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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유 Mar 25. 2024

소리가 삶이 되는 순간

샤시가 좋은 집은 그렇지 않다고 하던데, 우리집은 전세로 사느라 오래된 창호를 그냥 쓰고 있다. 그러다 보니 외부 소음이 그대로 들어온다.


새벽을 여는 건 현관문 앞에 착, 신문 떨어지는 소리. 이어 쓰레기차가 단지 내에서 부지런히 움직이는 소리가 들린다.


아침 출근, 등교시간 대에 이르면 엘리베이터가 부지런히 오르락내리락, 집집마다 열고 닫히는 현관문 소리. 그렇게 사람 사는 소리는 한동안 조용하다 오후 4~5시 무렵 다시 시작된다.


학원에서 나와 저녁 먹기 전, 꿀 같은 시간을 즐기는 아이들의 왁자지껄한 생동감이 공기 중에 퍼지며 15층 우리집까지 들어온다.


나이가 들며 자연히 이해하게 되는 애잔한 소리도 있다.


밤 11시가 넘어서 어느 갓난쟁이가 잠투정하는 소리가 들린다. 아이를 낳기 전에는 도대체 저 집 부모는 뭐하느라, 왜 애가 저렇게 울도록  달래지 않나 싶었다.


그런데 이젠 안다. 열의 아홉. 아이 부모는 좌불안석이겠지. 아이가 우는 이유를 모르겠으니 본인들이 더 답답하고, 걱정되고 그 와중에 이웃들 눈치까지 살피느라 애가 탈 것이다.


저 아래엔 치매를 앓고 계신 할머니가 있다. 할머니는 오후 무렵부터 괴성을 지르신다.


욕도 하고, 알 수 없는 말을 자꾸만 큰 소리로 쏟아 내신다. 지치지도 않으신 지 한번 시작되는 소리는 30분 정도 이어진다.


그 집 사람들도 우리집처럼 낡은 아파트를 손보지 않았는지, 할머니 소리가 베란다 샷시를 뚫고 그대로 실외로, 복도로 쏟아진다.


마트 가는 길, 할머니의 알 수 없는 우렁찬 외계어를 들으며 '오늘도 할머니가 건강하시네' 아이와 웃다가 저 집 자식들은 얼마나 힘들까. 이름 모를 이웃에게 연민을 느낀다.


사람이 사는 공간, 모르면 그저 공해요, 스트레스다.


하지만 서로를 알게 되면 이해할 수 있는 애잔한 소리가 있다.


저 사람도 애쓰고 있겠지, 나보다 더 애가 탈거야, 라고 생각하는 순간 거짓말처럼 소리는 삶이 된다.





※ 케스코 정기간행물을 통해 매주 연재되는 에세이 중 2월 셋째주 배포 완료분

※ 지면 특성상 700자 내외로 짧게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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