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은 생각으로 남는 것이 가장 나을지도 모른다.
내 안에 있는 감정들을 입 밖으로 꺼내는 데는 많은 문장들이 필요하다. 특히, 나와는 다른 경험을 가진 타인에게 내 감정을 이해시키고자 한다면, 훨씬 더 길고 자세한 설명이 필요할 것이다. 그런데 감정이 언어로 전환되는 이 과정에서, 감정은 과장되고 왜곡된다. 누군가에게 내가 느끼는 감정을 묘사하기 위해서 우리는 여러 가지 방법을 쓴다. 그 사람으로부터 같은 감정을 느꼈던 과거의 경험에 빗대기도 하고, 상대를 자신의 상황에 대입함으로써 자신의 입장에 공감하도록 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좋아하는 사람이 생겨 느끼는 설렘을 친구에게 설명하기 위해서는, 일단 내가 그 사람을 좋아하게 된 계기부터 설명해야 할 것이다. 설렜던 여러 경험들을 나열하고,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사랑스러운 부분들을 긴 문장들로 자세히 묘사할 것이다. 이후 자신의 눈앞에 보이는 설렘은, 문장의 길이만큼이나 많은 단어들로 둘러싸여 훨씬 크고 단단해져 있을 것이다. 어떤 감정이든 그것을 글이나 말로 묘사하는 과정에서, 감정은 점점 덩치가 커지고, 오랜 시간이 지나도록 곱씹을 수 있는 기록으로 남는다.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나는 당신에게 그렇게 화나진 않았지만, 꽤나 서운했던 것 같다. 당신에게 나의 서운함을 이해시키고 싶었고, 그러기 위해서 참 많은 단어들을 사용했다. 그리고 때로는 실수로 조금은 지나친 표현을 구사하기도 했다. 말 그대로, 내 말이 내 마음을 지나친 것이었다. 당신 역시 내가 당신의 마음에 공감하길 바랐고, 하나의 감정에 참 많은 말을 덧붙였고, 그래서 나는 당신이 나를 너무나도 미워한다고 받아들였다. 그러나 당신은 내가 느꼈던 것만큼 날 미워하지 않았다. 그저 당신은 나를 사랑했지만 그 감정은 마음속에만 남아있었기에, 상대적으로 훨씬 작아 보였던 것이었다. 나도, 당신도, 좋은 것들은 마음에 남겨두고 나쁜 것들은 입으로 내뱉는 바람에, 우리의 인생에는 늘 나쁜 것들만 가득하다고 착각했다. 만약 우리가 서운함이나 실망감이 아닌 감사함, 애틋함을 표현하려고 노력했다면, 서로에게 지금처럼 상처 주지는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그래서 나는 내 안에 있는 이 감정을 그대로 당신에게 전달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했다. 부정적인 감정도, 긍정적인 감정도 마음에만 담아두자니, 서로를 오해하기 쉬워졌기 때문이다. 결국 내게 필요한 건 이 마음을 그것의 크기만큼만, 깊이만큼만 보여주는 방법이었다. 돌이켜보면, 내 말이 마음을 지나쳤던 순간들은 대부분 꾹꾹 눌러왔던 여러 가지 감정들을 한꺼번에 폭발시키던 날에서 발생했다. 왜, 토하고 나면 목구멍이 따끔따끔 불이 난 것같이 느껴질 때가 있지 않은가. 내가 당신에게 실수로 상처를 준 날들도 비슷했다. 내 안에서 소화시키지 못한 응어리들을 당신에게 한바탕 쏟아내고 나면, 늘 목구멍이 타들어가는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앞으로 나의 감정들을 내가 제대로 인지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하려고 한다. 누군가에게 이것을 이해시키고 공감을 얻으려고 하기 전에, 그것이 어떤 모양을 하고 있는지 자세히 관찰하고, 얼마나 큰지 팔을 벌려 가능해보고, 혹시 껍데기 안에 다른 무언가가 있지는 않은지 여기저기 두들겨볼 것이다. 이는 곧 내 감정을 제대로 소화시킨다는 걸 뜻한다. 혹여나 제대로 소화되지 않은 감정들이 어딘가에 고여 썩어버리지 않도록, 내가 그것을 당신에게 토해내지 않도록,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그것을 살펴볼 것이다. 그러다 보면, 언젠가 나는 당신에게 내가 서운했던 만큼만, 또는 사랑했던 만큼의 감정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 내 마음을 딱 내 마음만큼만 말하고 쓸 수 있는 날이 찾아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