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에서 2021년으로 넘어가던 겨울, 나는 생애 첫 책을 낸다는 기대감에 매일 노트북 앞에만 앉아 있었다. 처음 프로젝트를 신청했을 때, '빨리 하고 싶어서 못 참겠다'는 감정을 느꼈다. 내 이름을 내건 책이 인쇄되어 이 세상에 존재할 수도 있다는 사실에 심장이 두근두근했다. 기대감과 두려움이 동시에 밀려오는 파동은 '처음'과 '시작'만이 가질 수 있는 특권이다. 그리고 나는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익숙한 아픔과 끝나지 않는 병에 갇혀있던 상태였다. 그런 나에게 몇 년 만에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움이 등장한 것이다. 매일 똑같은 밥을 먹고 똑같은 수업을 듣는 무의미한 일상에 갇혀있던 내가, 가끔씩 찾아오는 변화라고는 억장이 무너지는 부정적인 경험뿐이었던 내 인생이, 드디어 다시 정상 궤도 올라설 수 있다는 희망이 나를 움직이게 만들었다. '내가 쓴 책이 나온다'는 한 문장이 내게 설렘을 주었고, 원동력이 되었다.
6주 동안 매일 글을 썼다. 하루종일 글만 썼다. 내 머릿속에서 정처 없이 떠다니던 아주 작은 생각까지 끌어내서 문장으로 만들었다. 어느 날은 단어 하나를 가지고 3장이 넘는 글을 썼다. 또 다른 날은 문장 하나 쓰지 못하고 단어들만 나열하다가 밤이 되기도 했다. 그리고 내 생각을 하나도 빠짐없이 글로 옮기는 과정에서, 나는 내가 '쓰고 싶었던 것'에 대해 알게 되었다.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아서 하루종일 글을 써도 모자란 이야기. 마음에만 담아두고 어디에도 내려놓지 못했던 무거운 이야기. 그리고 오래 품어온 만큼 가장 깊이 생각하고 또 고민했던 그 이야기. 나는 내가 겪은 '가족'에 관한 이야기로 책을 쓰기로 결정했다.
내가 쓰고 싶었던 것을 알게 된 뒤로는 거침없이 글을 썼다. 당장 며칠 전의 생각을 적기도 했고, 과거의 내가 쓴 글을 읽고 나의 생각을 정돈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렇게 나는 내 마음속에 있던 '가족'에 관한 이야기를 하나의 책으로 완성하게 되었다. 최종적으로 원고를 제출하고 프로젝트가 마무리된 건 1월 중순즈음이었다. 후련함과 뿌듯함이 느껴지는 결과물이었고, 내 글에 대한 자신감도 상승하였다. 그리고 그 시기에 운이 좋게도 또 다른 프로젝트에 선발되어 한 권의 책을 더 쓰는 기회까지 얻게 되었다.
두 번째 원고를 쓰기 전, 나는 내가 쓰고 싶은 새로운 이야기를 찾아야 했다. 당시 나는 진로에 대한 고민이 있었기 때문에, 그 불안함에 대한 글을 쓰면 이번에도 역시 막힘없이 원고를 완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 예상과는 달리, 원고는 도통 진도를 나가지 못했다. 어떤 문장을 써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결정적으로, 거짓말을 하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내 이야기를 써야 하는데, 마치 소설을 쓰고 있는 것 같았다. 분명 내 생각을 옮겨 적었다고 생각했지만, 나는 내 글에서 진심을 느끼지 못했다. 결국 '이런 글로는 책을 내고 싶지 않다'는 부끄러움에 압도된 나는, 두 번째 책을 내는 걸 포기해 버렸다. 그리고 그 이후로 몇 달 동안, 단 한 문단의 글도 쓰지 못했다.
글을 쓰지 못한 건지, 아니면 쓰기 싫었던 건지, 실은 구분이 되지 않는다.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고, 그래서 글을 쓰지 않았다. 누군가 나에게 글을 써보라고 명령해도 글을 쓰지 못할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매주 쓰던 일기도, 가끔씩 생각을 정리하며 썼던 단상들도, 하다 못해 편지조차도 쓸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때 나는 '더 이상 글을 쓸 수 없는 걸까'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숨쉬기 힘들 정도로 분노를 쏟아내던 날에도, 눈이 짓무를 때까지 우는 바람에 화면이 잘 보이지 않았던 날에도, 살아가는 게 무서워 죽어 있는 것을 택하고 싶었던 날에도, 나는 글을 썼다. 나에게 글은 습관이자 본능이었다. 그런데 순식간에 글을 쓸 수 없는 사람이 되어버린 것이다.
어쩌면 내가 글을 쓰지 못하게 된 건, 더 이상 내가 버틸 수 없다는 신호였을지도 모른다. 의식과 이성으로 견디다 못해 무의식적으로 숨쉬기만 했던 날에도 글을 쓴 사람이 한 문장도 완성할 수 없을 만큼 머릿속이 비어버린 건, 아마 내 무의식이 보내는 경고였을 것이다. 내 몸과 마음이 버틸 수 있는 한계는 지난 지 오래라고, 이제 남아있는 건 턱 끝까지 차올라 위태롭게 출렁이던 홍수를 간신히 막고 있던 둑이 무너져 내리는 것뿐이라고, 내가 나에게 알려주려던 건 아니었을까 싶다. 그리고 수 년동안 내 마음속에서 흘러내려간 적 없이 고이고 차오르기만 했던 물이 나를 덮칠 때, 무의식조차 멈춰버린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그 홍수에 휩쓸리는 게 전부라고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하지만 나는 그 신호를 인지하지 못했다. 그리고 글을 쓰지 못한 지 3개월째가 되던 날, 그제야 나는 내가 아예 멈춰버렸다는 걸 깨달았다.
내 몸이 내 뜻대로 움직이질 않고, 내 마음이 제멋대로 여기저기 쑤셔대는 바람에 나는 학교도, 진로도, 인간관계도 포기한 채 숨 쉬는 것조차 버거워졌다. 인생의 가장 힘든 순간은 이미 이겨냈다고 생각했는데, 이보다 더 혼란스럽고 정신없던 날도 견뎌냈는데, 이제 와서 변덕을 부리는 내 마음을 나도 이해하지 못했다. 무엇보다도 인생의 밑바닥에서도 글을 썼는데 왜 갑자기 글을 쓸 수 없게 된 것인지 알고 싶었다. 글을 쓰지 못헀던 이유는, 의외의 계기로 깨달았다. 나의 첫 번째 책을 읽은 친구가 보내준 장문의 편지 덕분이었다.
"서정주 ‘자화상’ 첫머리가 ‘애비는 종이었다’인데, 되게 강렬하지? 나 국문과에서 시 수업 들을 때 교수님께서 가장 강렬한 첫마디로 꼽으셨어. 자신의 모든 걸 시에 ‘걸어’버린 큰 용기가 없으면 절대 나올 수 없는 시라고 한참 동안 강의 들었던 기억이 나네. 언니 글 읽으면서 이 시가 제일 먼저 생각나더라. 이 에세이를 쓰며 언니가 언니의 상처들을 온전히 글에 ‘걸’기까지, 솔직하고 무던하게 털어놓기까지, 얼마나 열심히 단단해져 왔는지 보이는 것 같아서 정말 멋있다, 생각이 정말 깊고 역시 존경할 만한 언니구나, 다시 한번 느꼈던 것 같아. 언니, 내가 감히, 고생했다고, 정말 너무 고생했다고 말해줘도 될까."
내가 책을 낸 뒤로 글을 쓸 수 없었던 건, 내가 그 책에 나의 전부를 걸었기 때문이었다. 열여덟부터 겪었던 쌓아온 서러움, 분노, 실망, 두려움, 외로움, 그 사이 희미하게나마 빛나고 있던 희망과 열정, 그리고 그로 인해 형성된 새로운 가치관들까지. 나는 내 속에 남아있던 모든 것을 탈탈 털어서 첫 번째 책을 낸 것이었다. 그리고 그로 인해 고여있던 이야기들과 위태롭게 찰랑이던 물결의 균형이 깨져버린 것이었다. 둑의 반대편에 차곡차곡 쌓여있던 감정과 이야기가 세상 밖으로 떠나면서 생긴 여백은 결국 둑을 무너뜨리는 결정적인 원인이 되어, 나는 결국 내가 외면해 왔던 찌꺼기들의 쓰나미에 잠겨버린 것이었다.
내 안의 홍수는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5년이나 방치한 업보로 생긴 재해이기에, 내 마음이 제대로 복구되는 데 그보다 더 긴 시간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무시무시한 속도로 차오르는 수위에 지레 겁먹은 나는 허둥지둥 도망치다가 물에 잠겨 숨이 잠깐 멈추기도 했다. 공기가 아닌 물을 들이키는 순간들이 끝나질 않아서, 대체 어디를 가야 숨을 쉴 수 있을까 물속에서 눈물을 흘리며 허우적대던 날도 있었다. 나는 내 몸을 쉬지 않고 움직여야만 살 수 있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내 마음의 경고를 무시하고 끊임없이 나를 혹사했다. 그리고 종국에는 물에 잠긴 채 호흡하지 못하고, 잠시 심장이 멈춰버리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지금 다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수면 위로 올라올 수 있는 방법은 별거 없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내가 떠오르길 기다리는 것. 내 숨통을 옥죈다고 생각했던 홍수가 사실은 나를 수면 위로 밀어 올려주는 물결이었다는 사실을, 나는 내 마음이 잠시 죽고 나서야 깨달았다. 숨 쉬지 못하고 죽어버린 내 마음이 아무런 저항 없이 물에게 자신을 맡겼을 때, 나는 비로소 고개를 들고 공기를 들이킬 수 있었다.
어쩌면 내가 너무 늦게 내 마음을 보살피려는 걸지도 모른다. 마음이 죽고 나서야 자신을 돌아본다니, 늦어도 너무 늦었다고 꾸지람을 들어도 할 말이 없다. 그래도 내 마음은, 내 무의식은 끝내 숨 쉬는 방법을 찾아냈다. 앞으로 나는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고 내 마음을 가득 채운 물결에 몸을 맡길 생각이다. 무너져 내린 둑의 잔재와 함께 수면 위를 부유하면서, 내 마음 구석구석을 돌아보는 유람선을 탄 기분으로 시간을 보낼 것이다. 그러다 보면 언젠가는 내 안의 물이 전부 사라지고 내 두 발로 땅에 발을 딛는 날이 올 것이다. 그리고 그날을 시작으로, 나는 다시 움직이면 된다. 이따금씩 차오르는 감정들을 글로 털어내고, 새로운 사건이 내 안에서 글로 바뀌기를 기다리고, 또 다른 홍수가 오지 않도록 늘 내 안을 살펴보면서 살아가면 된다. 그렇게 살다 보면 나는 앞으로 멈추지 않고 글을 쓸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내 의식과 무의식, 본능이 전부 숨을 다 할 때까지 멈추지 않고 글을 쓰고 싶다. 다시는 내가 글쓰기를 멈추는 날이 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해 보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