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보호자
"Hello, I have an appointment for Cherry."
오늘은 소아과 검진을 갔다. 어제의 실수를 교훈 삼아 오늘은 시간을 넉넉하게 출발해 늦지 않았다. 어제는 아기를 낳은 종합병원으로 가서 나와 아기를 모두 진찰했는데 오늘은 온전히 아기만을 위한 동네 소아과에 왔다. 처음으로 환자가 아닌 보호자가 되어 병원에 접수를 했다. 접수를 하고 인적사항 및 의료 사항 관련 질문지도 작성했다. 유모차에서 자고 있는 아기를 옆에 두고 나와 남편이 열심히 작성을 했다.
소아과를 온 지가 너무 오래돼서 그런지 대기실의 풍경이 꽤나 낯설었다. 곳곳에 아이들용 의자가 있고 장난감도 많이 있고 벽에는 알록달록한 그림들이 그려져 있었다. 우리 차례를 기다리는 동안 다른 아이들도 보았다. 다들 나이도 성별도 다르지만 이제 다 내 아이처럼 느껴지고 바라만 봐도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동시에 우리 아이는 언제 저렇게 커서 뛰어놀까 하는 생각도 한다.
언젠가 부모님이 나이 들어가는 모습을 보며 곧 내가 부모님의 보호자가 되는 날이 올 거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그런데 이제 부모님이나 남편 말고도 내가 보호해주어야 하는 존재가 생겼다. 심지어 내가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 원래 아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아이를 낳으면 자기 새끼는 예쁘다더니, 그 말이 아주 딱 맞다. 게다가 나는 이제 세상에 모든 아이들이 예쁘고 귀엽다.
아기를 낳고 느낀 점이 하나 있다면 세상에 당연한 건 없다는 것이다. 처음 아기가 생겼다는 걸 알았을 때부터 지금까지 아기가 건강하기만 하다면 더 바랄 게 없다고 생각한다. 초음파 검사를 할 때, 아기가 처음 태어났을 때, 병원에 갈 때마다 매번, 혹시 어디 아프지는 않은지, 내가 더 해줄 수 있는 건 없는지 노심초사한다. 아이가 우리에게 와준 것도, 아픈 곳 없이 건강하게 태어나 준 것도, 뭐 하나 당연한 것 없이 너무 감사한 일이다.
오늘도 모유수유전문가를 만났고 오늘 만난 이 선생님은 아기가 젖을 잘 물도록 도와줬는데 어김없이 체리가 잠이 들어버렸다. 그래도 자세는 배웠다고 생각하기도 잠시, 역시 집에 와서 해보니 다시 제대로 못 먹는 체리. 하는 수 없이 다시 젖병을 꺼내오고 유축한 모유를 데운다. 그래도 잘 먹어주기만 하면 아무 걱정이 없다. 아직도 몸무게가 빠지기만 해서 걱정이다. 체리가 다 먹었다고 젖병을 치워도 조금이라도 더 먹었으면 하고 젖병을 다시 갖다 대 본다. 먹고 자고 싸기만 잘해도 이렇게 예쁠 수가 없다.
갑자기 무서운 생각도 든다. 이렇게 소중한 존재가 생겨서 어떡하지. 전에는 나의 행복이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했다면 이제는 이 아이의 행복을 먼저 생각하게 된다. 훌륭한 사람으로 키우기보다 행복하고 건강한 아이로 키우고 싶은데 어쩌면 그게 의사, 변호사가 되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일 것 같다. 나는 나대로 갑자기 돈도 엄청 많이 벌고 싶고 공부도 더 많이 하고 싶고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 앞으로 수년간은 정답이 없는 여정에 힘들겠지만 아이가 주는 행복이 그보다 더 크기를 바란다.
두렵긴 해도 후회하지는 않는다. 소중한 나의 아기, 체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