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한과 명확한 규칙이 전제!
몇 해 전, 늦가을의 어느 날이었다. 단풍이 절정이라는 소식에, 오랜만에 세 식구가 공원 나들이를 나섰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단풍보다 더 걱정된 건 ‘심심할까 봐’였다.
아이가 산책로를 걷다가 “언제 끝나?”를 연발하면 부모로서의 낭만은 낙엽처럼 우수수 떨어지니까.
그래서 우리는 작은 작전을 짰다.
색종이와 펜을 챙겨 ‘가을 숲속 보물찾기’를 하기로 한 것이다.
규칙은 간단했다.
각자 다른 색의 색종이를 잘라 받고 싶은, 혹은 주고 싶은 선물을 적는다. 그리고 낯선 숲 어딘가에 몰래 숨긴다. 단, 자기 색은 찾을 수 없다. 찾는 재미와 주는 기쁨, 받는 설렘을 다 갖고 가자는 작전이었다.
그런데 처음부터 일이 뜻대로 풀릴 리가...
아이는 무려 "아이폰", "로블록스 현질", "꽝"을 반복적으로 쓰더니
아예 찾을 수 없는 곳에 색종이를 숨기기 시작했다.
...
결국 운영위원회 소집해서 룰을 다시 정했다.
여기부터 여기까지만 숨기기.
눈높이 아래만 가능.
선물은 5천 원 이하로 실현 가능한 것.
자기 색종이를 못 찾으면 벌칙 있음.
룰이 정해지자 아이는 눈을 반짝이며 단풍잎 아래, 바위 틈, 나뭇가지 사이 등
예상치 못한 곳에 종이를 숨기기 시작했다.
상상력의 무한 확장. 그 순간부터 나도 진심으로 몰입했다.
심지어 내 숨긴 색종이를 내가 다시 찾고 싶어질 정도였다.
그날의 숲속 놀이는, 뜻밖의 통찰을 남겼다.
"창의력은 자유에서 시작되지만, 제한과 명확한 규칙 속에서 꽃핀다."
불현듯 일해서도 그랬던 것 같다. 보통 새로운 간편식을 만들어내야하는 개발자로서 창의성은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그런데 막연하게 “아이디어 내보세요” 하면, 대체 뭘 어떻게 어디까지 생각하라는 건지.
그 지시의 의중을 읽느라 머릿속은 에러 상태가 된다. 물론 그렇게 결과물을 가져가면 처음부터 다시 조사해야하는 경우도 발생 한다.
하지만 타깃이 분명하고, 조건이 구체적이면 아이디어는 방향과 힘을 얻는다. 그리고 그런 아이디어일수록 소비자에게도 선택받는다.
그래서 그 이후부터는
팀원에게 업무를 요청할 때 ‘목적’과 ‘방향’, ‘범위’를 분명히 말하려고 노력한다.
“이걸 왜 하는지”, “누구를 위한 건지”, “어디까지 가능한지”.
내 말이 잘 전해졌는지도 꼭 확인한다.
창의력은 '공기처럼’ 있는 게 아니라, ‘숨 쉴 틈’에서 피어나는 것이니까.
아이와의 소소한 이벤트가 내 업무 방식까지 더 또렷하게 해주었다.
일상에서 일의 통찰력을 얻는다는 건
그래서 꽤 괜찮은,
아주 창의적인 선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