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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처럼 Nov 10. 2019

‘말이 칼이 되는 순간’ 악플, 그 오만함에 대하여

"악플러 고소를 한 번 해봤었어요. 그런데 그분이 유명한 대학에 다니는 동갑내기 학생이더라고요. 선처하지 않으면 빨간 줄이 그어진다고 하고, 취업할 때도 문제가 생긴다고 미안하다는 내용의 편지를 보내와 선처를 해줬어요."    




10월의 어느 날, 스물다섯의 어린 나이에 스스로 세상을 등 진 설리가 살아생전 한 예능에 출연해서 한 말이다. 설리의 소식을 듣자마자 그녀가 몇 해 전부터 악플로 인한 고통을 호소하며 연예활동을 잠정 중단한 적이 있었다는 것이 어렴풋이 생각났다.  


설리의 활동 중단 이후 화제가 된 건 여성에 대한 노브라 권리 주장과 '당당한 여성'이라는 수식어를 원한 그녀의 행보.


그러나 익명이라는 오만함은 여지없이 '비판'이라는 이름으로 그녀를 향했고, 대인기피증과 공황장애를 호소하던 설리는 결국 우리 곁을 떠났다.


악성 댓글에 대한 경중을 울린 배우 최진실의 죽음을 시작으로 악플로 세상을 등 진 연예인들의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악플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자는 목소리들이 나오곤 했다.


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언제 이런 다짐을 했냐는 듯 ‘악플 근절’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은 금세 사그라들곤 한다. 그것도 모자라 ‘악플도 관심’이라는 식의 배려 없는 둔감함까지 생겨나고 있다.

  

현행법상 이런 악플러를 처벌할 수 있는 규정은 두 가지이다. 정보통신망법상 사이버 명예훼손죄와 형법상 모욕죄.    


사이버 명예훼손죄는 사람을 비방할 목적으로 정보통신망을 통해 공공연하게 사실 또는 허위사실을 드러내어 다른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경우에 성립한다. 악플러가 게시한 내용이 진실 또는 허위인지 여부는 처벌의 경중에 차이가 있을 뿐이다. 그 내용이 진실인 경우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 원 이하의 벌금으로 처벌되고, 허위사실인 경우에는 7년 이하의 징역, 10년 이하의 자격정지 또는 5,000만 원 이하의 벌금으로 처벌되기 때문.



두 번째, 모욕죄는 공연히 사람을 모욕한 경우에 성립한다. 모욕죄도 불특정 또는 다수인에게 전파될 가능성이 있어야 한다는 점은 사이버 명예훼손죄와 같다. 그러나 구체적인 정보를 포함하지 않은 채 욕설이나 비속어 등을 표현했을 때 죄가 성립하고, 비방의 목적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사이버 명예훼손죄와 차이가 있다.    


욕설, 비하, 성희롱적 표현으로 이루어진 대부분의 악플은 형법상 모욕죄에 해당할 가능성이 크며 모욕죄의 경우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만 원 이하의 벌금으로 명예훼손죄보다 훨씬 그 처벌수위가 낮다.


어쩌면 악플러들은 '키보드'라는 활시위를 통해 '악플'이라는 화살촉이 되어 자신의 손을 떠난 수많은 댓글들을 기억조차 못 할지도 모른다.


그저 자신의 일상 속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그저 그 사람이 마음에 안 든다는 이유로 대수롭지 않게 악플을 달고, 심지어 피해자의 고소로 재판에 넘겨졌더라도 초범이라는 이유만으로 벌금형에서 사건이 마무리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경미한 처벌이 주는 악플의 가벼움을 타파하고자, 설리의 사망 이후 정치권에서는 소위 ‘설리법’으로 불리는 ‘악플방지법’을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실제로 ‘준 실명제’를 적용해 불법 정보에 혐오 표현을 포함하고 포털사이트의 관리자가 직접 혐오 표현 등을 삭제해야 하는 의무를 부과하는 것을 골자로 한 ‘정보통신망법 일부 개정 법률안’이 발의되기도 했다.   


법적 규제에서 나아가 근본적 인식 변화, 언론사의 무분별한 보도에 대한 규제 등, 더 기저에 자리한 문제 해결을 통해 보다 악플에 대한 자중의 분위기가 조성되기 바란다.



끝으로, 언젠가 설리가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저한테만 유독 색안경을 끼고 보시는 분들이 많아서 그런 것들이 속상해요. 기자님들, 시청자분들 저 좀 예뻐해 주세요."


너무 늦어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그가 보여준 아름다움과 따뜻한 마음을 영원히 간직하겠노라 다짐한다.


그곳에서는 어떤 설리의 모습으로든 행복할 수 있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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