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이런 생각을 했던 적이 있었다. 만약 아무나 부모가 될 수 없는 세상이 있다면 어떨까? 자신이 좋은 부모가 될 수 있다는 증명을 통해서만 자식을 가질 수 있는 곳이 존재한다면, 그곳의 가족들은 모두 행복할까?
이런 생각을 하던 시기의 나는 가족에 대한 회의감이 극에 달해있었고, 엄마와의 갈등에도 진절머리가 난 상태였다. 누군가의 '딸'이기 때문에 겪어야 하는 일들에 지칠 대로 지친 나는 잠들기 전 늘 부모 자식 관계에 대해서 생각하고는 했다. 그리고 그 생각의 결론은 "아무나 부모가 되어서는 안 되지만, 사실 부모는 누구나 될 수 있다"였다.
출산이든 입양이든 자식이 생길 때, 사람들은 부모가 된다. 자신이 원했든 원하지 않았든, 자식을 얻었다는 것은 곧 아버지 혹은 어머니가 된다는 걸 뜻한다. 이 사실을 깨달았을 때 내 감상은 이러했다. '아, 부모라는 호칭이 생각보다 별거 아니구나. 내가 생각했던 것처럼 숭고하거나 성스럽지 않을 수도 있구나. 어쩌면 누군가는 이유 없이 "그냥" 부모가 됐을 수도 있겠구나. 그러니까 부모의 이름이 어떤 사람에게는 한없이 가벼울 수도 있는 거구나.'
부모에 대한 생각의 종착점에 도달하기까지 겪은 일들은 뻔하면서도 경악스러웠다. 내가 경험한 일들이 사소했냐고 묻는다면, 아니었다. 다만 일일이 나열하기엔 너무 많은 일들이 있었을 뿐이고, 그것들을 겪으며 느꼈던 마음들을 또 하나하나 설명하기에는 내가 너무 지쳐있었다. 하지만 내가 이렇게 되기까지의 맥락은 사실 평범한 것 같기도 하다.
정리하자면, 부모가 되어서는 안 되는 사람들이 자식을 낳아 가족을 만들었고, 그 자식들은 선택할 수 없었던 자신의 가족을 원망하며 자랐다. 그리고 그들은 다시 부모가 되어 가족을 만들었지만, 그 형태가 고작 20년을 조금 넘게 버티다 무너졌다. 이 흐름 속에서 생겼던 사소하지 않은 수많은 사건들이 나를 이렇게 바꿔놓았다.
'가족은 영원할 거야'라고 생각했던 아이의 행복한 상상은 죽음 앞에서 맥없이 부서졌다. 그리고 그 결과 그 아이는 무너진 울타리 너머의 세상과 너무 빨리 부딪혀야 했다는,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는 이야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