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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유 Jan 17. 2024

천유는 뭐하고 있을까.

근황토크입니다. 안물안궁일수도 있습니다만.


"글이 안 보이던데, 요즘도 카페에 가긴 가요??"


네, 맞습니다. 저는 여전히 카페 그 자리에 앉아 있습니다. 오늘은 눈이 오려는지 통유리 창밖의 풍경이 어둡습니다. 날이 흐려 울쩍하냐고요? 아니요. 저는 철이 없어서 눈이 오는걸 좋아합니다. 비도요. 설레네요.


눈이 언제 오려나, 하는 마음으로 창밖을 흘깃흘깃, 자주 봅니다. 테이블 천장마다 보름달을 닮은 동그란 조명이 예쁘고 은은한 오렌지 불빛을 뿜어내고 있습니다. 통통한 옥토끼는 달 아래에서 지금 커피를 마시고 있고요. 네, 예상하시는 그대로. 딱 그 표정, 그 모습으로.


"도대체 뭘 하는거야? 뭘 하긴 하는거 같던데?"


카페에 앉아 있는 모습을, 커다란 배낭을 메고 다니는 모습이 자주 눈에 띄다보니 어디선가 다들 제 얘길 하나 봅니다. 참지 못한 몇몇은 저와 단둘이 마주치면 슬며시 물어봅니다. 거짓말을 할 순 없습니다. 매일 같이 카페에서 노트북을 두드리는데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건 누가 봐도 뻥이니까요.


"일하느라요."라고 대충 둘러대면 "무슨 일?"이라는 호기심이 동공에 크게 번집니다. 뭘하는 거 같긴 했는데 예상밖이라는거죠. "글을 씁니다."라고 말을 하고부터는 조금 난처합니다. "무슨 글?"이라고 집요하게 다시 물으니까요. "웹툰 작가냐?"라는 말도 들어봤습니다. 웹툰 작가였으면 좋겠습니다. 순간, 상상해봤는데 근사하네요.


참, 아빠는 "이효리 같은 딸"이 있었으면 좋겠다더니 얼마 전에는 "드라마 대본 같은 걸" 써보랍니다. '이효리 아빠'가 되긴 글렀다고 생각한 아빠는 아무래도 '김은희 작가의 아빠'가 되는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습니다.   


글을 쓴다고 다, 기안84같은 웹툰 작가가 되거나 김은희 작가 같은 대박 글을 쓰는 건 아닌데.


"돈이 되는 글도 쓰고, 돈이 되지 않는 글도 쓰고 있습니다."


저는 사뭇 구체적인 대답으로 대화를 매듭짓습니다. 추상적인 말 같지만 사실입니다. 돈이 되는 글은 원고료를 받는 일을 말합니다. 돈이 되지 않는 글은 제 꿈과 미래에 대한 투자. 제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을 말합니다. 당연히 아직 재화로 환원되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래서 항상 행복합니다. 돈이 되는 글을 쓸 때는 나를 필요로 하는 일이 있음에, 돈이 되지 않는 글을 쓸 때는 내게 다시 이런 자유로운 글을 쓸 시간이 주어졌음에요. 매순간 감사하고, 감탄하고, 감동합니다. 돈이 되는 글만 썼어도, 돈이 되지 않는 글만 썼어도 아마 질렸을 겁니다. 균형이 제법 맞습니다.


신은 아마 저를 아주아주, 사랑하는 것 같습니다. 쌩유베리, 스페셜 땡스투입니다.


"천유 씨는 요즘 뭘하시나."


우리집 손석구 회사 윗분들도 이따금 제가 뭘하는 지 물어보신답니다.


우리집 손석구는 답합니다. "열심히 글을 쓰고 있습니다." 그들은 다시 되묻습니다. "책이 나오는 건가?" 우리집 손석구는 뜻밖의 답을 내놓습니다. "아니요. 인정을 받고 싶은 거 같습니다. 등단을 노리는 거 같아요."


맞습니다. 그냥 상이 좀 받고 싶습니다. 그런 애 같은 유치한 마음으로 글을 씁니다.


투고에 전혀 관심이 없는건 아닙니다. 저는 3년 전? 투고를 한 곳에 해본 경험이 있습니다. 그것도 브런치에 글을 쓰기 전, 그러니까 글을 본격적으로 쓰고 싶다는 바람이 있기 전, 그것도 원고도 없이 기획서만 한번 내보았습니다. 당돌하죠?저는 늘 용감한 편입니다. 결과는 매우 정성스럽게 까였습니다. 아주 정성스럽게요.


관련 내용은 다소 깁니다. 궁금하신 분은 <족보없는 자의 신춘문예 도전기>를 참고하시면 될 거 같습니다.


"다한 다음, 덜어내야 진짜 멋쟁이"


고대하던 '브런치프로젝트'도 똑 떨어지고, 이웃들의 출간소식에도 소외되어 있지만 저는 괜찮습니다. 참, 브런치는 저에게 여전히 크리에이터 뱃지를 주지 않았어요. 브런치는 왜 그럴까요? 뭐, 그래도 상관없습니다.


앞서 말한 돈이 되는 글 중 천금 같은 기회를 얻었기 때문입니다. 관련 글은 브런치를 통해서도 곧 발행할 계획입니다만, 저는 새해부터 창호전문기업 정기간행물에 고정 에세이를 쓰게 됐습니다.


주간으로 발행되고, 700자 정도 써야 하는 일이 조금 부담입니다. 글을 길게 쓰는 사람은 짧게 쓰는 일을 굉장히 어려워합니다. 하지만 예상 독자와 지면 크기를 생각하면 메세지는 적당히 간결해야 합니다.


작은 활자가 빼곡한 긴 글은 읽지도 않고 질려하는 게 요즘 추세잖아요. 기획단계에서 전략적으로 글자수와 글자크기를 정해놓은 상태입니다. 글을 길게 쓰는 것보다 정해진 활자수 안에 하고 싶은 메세지를 꾹꾹, 눌러담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습니다. 늘 A4 한장 정도를 쓰고 몇번을 다시 읽으며 덜어내고, 덜어냅니다.  


톱모델 한혜진이 말했습니다. 정말 옷을 잘 입는 사람은 하고 싶은 걸 다 걸치고 나가는게 아니라, 거울을 보고 마지막에 몇 개를 덜어내고 나간다고. 덜어내는 일은 완성도를 더하는 것, 패션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세련된 글을 쓰려면 반드시 덜어내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전국 지면 독자만큼은 밀리언셀러"


여하튼, 글은 연간 300만부 정도가 전국으로 배포되고, 가가호호 우편함으로 꽂힐 예정입니다. 책을 출간해도 300만부가 팔리는 일은 쉽지 않으니, 이 정도면 행운아죠? 물론 읽지 않고 버려지는 경우가 많을 겁니다. 그건 책도 마찬가지죠. 구매를 해도 책꽂이에 그대로 꽂혀 있는 경우도 허다하니. 완독도 드문 일이고요.


저는 단 하나의 작은 목표를, 커다란 욕심을 가집니다. 글을 읽는 이에게 단 하나의 문장이라도 남길 수 있다면, 기억에 남는, 가슴을 울리는, 위로가 되는 단 하나의 문장이라도 남길 수 있으면 좋겠다. 내 글이 단 한 사람이라도 오늘, 이 시간, 지금 필요한 이에게 정확히 가서 가슴에 제대로 꽂혔으면 좋겠다.


저는 이렇게 상을 받지도, 출간 소식도 없지만 전국 연간 약 300만부 글이 배포될 예정입니다. 매주 빵구 나는 일 없이 발행되기 위해 미리 월간, 주간 테마를 정하고 한 편, 한 편 원고를 완성하고 있습니다.


"마감은 저의 숙명이며, 칼마감은 저의 자랑입니다."


이밖에도 재능기부 차원의 뉴스레터를 월 1회 발행하고 있고, 최근들어 인스타그램 도서협찬 제의도 종종 받고 있습니다. 읽을 책이 많아서 필요로 하는 곳이 많아서 기쁘고 바쁜 요즘입니다.


"커밍 순"


곧 다시, 뵙겠습니다. 천유는 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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