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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유 Apr 08. 2024

남자들이란..

여자의 마음을 너무도 모르지..

이건.. 뭐랄까. 그런 글이다. 유난히 피곤한 월욜... 일하기 전 담배 한대 피러 나와 잡담하듯.. 쓰는 그런 글이다. (비흡연자입니다만)


그대들을 웃기고 싶었다고나 할까??? 부디 그대들이 '피식' 웃어주길...  




학창시절.. 그룹과외를 했었다. 그중 한 녀석이 어느 날인가 굉장히 센치한 얼굴로 나타났다.


"난, 여자들은 속이 상하면 까만 눈물을 흘리는 줄 알았어."


뭔가, 철학적인 말을 남기고 텅 빈 눈으로 먼산을 보던 녀석의 얼굴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래, 까만 눈물을 흘리는 성모 마리아도 있으니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 라고 생각하는 찰나 녀석의 말이 이어진다.


"그게.. 마스카라일 줄이야.."


단단히 속았다는, 대단한 비밀의 전말을 알고 배신감을 느꼈다는 듯 탄식한다. 더 먼 곳을 응시한다.


어두운 곳에 계시다는 소문이 파다했던 부친의 핏줄을 타고 난 탓인지 학교의 짱 노릇을 일삼던 녀석 때문에 모친은 아들 단속에 늘 골머리를 앓았고 야단을 치는 날이 잦았다.


그리고 그때마다 마스카라가 번져 까만 눈물을 흘리셨다고 한다.


여자의 화장품을 잘 모르는 녀석은 아, 어머님께서 나 때문에 얼마나 속이 시커멓게 타셨으면!! 이라고 생각했다니, 참 대단히 귀엽다.


남자는 여자를 잘 모르고, 남자 아이들은 더더욱 엉뚱하게 그 방향이 튄다.




세월이 흘러 나에게도 남자 아이가 생겼다.


세수도 잘 하지 않는 나는 기본 화장품도 없고, 당연히 색조도 하지 않는다.


아이는 뭔가를 바르는 엄마의 모습을 본 적이 거의 없다. 어느 날은 아이와 시내에 갔다 귀가를 위해 버스를 기다리는데 왠지 마음이 한없이 공허했다.


저녁 노을이 질 무렵, 어찌할 바 모르고 방황하는 이 마음, 뭐라도 하고 싶었다.


그런데 내가 뭘 할 수 있으랴..


그렇게 뾰족한 수 없이 마음이 허할 때...뭐라도 하고 싶은 마음이 들면 (내 딴에는 나름의) 화장을 한다.


버스도착 정보를 확인해보니 기다리는 버스가 도착하려면 아직 이십 분이나 남았다. 멍하니 있다 정류장 앞에 있는 올리브영으로 들어갔고. 골드 펄이 은은하게 들어간 섀도우를 발견했다.


손가락으로 톡톡, 긴 속눈썹 가까이, 눈꺼풀 가운데서부터 섀도우를 조심스레 펴발랐다.


공작새가 날개를 활짝 펴듯, 도도하고 은은하지만, 한껏 화려하게.


거울을 보니 반짝반짝. 제법 예쁘다. 꽤 괜찮다. 기분이, 마음이 쫙 펴진다.


자신감이 생긴 나는 거울에서 아이에게 시선을 옮겨 눈을 동그랗게 뜨고 깜빡깜빡이며 물었다.


"엄마, 어때? 예뻐?? 엄청 예쁘지??"


아이는 물끄러미 바라보며 씩 웃더니 얘기한다.


 "응. 근데 그렇게 반짝이 바르고 화내면 진짜 무섭겠다!"


섀도우를 조용히 내려놓고, 올리브영 매출에 기여하지 못한 채 귀가했다.


그날의 일을 아이친구 엄마에게 얘기했다.


얘길 들은 친구 엄마는 알 것 같다는 듯, 공허한 미소를 띄며 자신의 얘길 전한다.


"얼마 전에 너무 기운이 없더라고요. 그래서 거실 구석, 볕이 잘 드는 베란다 창을 바라보며 팔을 베고 누워 있었어요.


근데 아이가 옆에 앉아 내 얼굴을 한참을 바라보더라고요. 그렇게 조용한 애가 아닌데 싶어 저도 걔를 한참 봤죠.


그렇게 애도 저도 한참을 마주 보고 있는데 애가 묻더라고요."


"엄마"


"응, 왜??"


"엄마, 사람 얼굴에도 지문이 있어???"


없던 기운도 용솟음 치게 만드는, 그런 화를 불러일으키는 천부적인 재능이 있다고 한다. 그녀의 사랑스런 남자 아이들은 말이다.




츤데레 선배들과 기자로 근무하던 당시 홍일점이었던 내겐 이런 일도 있었다.


나이가 가장 어렸던 내가 출근을 해서 올라온 보도자료들을 확인하고 있으면 밤새 숙취에 시달린듯한 표정의 선배들이 뒤를 이어 하나씩 출근했다. 사건당일은 내가 전일 파마를 하고 출근한 아침이었다.


"안녕하십니까?"


어깨를 툭, 치며 등 뒤로 지나가던 선배들이 한마디씩 정다운 아침인사를 건넨다.


"왜 그랬냐?"


"웃길려고 그랬어?"


"어디서 했어? 누가 그랬어??"


"오올, 남친이랑 드디어 헤어지는구나!"


그때 회사의 위엄있는 으르신, 국장님이 지나가며 슬며시 내 편을 들어준다.


"왜 그래??? 아주 예쁜 아줌마 같은데. 바글바글 잘 말았네."


이것은 욕도 아니고, 칭찬도 아니다. 남자 선배들은 아군을 가장한 진정한 적군이다.


※ 아.. 일주일 전, 기분이 축축 쳐져 기분전환 겸 오랜만에 파마를 했다. 날개뼈 아래까지 내려오는 긴 생머리를 바글바글 말았더니 사자 같다. 사자처럼 파마를 하니 호랑이 같은 기운이 솟는다. 어흥!




그래도 가끔, 자주 그립다. 문득 뜬금없이 종종 생각이 난다.


그 시간의 내가 그리운 걸 수도 있고. 그 시절의 사람들이 그리운 걸 수도 있다. 뭐가 되었든 모두 애정이라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겠지.


별게 다 그리워지는, 아련해지는 그런 날이 있다. 갈수록.


지금의 이 시간도, 이 모든 것들이 아름답게 기억나며 피식 웃게 되는 날이 있겠지?


그래, 그러니까 조금 귀찮아도 오늘을 열심히 살아야 한다.


고마운 오늘의 지금 이시간을 충실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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