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해지고 싶어서 이혼했다는 말은 얼마나 공감받을 수 있을까?
언젠가부터 우울한 기분을 느낄 때면 생각한다. 요새 너무 술을 많이 마셨나. 혹은 요새 너무 술을 마시지 않았나. 모든 기분의 고저를 술 탓으로 돌리는 것은 간편한 일이다. 그러나 때로는 직면하고야 마는 순간이 온다. 아무 계기도 없이, 외면하고 회피하는 행위가 갑자기 임계점에 도달했다는 듯 감정을 덮어두었던 장막이 사라진다.
너는 술을 자주 마셔서 혹은 마시지 않아서 우울한 게 아니라 함께 살던 사람과 나누었던 농담이 떠올라서 기분이 가라앉은 거야. 거리를 걷다가, 어느 공간으로 들어가는 문손잡이를 돌리다가 그 실없는 이야기들이 솟아오른 거야. 하수구가 역류하듯이 과거의 한순간이 되돌아오면 네 기분은 엉망진창이 돼.
어느 늦은 오후에 지하주차장에 있는 재활용품 수거장에 내려가서 맥주캔과 라면 봉지를 버리고 온다. 집으로 들어와서 현관문을 걸어 잠그고 손을 씻는다. 의자에 앉아서 내 작은 집을 둘러본다. 일 년 전만 해도 이곳에 혼자 살게 될 거라고는 상상하지도 못했는데. 너무 이상해. 모든 것이 비현실적이야.
전 배우자에게 전화를 거는 일은 쉽다. 만나자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오늘 내 머릿속에 떠오른 웃긴 얘기를 하는 것도 가능한 일이다. 불가능한 일은 서로를 마주보며 가벼운 마음으로 웃는 것. 아무리 재미있는 농담을 해도 우리가 잠깐 함께 웃은 다음에 금방 울음을 터뜨리고 말 거라는 사실을 알기에, 헤어진 다음 한번도 전화를 하지 않았다.
출판사 미팅 때 들었다.
"이혼한 이후의 삶에 대한 이야기도 나왔으면 좋겠어요."
"음, 사실 아직 시간이 많이 지나지 않아서 극적인 변화는...."
이야기를 나누고 난 다음에 생각해봤다. 아마 이혼 이야기를 읽는 사람들은 가부장제의 억압에서 벗어나는 인물을 보며 카타르시스를 느끼길 바랄 것이다. 홀로서기의 첫발을 딛는 인물을 응원하며 책을 덮고 싶을 것이다. 자기 성찰을 통한 성장 이야기는 공감받기 쉬운 서사다. 이런 생각을 하다보면 불현듯 짓궂은 생각이 든다. 완전히 망했다는 이야기로 끝낼까? 이혼 후에 술독에 빠져 살고 심각한 기분의 고저를 경험하며 삶에서 자살이라는 선택지가 생겼음을 느낀다고. 그런데 왠지 모르게 이 상태가 내가 계속 찾아다녔던 장소라는 생각이 든다고.
그렇다, 이 정서 상태는 하나의 장소다. 나는 부서지지 않고 이곳을 탐험해보고 싶다. 일상 생활을 함께하는 배우자가 있을 때는 이 장소로 들어가는 문을 열 수가 없었다. 실없는 농담으로 삶의 기압을 계속 뺐기 때문에 그 문에 다가갈 추동력을 가질 수 없었다.
고독해지고 싶어서 이혼했다는 말은 얼마나 공감받을 수 있을까? 완전히 밑바닥까지 가라앉아보고 싶어서 이혼했다는 말은? 나는 원인과 결과를 혼동하고 있는 걸까? 내가 내 삶을 통제할 수 있다고 믿어보려고 고의적으로 착각하고 있는 걸까?
모든 자전적 이야기에는 진실만큼 거짓말이 섞여 있다. 연극 배우처럼 독백하는 내 모습을 상상해본다.
"그는 내 삶의 방해물이었어요. 함께 밥을 먹고 청소를 하고 오늘 하루의 일상을 나누고 함께 웃는 일이 가끔, 나중엔 자주 방해가 된다고 느꼈어요. 나는 내 장소에 머물러 있을 수 없었어요. 그가 주의력을 빼앗았어요."
"돌이켜보면 결혼 생활에서 제가 가장 즐거웠던 일은 압도적인 분노를 경험한 것이에요. 엄청난 아드레날린. 하지만 무슨 일 때문에 화가 났건 그 근간에는 둘이 함께 사는 삶을 지켜야 한다는 책임감과 애착이 있었는데, 그의 외도를 안 순간 책임감도 애착도 사라졌어요. 그래서 더이상 아무 일에도 화가 나지 않았어요. 나를 흥분시키지 않는 사람과는 함께 있고 싶지 않아요. 그건 너무 지루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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