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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유 Nov 15. 2024

괴담, 그리고 최상위 포식자

- 엄마 나 괴담을 들었어. 아! 괴담은 아닌거 같기도 하고. 얘기해 줄까?
- 그래, 뭔데?


어린이 스토리텔러에게는 '근데'와 '그래서'가 굉장히 많음을 주의해야 한다. 그럼 시.작.

 

- 어떤 여자랑 어떤 남자가 결혼을 했대. 강아지도 한 마리 키웠대. 근데 강아지가 여자를 보면 안 짖는데 남자만 보면 많이 짖었대. 근데 남자한테 짖다가도 여자가 오면 안 짖고. 근데 남자가 얘기해도 여자가 안 믿는거야.

그래서 남자가 강아지가 짖는걸 촬영을 해서 여자한테 보여줬데. 그래서 여자가 다른집으로 강아지를 보냈대.
- 그래?
- 응. 근데 미래에 동물의 언어를 통역해 주는 기계가 발명됐대. 남자가 우연히 다시 재생을 해봤더니 강아지가 뭐라고 했던건지 맞춰봐.
- (음...개, 고양이 언어 통역기는 벌써 어디서 나왔다고 들은 거 같은데....) 글쎄? 아! 괴담이랬지! 저는 사람이에요. 구해주세요! 마법에 걸렸어요!!
- ㅋㅋㅋ 엄마 웃기다. 역시 엄마는 창의적이야. 뭐라고 했냐면? "아빠, 엄마가 다른 남자를 만나요!"
- ????? 비슷한거 아냐? 저 사람이에요?! 아, 아! 반려견 입장에서 엄마, 아빠라고 하니까!! 아!! 짖은게 아니라 강아지가 남자한테 이른거구나! 여자오면 입 다물고!!! 억울했겠다. 다른 집에 보내서!


그리고 교보에 가서 책을 몇 권 샀다. 과학(만화)를 좋아하는 아이는 매대에 있는 <1분 과학> 1편, 2편에 관심을 가졌고 아동코너는 아니지만 아이가 충분히 읽을 만하겠다 싶어 집어왔다.


그제, 어제 열심히 읽으며 아이는 "엄마, 엄마!" "엄마! 엄마, 있잖아!" "엄마, 그거 알아??" 연신 종알종알 얘길 전한다.  그 중 기억에 남는 얘기가 있는데 정확히 단어, 용어 등을 옮길 수 없으니(기억하지 못하니) 맥락만 얘기하기로 한다.


- 사람이 물었봤대. AI에게 ai가 세상을 정복할거란 얘기가 있는데 어떻게 생각해?, 라고. AI가 대답했대. (블라블라 '그래서' '그러면'의 흐름이 쭉 이어져 결론에 도달하니) 당신은 나의 가장 좋은 친구이므로 나는 따뜻하고 편안한 '인간 동물원'에 당신을 넣어두고 예뻐하겠습니다, 라고.
- 그러게, 진짜 무서운 얘기네. 그냥 구경한다는 의미라기보단 사람이 반려동물 키우듯 예쁘면 입양하고, 싫증나거나 마음에 안들면 유기하거나 학대할 수 있단 얘기네.

사람 잘못이야. 예뻐하고 사랑을 주는 방법을 동물들에게 잘못 알려줘서 잘못된 방법으로 사랑을 돌려받 수밖에 없는 거니까.


시간이 흘러 저녁을 먹었다. 저녁을 먹을 때면 아이에게 "풍악을 울려라!"고 TV 전원을 켜서 볼만한 프로그램을 찾아달라 한다. 한참을 딴 생각을 하다보니 아이가 해외 다큐 같은 걸 집중하며 보고 있다.



- 이건 뭐야?
- 범상어가 돼지를 먹을까, 라는 실험을 하는 다큐야.


산채로 던져주는 건가? 싶은데 다행히(?) 화면에는 이국적인 해변에서 돼지들이 한가롭게 바다에서 둥둥 떠서 물놀이를 즐기는 장면이 나오고 있었다. 또 다행히(?) 산채로 던져주지는 않고 정말 돼지 같은 모형을 던져 범상어가 몰려들고, 끝내 덥썩 무는 장면이 나왔다.


끔찍하다 생각했다. 키득거리는 여러 명의 남성들이 배 위에서 놀이를 하듯 범상어를 자극하고, 범상어를 묶어 돼지를 먹었는지 보겠다며 배설강(항문)에 긴 면봉(코로나19 검사때 쓰는 것 같은)을 넣어 여러 번 문지르고 빼내는 그런 장면. 버둥거리는 범상어, 여럿이서 키득거리는 장면.


아무리 약육강식의 세상이라 (동물실험을 극히 반대하는 사람도 있고) 어쩔수 없는 생존을 위한, 인류를 위한 희생이 있다 치더라도, 이런 식의 실험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 내가 보지 못한 앞 부분에서 어떤 거창한 인류학적 의미를 부여한 설명이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내눈에는 그저 최상위 포식자 인간이 호기심을 해결하기 위해 범상어를 괴롭히는 '희희덕'으로 보였다.


예전에 TV 방송프로그램 <스펀지>가 동물학대 논란이 됐던 적이 있다. 여러 번.


두꺼비와 쥐가 혀를 데인 채 괴로워 하는 장면, '짚신벌레는 맥주를 마시면 (스트립쇼)를 한다'는 제목도 자극적인 실험, 게를 냄비에 넣고 빙빙 돌리는가 하면, 전갈의 꼬리(사람에겐 장과 항문에 해당됨)를 자르는 장면 등. 그때도 인간의 단순한 호기심, 흥미, 오락을 위해서였고, 역시나 웃는 패널들의 표정이 화면에 여러 번 잡혔다.


앞서 말한 괴담처럼 모든 동물의 말들이 인간의 귀에 들린다면, 그 고통과 괴로움, 슬픔, 분노, 무력함, 좌절을 듣고도 지금처럼 대할 수 있을까?? 그게 예뻐하는 '방식'이라도 말이다. 일부는 어쩌면 변하지 않을지도 라는 생각이 곧장 들어서 슬프지만, 그래도 그 수는 많이 줄어들지 않을까??


아이에게 기회가 될 때마다 얘기하곤 한다. 뉴스를 보다가, 다큐를 보다가 시시때때로.


처음 시작은 그런 의도가 아니었을지 몰라도 한 명, 두 명, 세 명 사람이 늘면 처음 의도와 달리 조금 더, 조금 더 다른 방식의 장난이 이어지고 덧붙여지고 어느 순간 선을 훌쩍 넘는데도 그게 범죄인 줄 모르고 희희덕 거리는 경우가 있다고.


그래서 잡히면 나중에 하는 얘기가 모두 "장난이었어요."라고 말한다고. 행위주체자인 내가 무슨 짓을 하는지 모르고 하는 일들은 사람이 하는 일이 아니라고.


어떠한 경우에도 일대 다수가 몰려 한 사람을 둘러싸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고. 아무리 장난이라도 상대방이 싫어하면 그건 장난이 아니라고. 내가 남에게 고통을 주는 게 어떻게 장난일 수 있겠냐고. 그걸 장난이라고 칭하는 순간 더 잔인한 고통이 되는거라고.


사람도, 동물도 존중받으며 살았으면 좋겠다. 언제고 흥미가 가학성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언제나 명심하고 경계하며 사는 사려 깊은 사람으로 살고 싶다. 역시 그런 사람들과 함께하며 좋은 세상에 살고 싶다.


또 반드시 우리 아이들은 그랬으면 좋겠다. 꼭 그런 세상에서 살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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