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erena Jul 12. 2019

9. 이루어지지 않은 꿈의 의미

파리에는 라라랜드 재즈바가 있다. 다들 그렇게 부른다. 원래의 이름인 Le Caveau de la Huchette라고 부르는 사람은 드문 듯하다. 사실 원래 이름이야 라라 랜드 때문에 저곳에 가는 사람들에게는 별 상관없는 일인 것이다. 한 가지 상관있는 것이 있다면 실제로 영화에 이 재즈바가 나온 건 1초도 안 되는 시간, 그것도 간판뿐이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이 곳은 '라라랜드'의 재즈바이기 이전에 그냥 '파리'의 재즈바이다. 라라랜드에서 나왔던 재즈나 재즈바들이 그렇듯이 화려하지도, 세련되지도, 연주가 대단하지도, 로맨스가 있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라라랜드에서 나왔던 파리가 상징하듯이 이 곳에는 열정이 있다. 


나에게 라라랜드는 여자 주인공 미아가 오디션을 보는 장면으로 강렬하게 기억된다. 미아는 배우를 꿈꾸지만 오디션에서는 계속 떨어지고, 거의 모든 것을 다해 준비한 일인극마저 처참하게 실패한다. "재능은 없는데 열정만 가득한 사람들 있잖아. 나도 그런 사람 중 하나였나 봐." 미아는 현실과는 다르게 영화 속 주인공이므로 역시 그녀에게는 새로운 오디션 기회가 주어지게 된다. 그것도 처참하게 실패한 일인극에서 그녀를 눈여겨본 관계자의 오퍼로. 오디션장에 들어가는 그 부분부터 대부분의 관객은 예측하게 된다. 이 오디션을 통과하고 마침내 배우가 되겠구나. 역시 영화는 영화야 하며. 하지만 미아가 오디션에서 부르는 노래의 가사는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을 것이다. 


저희 이모는 파리에 살았었어요. 집에 오면 해외에서 살던 얘기를 해줬어요.

한 번은 강에 뛰어들었던 얘기를 해줬던 게 생각나요. 그것도 맨발로.

한 번 웃고, 뒤도 안 돌아보고 뛰어 올라서, 세느 강에 풍덩 빠졌다고.

강물은 얼음처럼 차가웠고 한 달 내내 재채기에 시달렸댔죠.

하지만 다시 할 수 있다고 했어요.


이모는 말했죠. 약간 미쳐보는 것이 중요해. 새로운 색으로 볼 수 있게 하거든.

그게 어디로 데려가 줄 지 누가 알겠어? 그게 바로 우리 같은 사람이 필요한 이유야.


이모는 그때의 느낌과, 끝없던 하늘의 노을을 하나의 장면으로 새겨두었죠.

이모는 술에 찌들어서 시든 채로 죽었지만 전 항상 이모의 불타던 열정을 생각해요.


저는 그 모든 것들을 떠올려요.

이모와, 눈, 웃으면서 뛰어들었던 세느 강.

다시 돌아간대도 그렇게 할 거라고 했죠.


이 노래의 제목은 Audition이고 부제는 The Fools Who Dream, 꿈꾸는 바보들이다. 미아의 이모 이야기는 이 오디션 장면 전부터 영화에서 몇 번 짧게 등장한다. 미아가 연기를 꿈꾸게 만든 사람으로. 그런데 술에 찌들어서 죽어버리다니. 그 한 줄의 문장에서 순식간에 이모의 인생이 머릿속에 그려지고 만다. 연기가 하고 싶어 파리에 갔고 열정에 불타올랐지만 결국 성공하지 못하고 알코올 중독자로 마감하고 만 예술가의 인생이. 그 상상이 시작된 순간부터 영화관에서 나는 울기 시작했던 것 같다. 


결국 이루어지지 않은 것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 자주 생각하던 것이다. 보답받지 않은 노력은 어디로 사라지는 걸까. 얼마나 더 불안해해야 명확한 결과가 내 앞에 손 뻗으면 닿을 만큼 가까이 올까. 라라랜드 재즈바에 가는 길에 있는 세느강을 보고 나는 또 생각했다.

가게 이름에 들어가는 Caveau 단어의 뜻에서 알 수 있듯 내부의 분위기는 지하실과 닮아있다. 실제 재즈 공연도 가게 지하에서 진행된다. 나에게 지하실은 항상 다른 세계의 공간 같았다. 반드시 계단을 밟고 내려가야 하는 그 시작이 항상 두근거렸다. 올라가는 것과는 다르게 항상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는 그 발걸음부터 낯설었다. 뛸 수도, 척척 내딛을 수도 없는 동작에서 시작되는 지하실의 풍경은 그래서 항상 새로운 시작과 닮아있다고 생각했다.  

인생에서 처음 가 본 재즈바의 광경은 내가 만난 지하들이 모두 그러했듯 역시 다른 세계에 온 것 같은 느낌을 주었다. 다들 열정적으로 춤을 추고 있는데 이상하게도 시간은 위에서보다 느리게 흘러가는 듯했다. 자리를 잡지 못해 두리번거리다 밴드가 공연하는 무대 바로 앞의 빈자리를 보고 그곳에 가서 앉았다. 지하실의 풍경이 한눈에 들어오는 자리였다. 대신 보컬의 목소리와 기타, 드럼, 피아노, 콘트라베이스의 소리는 잘 섞이지 않고 귀에 들어왔다. 어차피 조화롭게 섞여서 들어왔어도 재즈를 모르는 내 귀에는 매일 듣는 불어와 마찬가지로 생경했을 것이다. 

춤을 추는 사람들을 보며 영화 속에 들어와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다면 동양인 여자 2쯤 되는 배역이겠지. 음악이 멈추자 춤을 추던 사람들이 모두 자리에 들어가 장소는 텅 비게 되었다. 멍하니 있던 그때에 갑자기 누군가 내 손을 잡고 나를 일으켰다. 아까부터 열심히 춤을 추고 있던 한 할아버지였다. 내가 웃으며 손사래를 치자 앉아있던 사람들이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그 호응에 도저히 계속 가만히 버티고 있을 수가 없었다. 춤이라고는 춰 본 적 없는데 이게 무슨 망신이야,라고 생각하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많은 사람들이 춤을 추던 아까와는 다르게 이제는 나와 할아버지 둘 뿐이었다. 갑자기 음악이 시작되었다. 

단지 할아버지가 이끄는 대로 빙글빙글 돌고 발을 내디뎠다. 때로는 반대로 돌고 헛발 걸음질을 하기도 했다. 창피하지 않은 건 아니었지만 생각보다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까는 섞이지 않던 악기 소리들이 조화롭게 섞여 들려오고 사람들의 박수소리와 환호소리가 아득하게 들려왔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이 모든 풍경을 낯설어하던 엑스트라에서 갑자기 주인공이 된 기분이었다. 한 순간에 사람의 세계가 이렇게 바뀔 수가 있는 건가, 생각하면서 연주의 끝과 함께 할아버지에게 깊이 고개 숙이며 Merci beaucoup, 감사합니다 라고 인사했다.


한 순간에 나의 세계를 바꾸어주었던 할아버지는 조용히 자리로 돌아가 숨을 고르고 있었다. 내가 등장하기 전까지 주인공들이던 나이가 지긋하던 춤추는 주요 배역들과 재즈 밴드 멤버들을 보면서 갑자기 저들의 지나갔던 꿈이 생각났다. 만일 세바스찬이 재즈바를 차리지 못하고 유명한 밴드의 멤버조차 되지 못했다면 이런 곳에서 저렇게 연주를 하고 있을까? 미아가 끝내 배우가 되는 데 실패하고 그냥 늙어갔다면 언젠가 한 번은 이모의 꿈이었던 파리에 와서 저렇게 춤을 추고 있지는 않을까? 그럼 꿈이 이루어지지 않은 그들의 삶은 정말 불행만으로 정의되는 걸까? 내가 새로 마주한 지하실의 세계에서 문득 처음으로 그런 것만은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 살아가면서 수 없이 소망할 꿈들과 그 수만큼, 혹은 운이 좋으면 그 수보다 훨씬 적은 수로 이루어지지 않을 꿈들에도 의미는 있는 것이다. 배우로서는 실패한 이모의 인생에도 눈 내리던 세느 강의 끝없던 노을이 새겨져 있었던 것처럼. 웃으며 망설임도 없이 세느강에 뛰어들었던 그 순간이 존재했다는 사실이 조카에게 이어져 새로운 꿈의 원동력이 되어줬던 것처럼. 바보같이 꿈꾸는 모든 사람들이 새로운 색으로 칠할 수 있는 세상으로서, 다른 꿈 꾸는 사람들을 모르는 곳으로 데려가 줄 수 있는 그 원동력으로서 영원히 그 힘을 다할 것이다. 그건 손 뻗으면 바로 잡힐 만큼 명확하지는 않아도 절대 희미하지는 않다는 걸 믿어야 한다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다시 마주친 세느 강은 노을의 색 만큼 아니어도 가로등의 주황색 불빛들로 가득 차서 그렇게 차가워보이지만은 않았다.

매거진의 이전글 8. 남겨두는 것과 남겨지는 것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