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온다. 라떼 한잔과 바라보는 풍경이 더없이 가을이다. 괜히 센치해지며 두근거린다.
비오는 날은?
국수, 수제비, 삼겹살, 부대찌개, 김치 부침개 엔쏘온..
비를 핑계로 먹을 게 많으니 얼마나 행복에 겨운 날인고.
많고 많은 메뉴 중 나는 수제비를 가장 좋아하고, 이웃한 이들은 대개 국수를 일, 이순위로 꼽는다.
멸치육수와 표고버섯을 함께 끊인 육수에 노른자와 흰자를 따로 얇게 부친 계란지단을 가늘게 착착 썰어 올리고. 호박은 들기름에 볶은 뒤 김가루, 갈은 깨소금을 함께 올리면 우리집 손석구도 두 그릇 뚝딱이다.
아, 까다로운 이 남자는 다진 마늘에 갖은 양념을 넣은 양념장 한 숟가락도 넣어야지?
최근 터미널 근처를 걷다가 우연히 국수와 수제비를 팔고 김치도 파는 세 평 남짓한 작은 가게를 발견했다. 느낌이 왔다. 이거다는. 이건 꼭 먹어야 한다는 그런 본능적인 느낌 말이다.
예로부터 구전으로 전해 내려오는 맛집 판별방법이 있다. 그중 면류 챕터를 펼쳐보면 설렁탕집과 국숫집은 김치가 맛있으면 맛집이라고 한다.
이 작은 가게에 두 가지 메뉴, 거기에 김치를 따로 판매하기도 한다고 쓴 건 범상치 않은 징조다.
상상해 본다. 그리고 말한다.
- 오빠, 김치가 얼마나 맛있으면 손님들이 따로 팔라고 성화였겠어? 여긴 맛집이야!
- 김치 먹지도 않으면서.
우리집 츤데레는 핀잔으로 메모리 기능을 업데이트 시키는 그런 남자. 그 남자의 메모리에는 '수제비'도 입력돼 있다. 이후 그와 함께 몇 번을 가게에 방문했고, 한 번은 수제비 반죽이 쉬어서 국수를 먹었다.
후루룩, 당근 고명도 감자 고명도 냠냠. 후추를 탁탁 뿌린 뜨끈한 국물에 속이 풀린다.
그게 일주일 전이다. 국수 한그릇 맛있게 그와 나눠 먹은게.
그리고 다음날, 브런치프로젝트를 후루룩~ 잘 말아먹었다. 맙소사! 먹성 좋게 그것까지 먹어버리다니! 괜찮다. 마감은 어차피 게으른 내가 일어나 글을 써야할 채찍질, 당근일 뿐이니. 소기의 목적은 달성했다.
실수는 내가 한 건고, 기회는 이번만 있는 건 아니다. 공모전은 수상보다 이를 핑계로 한권의 책을 더 읽고, 한편의 글을 더 생각하며 쓰는 연습하는 좋은 핑계가 된다. 덕분에 한 챕터 잘 끝냈다.
더욱이 올리는데 급급해 오타가 장난이 아니다. 우당탕탕. 목차도 모두 거꾸로 올라갔다. 이미 쓴 글, 천천히 틈날 때마다 수정해야 겠다.
여하튼 세살 버릇 여든 간다. 제버릇 개 못준다는 식의 속담이 떠오른 벼락치기의 최후는 허무했다.
그렇게 오랜만에 커다란 교훈을 얻었고 이튿날은 엄마, 아빠가 오셨다. 엄마의 사진을 찍고 인화된 사진이 예뻐, 엄마와 나, 아빠와 나의 어린이 이렇게 넷이서 사진도 찍었다.
꿈도 사랑도 충만한 날들. 그렇게 하루하루 참 바삐도 지나간다.
후루룩 이렇게 11월이 됐으니 말이다.
하루도, 놓치지 말고. 체하지 않게 내가 어디 서있고 무엇을 하는지 누구와 함께하고 있는지 잘 기억해야지.
더 많이 사랑하고 더 많이 나누고 누구보다 많이 웃으며 그렇게 후루룩 지나가는 시간을 꼭꼭 잘 씹어 소화시키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