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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유 May 17. 2024

엄마가 피워낸 밥꽃

“우리도 주말 아침은 빵 먹자. 나는 먹지도 않는 아침을 매일 차리려니 힘들어.”


어느 아침, 눈을 뜨자마자 화가 치밀었다. 아이와 남편은 벌써 일어나있다는 걸 깨닫는 순간, 아침밥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반사적으로 스쳐 불현듯 짜증과 미안함이 몰려왔다.  


엄마는 이걸 사십 년을 넘게 해왔다니! 나의 몸과 마음의 상태를 배제하고 식구들을 위해 밥을 차린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어려서는 미처 몰랐다.


직접 밥상을 차리기 전까진 나도 아침을 꼬박꼬박 먹는 사람이었다. 밥으로 잠투정을 한다고 할 정도로 잠결에 잘도 먹었다. 엄마가 늘 혀를 차며 얘기했다.


“정신도 안 차리고. 일어나자마자 밥이 넘어가?”


결혼 전까지 지냈던 친정집은 30평대 아파트의 작은방. 내 방 문을 열면 바로 식탁이 있었다.


탁탁탁-탁. 달그닥달그닥. 사락사락. 보글보글. 조물조물.


아침마다 알람이 아닌, 엄마가 음식 하는 소리에 잠이 깼다. 딸의 단잠을 깨울까 조심스러우면서도 늦으면 안 된다는 메시지가 담긴 그 소리는 언제나 달콤하고 나른했다.


그 소릴 목탁 소리 듣듯 이불 안에서 밍기적 밍기적 거리다가 “일어나. 이제 일어나. 밥 먹고 학교 가야지.” 부르면 그제야 부스스 식탁 의자에 앉았다.


따끈한 국에 갓 지어낸 밥 한 공기를 탁 털어 넣어서, 후후 불어 먹는 걸 좋아했다. 입천장이 홀랑 데이는 듯한 그 뜨거운 맛을 좋아했다. 어쩌다 늦잠을 자 서둘러 집을 나가야 할 때는 그럴 수 없었다.


그럴 때면 엄마는 참기름, 진간장, 깨소금을 따뜻한 밥에 뿌리고 삭삭 비벼 세수하고 옷 입고 머리 빗는 나를 쫒아 다니며 입에 넣어줬다.


“아이참, 나가야 해.”

“그러니까 일찍 좀 일어나지. 한입만 더 먹고 가.”  


매번 똑같은 행동과 말을 엄마와 나는 무려 스물여덟 해 동안 아침마다 반복했다.


큰 장사로 부를 일군 떠들썩한 부잣집의 딸 셋 중 둘째 딸이었던 엄마는 어려서부터 고생을 많이 했다. 부모님의 장사를 도왔기 때문이다. 맏딸이었던 언니, 응석받이 막냇동생은 중, 고등학교 일찍이 부산으로 유학을 갔지만, 엄마는 집에 남아 외할머니, 외할아버지의 일을 도왔다.


일하는 엄마를 돕고 싶었던 둘째딸로서는 그저 효심이었지만, 막상 본인이 결혼해 내 딸을 낳고 보니 마음이 달라졌다고 했다. 어질고 미련한 그리고 젊었던 엄마는 어린 딸을 보며 결심했었다고 한다.

 

‘딸은 키운 대로 시집을 간다니 진짜구나. 내 딸은 귀하게 키워서 시집을 보내야지.’


엄마는 월급쟁이 남편의 빤한 봉투 안에서 자신의 몫을 찾지 않았다. 그 봉투 안에는 아빠, 나, 동생의 몫만 있었다. 작은 얼마도 엄마는 떼어내지 못했다.  


그저 최선을 다해 딸을 귀하게 키워냈다. 몸이 정신을 받쳐주는 날도, 그렇지 않은 날도 엄마는 나밖에 몰랐다. 그렇게 엄마는 작은 꽃을 위해 정성스럽게 밥을 지어 예쁘게 피워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매일의 반복되는 일상을 타인을 위해 살아낸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지루한 일인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꼭 해야만 하는 일인지 몰랐다.


정말 몰랐다. 하면 되는 건줄 알았다. 그냥 하는 건 줄 알았다. 그런데, 사랑하는 이를 만나 결혼을 하고 귀한 아이를 낳고 살면 살수록 모든 게 익숙해지는 순간에도 밥하는 건 익숙해지지 않았다.


그렇게 밥을 하며 알았다. 내 몸이 고되니 그제야 그간 엄마가 얼마나 힘들었을지. 그건 당연한 게 아니었다.


엄마도 사람이었고, 엄마도 누군가의 귀한 딸이었을 터인데 엄마는 그걸 매일같이 수십 년을 해냈다.


지방에 살며 초등학생 아이를 키우느라 친정을 자주가지 못한다. 한달 보름 정도에 한번꼴로 엄마, 아빠가 집에 온다. 엄마가 오기로 한 며칠 전부터 나는 전화로 신신당부한다.


제발 그냥 오라는 말에 “그래, 알았다.” 말하지만 엄마는 번번이 약속을 어긴다. 더할 수 없이 바리바리 싸서 우리집에 온다.


관절이 안 좋은 엄마는 여전히 제 몸 아낄 줄을 모른다. 당장 먹을 것, 냉동실에 소분해서 넣어놓고 천천히 꺼내먹을 것을 아이스박스에 배낭에 대형쇼핑백에 잔뜩 넣은 엄마가 오고 나면 나는 한동안 밥으로부터 해방이다.


엄마가 있어서 고맙고 미안하고 다행이다. 여자는 친정엄마가 있는 것만으로도 힘이 된다던데 나이가 들수록 옛말 틀린 게 하나 없다. 나는 너무 큰 재산, 너무 큰 빽이 있다.  


그 사실이 가끔은 너무 벅차게 슬프게 내 안에 휘몰아쳐 내 안의 양심을 깨운다. 자식이란 이유로 이걸 다 당연한 듯 받고 있는게 염치없다 싶다.  


뒤늦게 어른이 된 내 집에 엄마가 와 있는 동안 나는 일상적인 밥보다, 나 나름대로 조금 더 특별한 밥을 준비한다.


우리집 거실에 앉아 부엌에서 서 있는 나를 엄마는 항상 낯설어 했다. 밥을 내어오고, 후식으로 과일과 차를 내가 처음 내어오면 날, 엄마는 불편해했다. 거실에 가만히 앉아있지 못하고 부엌을 서성였다.


엄마는 받아먹는 밥상에 더디게 익숙해졌고, 엄마는 이제야 웃으며 이야기한다.


“이렇게 호강해도 되는지 모르겠다. 가만히 앉아서 밥상을 받아먹고.”


일상의 밥. 남들에겐 당연한 순간이 엄마에겐 너무 늦게 왔다.


엄마는 참 오랜 세월 밥을 했다. 어느 날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래서’ 밥을 했을 게 틀림없다.


엄마는 밥을 하면서 가끔은 울었을 거고, 가끔은 화가 나고 짜증이 났을 테지만, 밥을 먹는 식구들을 보면서는 항상 '그래도 밥하길 잘했네'라며 뿌듯했을게 분명하다. 나는 그 여정을 조용히 따라가고 있다.


엄마에게 조금 더 맛있는 밥을 오래오래 내어주고 싶다. 엄마가 내 아이가 취직을 해서 사는 맛있는 한 끼도 꼭 함께 먹을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다시 얘기해 주길 바란다.


“이렇게 호강해도 되는지 모르겠다. 우리 손주가 사주는 밥을 다 먹고.”


살다보니 끼니를 거르고 싶은 순간도, 끼니를 때우는 게 구차한 순간도 참 많다.


그럼에도 밥을 먹기에 먹을 수 있기에, 챙겨주는 사람이 있기에, 끼니를 걱정해주는 이가 있기에 살아낼 힘이 난다. 죽을 것만 같은 날들도 분명 있지만, 엄마가 있어 다시 일어나고 또 일어난다.


엄마에게 밥을 많이 차려드리고 싶지만, 아직 철이 없는 나이든 딸은 솔직히 늙은 엄마의 밥이 내 밥보다 더 좋다. 그러니까 엄마 밥, 가끔 먹고 자주 차려내 드리고 싶다.


엄마의 밥을, 엄마를 위한 밥을, 엄마와 함께하는 밥을, 나는 늘 소중하게 간직하고 누리고 다시 꿈꾼다. 조금 더, 조금 만 더. 엄마와 나, 밥이 함께하는 호사스런 모든 순간을. 조금만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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