 황당한 경우였고, 억울함(왜 가만히 있는 사람에게 똥을 뒤집어 씌워)과 자책감(내가 참았어야지, 싸워도 좀 더 세련된 방법이 있었을 텐데 그 자리에서 -후에 상대는 '성희롱'이라고 표현한- 욕을 퍼붓다니 정말 나는 모자란 사람인가)으로 한 달은 앓고 지냈다. 이후 모든 정신/열정노동을 할 의지를 잃어버려 요즘은 종로구 한 모텔 프론트에서 일하고 있다. 일에 비해 받는 돈은 괜찮은 편.

내가 일하는 모텔의 직원은 총 10명이다. 4명은 프론트 관리, 2명은 침대 시트 가는 남자(베딩 혹은 베팅이라고 부르는), 3명은 청소이모, 1명은 주방이모. 시간이 흐르면서 어렴풋이 이름을 알게 된 사람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철저하게 업무가 나눠져 있어 별로 마주칠 일이 없다. 워낙 직원들이 빨리 바뀌기도 하고. 나에게 이곳의 직원들은 베딩1, 2, 청소이모 1, 2, 3 이렇게 인식되고 아마 나도 그들에게 마찬가지일 것이다. 프론트 관리팀은 2인1조로 나누어져 24시간씩 교대로 출근하는데, 같은 팀인 사람과도 별 잡담 없이 각자 할 일을 하는 분위기다. 프론트는 서늘하고 어둡다. 손님들은 열쇠를 받고 엘리베이터에 오른다. 나는 창구 뒤편에서 CCTV를 응시하며 모든 일이 원활하게 돌아가는지 확인한다. 청소이모들은 항상 함께 움직이는데, 청소카트를 끌며 오종종 움직이는 모습들이 꼭 하나의 덩어리 같기도 하고 게임 NPC 같기도 해서 귀엽다. 

예전에 한겨레21에서 대형마트 비정규직에 대한 르포를 읽었다. '누구도 마트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얼굴을 바라보지 않는다'라든지 '(내가 일해보니)사람의 눈길이 그리워졌다'는 식의 얘기가 있었다. 나는 글만 보고서 노동에서 소외당하는 인간의 삶은 비참한 건 줄 알았다. 그런데 실제로 단순노동을 해보니 달랐다. 나는 누구의 시선도 끌지 않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말하지 않는, 누구에게도 평가받지 않는 철저한 익명성 속에서 보호받고 있다고 느낀다. 생각해보면 회사에 다니는 것도 친구와 함께 했던 일도 얼마나 턱없이 많은 부분을 나에게 요구했는지. 일이 일 자체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나라는 존재 전체의 가치인 것처럼 말이다. 업무와 인간관계와 사회생활의 애티튜드에 대한 평가, 끊임없이 요구하는 일에 대한 애착을 돌이켜 생각하면 진저리가 난다. 쓰고 싶지도 않은 글을 쓰고 만들고 싶지도 않은 것을 잘 만들려 애쓰며 이것이 자아실현의 일환이라 다짐해야 했던 시간들에 비하면, 지금의 일이 오히려 품위가 있다.

어쩌면 자기 일에 프라이드가 높은 기자들은 자신이 익명의 부품으로 존재하게 되는 것이, 누구에게도 나를 어필하지 못하고 존중받지 못하는 상황이 나쁘게 생각될 수 있겠다. 그래서 저런 얘기도 하는 거겠지. 그러나 겉보기엔 벗어날 수 없도록 꽉 짜여진 시스템에 갇힌 일개 부품들이 내면에 어떤 세계를, 어떤 탈출구를 마련해놓고 있는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나는 때때로 아주 먼곳에 있는 것 같다. 가끔 손님들이 떠난 방에 들어가 화장실을 쓰거나 담배를 피운다. 누구도 오래 머물지 않는 장소들이 지닌 분위기. 물건들은 누구에게도 발설하지 않는 기억을 간직하며 낡아가는 것 같다. 이런 장소의 물건들은 정말 살아 있는 것 같다. 시간이 관념이 아니라 볼 수 있고 만질 수 있는 대상 같다. 먼지와 햇빛, 정적이 이상한 효과를 만들어낸다.

살아온 시간을 돌이켜봤을 때 정말로 나의 생이라 여겨지는 시간은 이런 시간들이었다.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있을 때도 아니고, 이런저런 근사한 것을 보거나 일을 통해 보람을 느낄 때도 아니었다. 예컨대 19살 무렵 혼자 점심을 먹으러 중국집에 갔던 적이 있다. 식사시간과 조금 어긋나 사람이 별로 없었고, 식당은 깔끔한 편이었다. 거기서 혼자 뭔가를 먹고 돌아왔다. 아무런 인상적인 것이 없는 일상의 한 장면이다. 그러나 누구도 모르는 한 장면이다. 그때의 날씨라든가 식탁 차림새라든가 내 발소리라든가 이런 것들은 나 말고는 아무도 모르고, 특별한 사건이 없기에 누구에게 얘기할 수도 없다. 그래서 나는 그 기억을 떠올리며 자주 놀란다. 정말 신기하지. 그때 그렇게 거기에 내가 살아 있었다니. 아무도 모르는 여러가지 이미지들이 내 시야를 통과해갔다니. 그토록 무의미하게, 풀 수 없는 수수께끼처럼 시간이 흘러갔다니. 예전에 파스칼 키냐르의 책에서 '전혀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함은 굉장한 전달 수단이다'라는 문장을 봤을 때, 나는 그것이 무엇을 말하는지 즉각 알 수 있었다.

때로는 모텔이 수도원 같다. 위층에서는 어떤지 몰라도 내가 있는 곳은 대체로 지극히 조용하다. 사람들이 드나드는 것을 감지하는 벨소리가 쉼 없이 울리고 문의 전화가 빗발치는 날에도, 어쩐지 이곳에 고인 정적은 약해지는 대신 그 모든 것을 흡수해서 켜켜이 쌓아가는 느낌이다. 꼬박꼬박 출퇴근을 하는 사람은 나와 주방이모뿐이다. 대부분 이곳에서 숙식하며 일하고, 출퇴근 하는 직원들도 끝나면 집으로 가는 대신 모텔 방에서 쉬고 잔다. 요즘 날이 더워 그렇겠지만 정말이지 이상할 정도로 사람들이 밖에 안 나간다. 그렇게 쉬고 자고 일어나면 또 정연한 일과가 시작된다. 가장 육체적인 쾌락을 위한 공간의 이면은 이토록 금욕적인 것이다.        


폭우. 창문을 닫고 비 들어온 방을 정리하느라 아침부터 부산하다. 묘한 활기.


청소이모들(모두 중국동포)은 주방 곁에 딸린 작은 방에서 셋이 같이 지낸다. 나는 처음에 이곳에 휴게실인줄 알았지 잠을 자는 공간이라고는 생각 못했다. 점심을 먹고 있으니 방 쪽에서 주방이모와 청소이모의 말소리가 들린다.

“**, 언제까지 여기 있어? 가지 말고 계속 같이 일해.”

“그러면 나 잡혀가.”

“내가 박근혜한테 말할게.”


출근해보니 간밤에 베딩2가 도망갔다는 소식. 워낙 말도 없이 그만두는 사람이 많아 첫 달 치 월급에서 5일치의 일당을 공제했다 퇴직 후에 주는 관행이 있는데, 그럼에도 말없이 그만두는 경우가 비일비재한 것 같다. 관리팀 대리가 말한다. “베딩1이 베딩2한테 물어봤대요. 너는 나중에 뭐할 거냐고. 걔는 그냥 계속 이거 할 거라고 했다는 거야. 돈 생기면 술 먹고 놀다 돈 떨어지면 어디 가서 일하겠지. 숙식이 제공되니까 그렇게 돌아다니면서 사는 거야. 미래가 없지. 하루살이들.”


새로운 베딩을 구하려 소개소에 전화를 돌리고 광고글을 올린다. 몇 통의 문의전화가 온다. 이력서를 지참해서 방문해달라는 말에 대부분 이력서가 없다고 대답한다.


강원도에서 걸려온 전화. 5일치 일당을 받을 수 없냐는 베딩2의 목소리. 전화를 끊고 대리와 과장은 쑥덕인다. “카지노에서 다 털리고 전화한 거야.”


이곳에 1여년쯤 일한 베딩1. 30대 중반의 남자, 팔에 커다란 문신이 있고 깜짝 놀랄 정도로 배가 나왔다. 잘 웃고 농담 잘 하고 목소리가 크다. 한가한 시간이면 어슬렁어슬렁 프론트로 내려와서 대리를 부른다.

“이대리, 담배 피우러 가자~”

“뭔 놈의 담배를 그렇게 많이 펴. 폐 다 썩어요.”

“나는 오래 안 살 거야~.”


한 청소이모가 그만두고 새로운 사람이 왔다. 무슨 이유인지 주방이모는 새로온 사람이 눈에 안 보일 때마다 구시렁거린다. "아, 박사 마누라는 어디 갔대? 지가 박사 마누라래."

결국 새로온 청소이모는 이 주일을 못 버텼다. 그는 그만두기 전에 주방이모와 싸우면서 "당신은 지식이 없다"라고 공격했다고.


내가 짧은 치마를 입고 나오면 주방이모가 자꾸 뒷모습을 보며 예쁘다고 말한다. 어느 날 아침 볼일이 있어 주방으로 들어서니 이모가 갑자기 두 손으로 내 어깨를 쓸어내리며 짧게 한숨을 쉬었다.


세 명중 가장 오래 일한 청소이모는 점쟁이라고 한다. 주방이모가 경품행사에서 김치냉장고를 타게 될 거라고 예언했는데 그대로 됐다고.


모텔의 위치 때문인지 여행객이나 출장 온 사람들이 많이 묵는 편이다. 어떤 때는 밤을 보내러 온 커플보다 이쪽이 많을 정도. 한 가족이 잠을 자고 아침에 나서는 길. 어딘가 옷차림이 허름하다. 초등학생 아이가 프론트에 무료 서비스로 비치된 팝콘 앞에서 서성인다. 아내가 옆에서 중얼거린다. "이거 돈 내야 하는 건가?" 남편이 윽박지르듯 말한다. "당연히 돈 내는 거지!"


나와 교대로 근무하는 프론트 캐셔. 30대 초반의 여자로 함께 근무하는 관리팀 직원과 연애하는 사이다. 일이 끝나면 둘이 함께 점심을 먹고 돌아와 모텔 방으로 올라간다. 저녁이 되면 밥을 먹거나 술을 사러 잠깐 나오고, 다음날 아침 다시 프론트로 출근. 내가 퇴근하려고 짐을 챙기고 있으면 애인에게 조르는 소리가 들린다. “나도 홍대가고 싶다고~” “네가 홍대 가서 뭐할 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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