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토에서 내가 하고 싶은 말] 1. 순간이동

by 모모

#1. 비행기는 7시 50분 비행기였다. 7시 5분 비행기가 더 저렴했지만 도저히 자신이 없어서 45분을 미뤘다. 선택은 탁월했던 것 같다. 새벽 4시 기상, 5시 리무진 탑승, 6시 20분 공항 도착, 출국 수속, 면세품 수령, 게이트 도착... 모든 이동은 마치 순간 이동처럼 느껴질 정도로 정신없이 이뤄졌다.

새벽에 나올 때 좋았던 점은 해 뜨는 모습을 볼 수 있었던 것이다.



#2. 눈 잠시 감았다 떴더니 간사이 공항이었다. 입국 수속을 하기 위해 줄을 선 곳에는 수많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있었다. 길 안내를 하시는 분은 유창한 한국어로 굉장한 짜증을 내셨다. "이쪽으로 오세요! 빨리! 빨리!", "여권을 펼치고, 입국서류를 앞면으로! 이거 뒤집지 말라니까요!" 아침 9시 반부터 뭐가 그렇게 그녀를 화나게 했을까. 아직 내 순서가 오지 않아 대충 여권과 서류를 쥐고 있다 갑작스런 호령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소리칠 거 까지야.. 오사카 사람들이 다소 거칠다더니 그래서 그런가? 아침에 기분나쁜 일이 있었을까? 막연하게 이유를 추리해보았지만 그녀의 엄격한 외침은 끊이지 않았다. 기분 좋은 만남은 아니었지만 수많은 사람들을 통솔하려면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간사이 지방 여자들은 강했다. 일본 여성이라 하면 막연하게 너무나 부드럽고, 다소 소극적이며 수용적인 태도를 가진 사람들이라 내가 더 강할거라 생각해왔는데 이번 여행에서 그런 기대(지금 생각하면 말도 안되는 기대였다. 왜 만들어진 이미지를 강요했던 건지, 각자 그들의 성격, 성향이 있기 나름일텐데)는 가차없이 무너졌다. 이번 교토 여행에서 많은 여성들을 마주했다. 그들은 대체로 부드러웠지만 단단했고, 프라이드가 느껴졌다. 져주거나 받아준다는 느낌은 딱히 없었다. 주로 주인 혹은 매장 직원과 손님의 입장으로 대화를 나눴는데도 지나친 친절이나 미사여구는 느낄 수 없었다. 여행을 가기 전 읽었던 가이드북에서는 교토 사람들이 속마음을 드러내놓지 않고 다른 지역에 비해 차갑다고 했다. 하지만 짧은 일정에서 내가 느낀 간사이 지방 사람들은 그보다는 가감이 없다는 느낌이었다. 단단하고 간결했다. 일본의 다른 지역-특히 도쿄-에서 항상 과한 친절을 느꼈던 터라 처음엔 대접 받지 못하는 듯한 느낌에 섭섭했으나 돌아와 생각하니 애초에 내가 대접받을 이유란 전혀 없는 것이었다. 도대체 뭘 기대했던 건지! 다시 간사이에 간다면 그 가감없는 태도를 조금 배워보려고 시도할 것 같다. 조금은 그 동네 사람들을 이해할 수 있을 지도 모른다.


#3. 간사이 공항에서 교토역으로 가는 방법은 다양하지만 특급 하루카라는 JR 기차를 타는 것이 가장 빠른길이었다. 9시 반 도착 비행기였지만 10시 16분 기차를 타고싶어(최대한 빨리 교토로 가고싶었다.) 공항 안에서 뛰듯이 이동했다. 4년전에 왔던 공항인데 처음 온 듯 새로웠다. 그나마 인터넷으로 미리 하루카 티켓 끊는 곳을 봐온 보람이 있었다. 발빠르게 짐을 찾고, 기차표를 구입하고 출발 2분 전 기차에 올라탔다. 기차는 곧 출발했고 바다를 건너, 수많은 동네를 지나 교토로 움직였다.

이 아침은 참 정신이 없었다. 현실감도 없었다. 아마 너무 이른 새벽부터 하루가 시작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교토역에 도착해서도 여기가 어딘가 실감이 나지 않았다. 호텔로 찾아가 짐을 맡기고, 다시 교토역으로 돌아올 때 까지도 그저 여러 퀘스트 중 하나를 수행하고 있을 뿐인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버스를 타러 동쪽 출구로 나와 파란 하늘과 교토 타워를 마주했을 때,
그 때 비로소 실감이 들었다. 아 나 교토에 왔구나- 교토에 도착한 후 처음으로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4. 7시 50분 비행기를 급하게 타고, 10시 16분 기차를 급하게 타고, 100번 버스를 급하게 타느라 오후 1시가 되도록 물 한잔도 마시지를 못했다. 배고프고 힘들었지만 교토에서의 첫 끼니를 맛있는 걸 먹을거라며 허기짐을 참으며 철학의 길 근처의 "아오 오니기리"를 찾아갔다. 아침에 눈 뜬지 9시간만에 도착한 식당은 월요일이 휴일인 모양이었다. 실망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었겠지만, 다행히도 오는 길에 작고 귀여운 Brown 이라는 식당을 봐둔 터에 크게 낙담하지 않았다. 발걸음을 돌이켰다.


오른쪽엔 한국인 가족과 왼쪽엔 나이든 일본인 아저씨. 아저씨는 자연스럽게 책장에 꽂혀있던 소년 만화 잡지를 꺼내들어 식사를 하며 만화책을 봤다. 건너편엔 단골로 보이는 아주머니가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돈까스 카레를 시키고 핸드폰 배터리 충전을 부탁드리고선 일기를 썼다. 식당 안으로 스며드는 햇볕이 좋았고 곧 마주한 돈까스 카레는 따듯하고 맛있었다.

음 시작이 좋네- 혼자 여행은 처음이어서 걱정을 많이 했었지만 뭔가 즐거운 여행이 될 것 같았다.
그건 그저 첫날일 뿐이고, 날씨가 무척 좋아서였기 때문이었다. 여행은 마냥 즐겁지만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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