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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처럼 Nov 08. 2019

"바람은 피웠지만 이혼시켜주세요."

홍상수 감독과 최태원 SK그룹 회장. 그들은 왜 이혼하지 못했을까?


“미안하다면서 이혼? 내가 왜 이혼을 해줘야 돼? 내가 뭘 잘못했는데!"




JTBC 드라마 '이번주 아내가 바람을 핍니다' 스틸컷


2016년 방송된 JTBC 드라마 '이번주 아내가 바람을 핍니다' 속 등장한 대사다.


'함부로 예약해버렸습니다. 이번주 토요일 H호텔 3시. 기다리겠습니다. 보고 싶습니다.'


아내 수연(송지효)과 이상적인 결혼 생활을 해왔다고 믿고 있던 현우(이선균)는 낯선 남자가 수연에게 보낸 문자를 보고 큰 충격에 빠진다. 불륜 사실을 들킨 수연은 용서를 빌기는커녕 되려 현우에게 이혼을 요구하고, 식탁 위에 놓인 이혼 서류와 덩그러니 놓인 결혼반지를 본 현우가 울분으로 토해 낸 한마디가 저 대사였다.


우리나라 법원의 태도도 드라마 속 현우의 입장과 동일한 듯하다.


이혼 판결에는 '유책주의'와 '파탄주의'의 입장을 취할 수 있는데, 한국은 그중 유책주의를 택하고 있기 때문. 따라서 부부 중 한쪽이 불륜 등으로 결혼생활을 파탄에 이르게 한 책임이 있을 경우, 책임이 있는 쪽은 이혼을 청구할 수 없다. 오직 유책사유가 없는 쪽이 이혼을 요구할 때만 법원이 이혼을 허락할 수 있다.


얼마 전 화제가 됐던 홍상수 감독의 이혼소송을 살펴보자. 홍 감독은 2015년경 배우 김민희와 연인 관계로 발전했고 아내에게 이혼을 해달라며 소송을 제기했다. 그리고 오랜 기다림 끝에 나온 재판 결과는 '패소'. 법원은 유책주의를 고수해 홍 감독에게 혼인 파탄에 책임이 있는 만큼 이혼소송을 제기할 수 없다는 판결을 내린 것이다.


혼외자의 존재를 밝히며 아내를 상대로 이혼소송을 제기한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앞으로 한국의 법이 유책주의에서 파탄주의로 바뀌지 않는 한, 홍 감독과 최태원 회장의 이혼은 부인의 동의 없이는 법적으로 남남이 될 수 없다.

만약 한국 법이 파탄주의를 택한다면 어떻게 될까. 파탄주의를 영어로 ‘노폴트 이혼(No-fault divorce)’이라고 한다. 부부 사이가 멀어졌다면 누구의 잘잘못인지를 따지지 않고 이혼을  허락하는 것이다.


간단히 말해 불륜을 저지른 자라 할지라도 이혼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는 뜻. 서로 상대방의 유책사유를 공방을 벌여 증명할 필요가 없다. 성격 차이 혹은 가정 파탄으로 결혼생활을 더 이상 지속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르렀다는 사실만으로 이혼 사유가 된다.


이혼 판결에 있어 유책주의를 취할 것인지 파탄주의를 취할 것인지에 대한 문제는 꽤 오래 기간 논쟁거리가 돼 왔다. 유책주의를 택하면 이미 멀어진 사이임에도 껍데기만 유지하며 살아가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고, 파탄주의를 택할 경우 이혼에 대한 원인 제공자가 누구인지를 가려내기 어려우며 갑작스럽게 이혼을 당한 상대방이 일방적으로 희생을 감내해야 한다는 단점이 있다.


연간 이혼 건수 약 11만 건. "검은 머리가 파뿌리가 될 때까지 사랑하라."는 백년가약은 이제 옛말이 됐다. 유책주의와 파탄주의에 대한 논쟁에서 나아가 개인과 각 가정의 실질적 행복을 저울질해 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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