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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다닌 대학의 문예창작과에선 연말이 되면 ‘문창인의 밤’이라는 행사가 열렸다. 은퇴한 교수와 현직 교수 등이 무대에서 축사를 하고, 선발된 학생들이 자신이 쓴 작품을 낭독하는 자리였다. 재학생은 대부분 참석했고 졸업생들도 여럿 왔다. 행사가 끝나면 근처 술집에서 뒤풀이가 이어졌다. 내가 시인 A를 만난 것은 그 뒤풀이 자리였다. 문예창작과 교수와 학생 그리고 이 학교를 졸업한 시인, 소설가, 문학평론가들이 허름한 술집에 모여서 웅성거렸다.
당시에 시인 A는 참신한 시를 쓰는 시인으로 이름을 높이고 있었다. ‘괴물 신인’이니 ‘천재’니 하는 수식어가 그를 따라다녔고, 그를 필두로 몇몇 시인을 묶어서 새로운 문학사조라고 평한 평론가들도 있었다. 교수들은 A에게 다가와 친근하게 술잔을 부딪쳤고 시인 지망생인 학생들은 선망의 시선으로 그를 바라봤다. 그는 이 테이블, 저 테이블 옮겨 다니다가 내가 있는 곳으로 왔다. 그는 나에게 계속 말을 걸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가 나에게 관심을 보이고 있다는 걸 눈치챘다. 집단에서 주목받는 사람이 나를 주목한다는 것에 기분이 좋았다. 그는 어울려도 나쁘지 않을 만큼 재미있는 사람으로 보였다.
뒤풀이 자리가 마무리될 때쯤 A는 나에게 홍대 근처로 가서 술을 한 잔 더하자고 했다. 나는 따라갔다. 그는 칵테일이 든 술잔 너머로 나를 물끄러미 보며 물었다.
“내 시 좋아하니?”
그의 말을 듣고 크게 웃으며 되물었다.
“좋아했으면 좋겠어?”
“그런 줄 알았지. 너무 쉽게 넘어와서.”
“난 원래 거절 잘 안 해.”
그는 술을 다 마시고 나와서 길을 걷다가 갑자기 내 허리를 끌어당겨서 입을 맞췄다. 내가 쓰고 있던 모자가 길바닥에 툭 떨어졌다. 연말의 홍대 거리를 지나가던 여러 사람이 그와 내 모습을 흘낏거렸다.
그의 집은 공인중개사의 화법으로 소개하자면 ‘일 층과 다름없는 반지하’였다. 방은 두 개였는데 하나는 침실이고 또 하나는 옷방 겸 창고로 쓰는 것 같았다. 바닥 곳곳에 책이 쌓여 있었고 책상 위엔 빈 소주병이 여러 개 보였다. 밥솥이 눈에 띄지 않아서 물어보니 A는 ‘햇반’만 먹는다고 대답했다. 한마디로 아늑한 생활감과는 거리가 먼 집이었다. 그는 컴퓨터를 켜서 노래를 틀었다. 낯선 노래가 방 안에 울려 퍼졌다. 어두침침한 조명 아래 앉아 있는 그를 보면서 나는 말했다.
“몇 살이야? 늙어 보여.”
그는 나이를 밝혔다. 나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아, 나이보다는 젊게 생긴 거구나.”
나는 술을 마시면 잠을 오래 자지 못하고 으레 새벽에 깨곤 한다. 그의 집에서 처음 잠든 날도 마찬가지였다. 눈을 떴을 때 방범창이 드리워진 창문으로 새벽하늘이 보였다. 희미한 어둠 속에서 그의 방이 드러났다. 책상과 의자, 소주병과 책더미, 모니터 옆에 붙어 있는 조그만 종이쪽지들. 잠들기 전에 흘끗 봤을 때 그 쪽지엔 시작 메모가 쓰여 있었다. 몇 줄의 문장을 붙잡고 삶을 건너가 보려 하다니 무모하구나. 가만히 누워서 거세졌다 잦아드는 숙취를 견디고 있으니 자기 파괴적인 욕구에 사로잡혔다. 겨울이라서 그랬던 걸까? 창문으로 넘어오는 하늘의 색깔이 가슴이 시릴 정도로 파랬다. 그 푸른빛 속으로 내가 가진 모든 것을 집어던지고 싶다는 충동이 일었다. 옷과 전기장판, 밥솥과 전자레인지 전부 다 던져버릴 거야.
만남의 초기에 그가 옷을 벗고 있는 나에게 휴대전화 카메라를 들이댔던 적이 있다.
“찍어도 돼?”
나는 카메라를 마주 들었다.
“나도 너를 찍을 거야.”
그는 흠칫했다.
“혼자만 볼 거야?”
“아니, 인터넷에 올릴 거야.”
그는 자신이 든 휴대전화를 슬그머니 내렸다.
“우리 그러지 말자.”
농담처럼 말했지만 그때 사실 나는 정말로 사진을 찍고 싶었다. A의 평범한 나체를 찍고 싶었던 건 아니다. 내가 찍고 싶었던 것은 어둠에 싸인 그의 방, 깜박이는 모니터 불빛이 희미하게 드러내는 술병들, 모니터 옆에 붙여놓은 조그만 종이쪽지들, 그 모든 물건 사이에서 오도카니 앉아 있는 그의 무력한 자세였다.
처음 그의 집에서 잤던 날 떠나기 전에 나는 물었다.
“혼자 있을 땐 뭐해?”
“이렇게 앉아 있지.”
그는 컴퓨터 앞에 앉아서 두 손을 가지런히 허벅지에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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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를 좋아했을까? 어려운 질문이다. 그를 만나면서도 여러 번 고민했지만 쉽게 결론을 내릴 수 없었다. 그가 가까이 오면 어떤 감정이 출렁하고 나를 지나갔는데, 그 감정을 사랑이라고 이름 붙이기엔 너무 불쾌했고 그렇다고 그저 혐오감이라고 부를 수도 없었다. 내가 느끼는 감정은 쓰레기통에 버려진 생선 뼈를 뒤덮은 조그만 구더기들이라든가, 환 공포증을 자극하는 징그러운 그림을 기어코 두 번 세 번 보고야 마는 끌림에 가까웠다. 나는 혼자 집에 있을 때도 길을 걸을 때도 아주 많이 그를 생각했다. 나를 끌어당기는 것의 중심에 무엇이 있는지 알고 싶었다.
그가 술자리에 나를 불러낼 때마다 나는 어김없이 나갔다. 그의 술자리에 모여 있는 사람들 또한 인상이 묘했다. 실례를 무릅쓰고 솔직하게 털어놓자면, 나는 그들을 보면서 마음속으로 이렇게 감탄했다. 마치 서커스의 ‘프릭 쇼(Freak Show)’ 같군! 그들의 외모에는 하나 같이 눈길을 끄는 추한 특징이 있었고, 술에 취해 흐늘거리는 몸짓이나 번들거리는 눈빛이 그 ‘프릭’한 인상을 강화했다. 키가 작거나 아주 여위었거나, 얼굴이 크거나 코가 긴 사람들이 어두침침한 술집에 앉아서 낄낄거렸다. 그들을 보고 있으면 도리스 레싱의 소설 [다섯째 아이]가 떠오르기도했다. 인간과 인간 아닌 존재, 정상과 기형 사이의 존재인 ‘벤’들. 소설에서 벤이 강제로 입원하게 됐던 요양 시설에 이런 사람들이 모여 있지 않을까?
사실 다른 사람이 봤다면 나도 그들과 다를 바 없이 괴상한 인물로 비쳤을 것이다. 돌이켜보면 A가 조명처럼 곁에 있는 사람들의 얼굴에 과장된 명암을 드리웠다는 생각이 든다.
A는 술 마시는 내내 자기 옆에 있는 사람들을 놀려대면서 농담을 늘어놓았다. 그렇게 무의미한 말로 시간을 보내는 것도 재주라면 재주였다. 그와 그의 지인들과 함께했던 술자리에서 어떤 이야기가 오갔는지는 거의 기억에 남아 있지 않다. 떠오르는 것은 이런 장면뿐이다. 시인 A의 지인인 또 다른 남성 시인이 술자리에 앉아 있는 여성들을 물끄러미 보다가 했던 말.
“여자들은 다 예쁜 것 같아.”
나는 잠자코 미소 지었다. 그때 내 머릿속에는 이런 질문들이 떠돌고 있었다. 이 시인이라는 남자들은 과연 투표를 할 수 있을까? 대낮에 박물관이나 미술관을 걸어 다닐 수 있을까? 5분이라도 웃지 않고 진지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나눌 능력이 있을까?
그가 만드는 술자리에서 벌어지는 일이란 낄낄거리다가 토하고 말다툼하는 것이 고작이었지만, 그래도 사람들은 A와 술 마시기를 좋아하는 것 같았다. A는 여러 날 만에 나를 만날 때면 간밤에 함께 술 마신 사람들의 이름을 늘어놓곤 했다. 시인, 소설가, 문예창작과 교수…. 그 이름을 발음할 때 A의 어조에선 감출 수 없이 뿌듯한 기색이 떠올랐다.
너, 이제까지 친구가 별로 없었구나. 그래서 무리에 속해 있다는 것에 깊이 안도감을 느끼는 거야. 어느 날 그가 꺼내는 이름을 듣고 있다가 안쓰러운 마음이 들어서 불쑥 말했다.
“넌 장갑 인형처럼 생겼어. 장갑에 눈, 코, 입을 붙여서 만든 인형.”
그는 무슨 소리냐며 웃고 넘겼다. 나는 뒤에 떠오르는 말들을 굳이 입 밖으로 내지 않았다. 너는 빨간 목장갑에 눈과 입을 붙여서 만든 인형 같아. 그 인형은 골목길 쓰레기봉투 옆에 구겨져 있어. 그걸 갖고 싶어 하는 사람도, 만지고 싶어 하는 사람도 없어. 낡고 더러우니까. 한 짝 밖에 없어서 아무런 쓸모가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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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할까? 내 아기 낳아줄래? 그냥 사랑한다고 말해주면 안 돼?” 그가 쏟아놓는 무의미한 말들.
“놀고 있네. 닥쳐. 꺼져.” 내가 받아치던 어리석은 말들.
언젠가 나는 그에게 ‘사랑해’라고 속삭였다. 막상 입 밖으로 냈을 때 그 말의 부자연스러운 어조에 깜짝 놀랐다. 내가 거짓말을 하고 있구나. 그의 입에서 나오는 같은 말도 드라마 대사를 따라 하는 것처럼 이질적으로 들렸다.
“나 다른 여자한테는 이렇게 안 해. 더러워서.”
그는 내 집의 침대 위에서 열심히 나를 애무하면서 말했다. 그 순간 무작위로 걸어놓은 음악 플레이리스트에서 흥겨운 맘보 음악이 나왔다. 마치 그와 나 두 사람 모두를 조롱하듯이. 빰빰빰 나팔 소리가 울리자 나는 갑자기 멋쩍어져서 그에게서 몸을 뗐다. 이 장면이 그와 내 관계의 상징적인 순간으로 기억에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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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남자에게 열중하게 되면서 더는 A를 만나지 않았다. 그가 내가 다니고 있던 대학의 강사로 오기 전까지는. 일여 년 동안 그는 쏟아져나오는 문학 평론에 힘입어 더 유명해졌고, 이제는 ‘선생’이라는 권력까지 생겼다. 사람들을 건너서 그가 저지른 일들이 슬금슬금 들려왔다. 학생 몇몇과 사귀었다는 이야기, 지인의 지인에게 추근거리다가 휴대전화를 빼앗아서 도망갔다는 이야기 등등. 당시에 나는 A의 행동을 범죄라기보다는 추태 정도로 생각했다. 들려오는 이야기 모두 그가 할 법한 행동이라서 조금도 놀랍지 않았다.
그는 학교에서 마주친 다음에 나에게 다시 연락해왔다. 나를 보자고 해서 집 근처 술집에서 만난 날, 그는 간곡한 목소리로 말했다.
“민정아, 나랑 한 번만 자면 안 되니?”
“야, 너 제대로 하지도 못할 거 같아.”
“아니야. 내가 최선을 다할게. 가방 들어줄까? 나한테 업힐래? 내가 A+ 줄게.”
“나 네 수업 듣지도 않는데?”
술집에서 나와서 길을 걷는 사이에 하늘에서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A는 어린애처럼 손뼉 쳤다.
“이것 봐, 내가 이 비를 너를 위해서 준비했어.”
“너는 왜 입만 열면 헛소리야?”
“넌 나한테 너무 못되게 말해.”
그는 발걸음을 멈추고 내 양손을 붙잡았다. 그리고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싱잉 더 레인….”
그가 몸을 흔들거리며 춤추는 모습을 보고 있다가 나는 결국 웃음을 터뜨렸다.
신촌의 한 모텔에 들어간 그는 내 예상대로 ‘제대로 하지’ 못했다.
“왜 이러지….”
그는 발기되지 않는 자신의 성기를 잡고 흔들며 땀을 뻘뻘 흘렸다. 내가 괜찮다고 말했지만 포기할 생각이 없는 모양이었다.
“아, 정말 왜 이러지. 잠깐만….”
그는 침대에서 내려가더니 모텔 한편에 있던 컴퓨터를 켰다. 설마 포르노를 보려는 걸까? 졸음 때문에 무거운 눈꺼풀 사이로 그가 의자에 앉아서 성기를 붙잡고 끙끙거리는 모습이 들어왔다. 스르르 눈이 감기는 와중에도 놀라웠다. 이 사람은 부끄러움도 없나? 자존심도 없나? 그는 그 순간 자기의 모습이 어떻게 보일지 조금도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았다. 옆에 있는 나는 물론이고 외부에서 자기 자신을 바라보는 자의식도 없었다. 그를 사로잡고 있는 것은 오직 발기와 사정이라는 욕망뿐이었고, 나에게는 그 욕망의 순도가 충격적이었다. 이 사람은 어떻게 이토록 거리낌 없이 자기 쾌락을 추구할 수 있는 걸까? 도대체 어느 선까지 자신에게 자유를 허용하고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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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해가 지나서 SNS를 중심으로 ‘문단 내 성폭력’ 해시태그 운동이 생길 무렵, 시인 A의 이름이 쓰인 대자보가 대학에 붙었다. 그가 학생에게 성희롱적 발언을 하고 성관계를 요구했다는 이야기가 들어 있었다. 온라인에 폭로가 이어졌다. 그가 술을 마시다가 함께 있던 여성의 얼굴을 구타했다는 고발, 술자리 게임을 빌미 삼아 학생에게 속옷을 내리게 했다는 고발 등등. 쏟아져나오는 증언을 보면서 어안이 벙벙했다. 고작해야 이름이 알려진 시인이자 대학 강사였을 뿐인데 어떻게 이런 행동을 할 수 있는 걸까? 작은 권력에도 꼭지가 돌아버리도록 도취하는 것이 문인이라는 집단의 특성일까? A는 대자보의 내용을 인정하고 모든 강의를 그만뒀다. 이후 각종 예술계 내 성폭력을 고발하는 해시태그 운동은 사회 전체의 미투 운동으로 확산됐다. 한동안 그의 이름은 성추행을 일삼는 한국 남성 시인의 예시로 세간에 오르내렸다.
여러 달이 지난 후 A의 부고 기사가 나왔다. 그는 자기 집에서 죽은 지 약 2주 만에 발견되었다. 유가족은 그가 평상시 알코올 중독 증세로 건강이 좋지 않았다고 언론에 밝혔다. 소식을 들었을 때 내가 제일 처음 느꼈던 것은 삶이 놀랍도록 공정하다는 감각이었다. 인생은 그에게 한 번은 달콤한 꿀단지를 내밀고 또 한 번은 똥 더미, 다른 누구도 아닌 그가 싼 똥 더미를 내밀었다. 자기 앞에 주어진 것을 묵묵히 맛보면서 더 나은 인간이 되고자 할 수도 있었겠지만, 자신의 범죄와 치부를 직시하기에 그는 너무 나약했다. 그가 무더운 여름날 연립주택의 변사체로 발견된 것은 그 나약함의 대가라고 생각한다.
그가 죽은 뒤에 한국 문학계의 큰 별이 졌다며 애도하는 말들이 오갔다. ‘큰 별이 졌다’라니. 너무 시적이고 운명적인 표현이다. 그의 죽음은 원인과 결과가 정확하게 맞는다는 점에서 지극히 산문적인 죽음이었다. 아니, 수학적인 죽음이라고 하는 편이 정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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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를 다시 떠올리게 된 계기는 EBS에서 방영했던 [명동백작]이라는 드라마를 보면서였다. 이 드라마는 6.25 전쟁 이후 명동을 배경으로 김수영, 박인환 등 문인들의 삶을 그려낸 것인데, 2004년 방영 당시에 재미있게 봤던 기억이 남아 있어서 유튜브에 올라온 방송 영상을 클릭해봤다. 다시 보게 된 드라마는 기억보다 훨씬 시대착오적이었다. 드라마의 주요 등장인물인 남성 시인들은 허구한 날 만취해서 사람들에게 시비를 걸고, 만나는 여성들에게는 성추행을 일삼는다. 드라마의 내레이터는 그들의 행동을 ‘시대의 우울’과 ‘예술가의 고뇌’라고 설명한다.
전후 시대 문인이라는 남성들이 취해서 흐느적거리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시인 A와 함께했던 여러 술자리가 떠올랐다. 내가 과거에 살았다면, 그리고 이 드라마에 나오는 인물들과 명동의 대폿집에서 술을 마셨다면, 그들의 모습은 A의 주변 사람들과 한치도 다르지 않게 ‘프릭’하게 보였으리라. 드라마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 그러니까 문학을 공부하는 여자 학생들을 ‘예쁜이’라고 칭하며 손을 주무르는 오상순 시인도, 술자리에서 함께한 여성을 노골적으로 훑어보는 박인환 시인도, 기분 나쁜 일이 생겼을 때 방 안에 들어가서 ‘으아아’ 소리치며 물건을 때려 부수는 김수영 시인도 너무나 기이하게 보였다. 왜 이들은 다 큰 성인인데 어린아이처럼 행동하지? 이런 태도를 ‘순수함’으로 해석하는 원로 문학평론가들 역시 기이했다.
그렇다면 나는 왜 A와 어울렸을까? 명동 거리에 대자로 뻗어 자는 모니터 속 남성들을 보면서 깨달았다. 이민경 작가의 [코로나 시대의 사랑]의 통찰을 빌리자면, 나는 A를 사랑한 것이 아니라 A가 되고 싶었던 것이다. 무엇이 내 욕망을 자극했던가? 그를 만날 당시에도 나는 그의 재능이나 인기를 부러워하지 않았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그의 몫이었다. 오히려 내가 갖고 싶었던 것은 시인 A에게 허용된 자유였다.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마음껏 예의를 어길 수 있고, 그것을 저지하는 사람도 없고, 그래도 사람들에게 버림받지 않고 오히려 환대와 동경을 받는 존재가 되는 것. 사람들에게 마음대로 욕구를 분출하고 무례하게 굴수록 오히려 그 일들이 신화가 되는 마법 같은 메커니즘. 유명한 시인이 되면 저렇게 살 수 있는 걸까? 그의 모니터 옆에서 팔랑거리던 쪽지들이 사실은 프리패스를 암시하는 티켓이었던가?
먹고 싶으면 먹여주고 빨고 싶으면 빨게 해주고, 안아주고 달래주고 너는 중요한 존재라고 계속해서 속삭여주는 세상. 나는 그런 곳에 살아본 적이 없다. 그리고 그런 세상은 글 쓰는 여성에게는 주어지지 않는 것이다. 세상은 남성 예술가의 광기를 사랑했다. 여성 예술가들의 격정적 기질은 ‘예민하고 신경질적이며 감상적이다’라는 평가가 내려졌고, 그 단어가 다 담을 수 없는 여성 예술가는 세상의 외면 속에서 ‘미친년’으로 평가절하되거나,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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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글쓰기의 윤리성은 한국-여성-에세이스트라는 취약한 위치에서 만들어진다. 에세이스트인 나는 ‘문학계의 별’이 아니며, 큰 별은 고사하고 그 별자리에 포함되지도 않는다. 에세이를 쓰는 이상 아무도 나의 텍스트를 평론의 대상으로 삼지 않고 그들의 역사에 기록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뿐만 아니다. 여성인 나는 타인과 맺은 육체적 관계를 말하는 순간 성적 대상화를 피할 수 없을 것이며, 심리적 관계를 설명하면 내 인간성 자체가 품평의 대상이 될 것이다. 내 글은 흔히 가십으로 읽힌다.
반면 A는 유리한 고지에 서 있다. 그의 시는 ‘예술 작품’이므로 개인의 삶과 분리해서 봐야 한다고 옹호하는 이들이 수두룩하다. 그의 이름은 계속해서 한국 문학사에 남을 확률이 높은데, 이미 그의 삶과 작품을 신화화하는 이들이 많기 때문이다. 세월이 지난 후에 한 독자가 그 신화를 따라가다가 내가 예비해놓은 조그만 돌부리에 걸리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 글을 쓴다.
그렇다, 잘해야 조그만 돌부리가 되는 것. 얻을 수 있는 것은 이토록 적은데 나는 왜 쓰는가? 왜 자꾸 자신의 삶을 들여다보고 글을 써서 폭로하는가? 한 번쯤은 한 조각의 거짓도 없이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보고 싶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에서 에세이를 쓰는 여성은 백만 개의 시선을 통하지 않고서는 자신을 볼 수 없다. 내가 보고 듣고 생각한 것을 말하려는 순간 의심하고 반박하는 말들이 환청처럼 귓가를 떠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딱 한순간만이라도 자신에게 거짓말하지 않고 생을 뚫어보고 싶다. 무수한 자기 검열 속에서도 자신의 눈이 포착한 것을 정확하게 쓰고자 하는 의지. 방패 없이 칼만 잡고 싸움판에 뛰어드는 투지. 이것이 한국-여성-에세이스트의 정신이며 내 글쓰기의 윤리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