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정리]해야하는 것/하고 싶은 것

인생은 나를 찾는 여정

by 엘사 B

결혼 10년 차.
남편은 김치찌개를 좋아하고, 나는 그가 좋아하는 김치찌개를 참 많이도 끓였다. 그러다 보니 우리집의 김치찌개는 나름 ‘정통’이 됐다. 뭘 더 넣어야 감칠맛이 도는지, 어느 정도로 졸여야 밥을 부르는지, 이제는 눈감고도 할 수 있다. 그런데 얼마 전, 정말 오랜만에 된장찌개를 끓이게 됐다. 뚝배기에 호박과 두부를 넣고 국물 간을 보다 말고 멈칫했다.

‘이 맛이 맞나? 뭘 더 넣어야 하지?’
그 순간,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맞아, 나 원래 된장찌개 좋아했었지!’

김치찌개만 끓이던 손끝에서, 오랜만에 된장향이 올라올 때 나는 내가 좋아하던 것을 떠올렸다.

그리고 동시에, 내가 얼마나 오랫동안 ‘내가 좋아하는 것’을 잊고 살았는지를 깨달았다.


아이스크림 가게에 가도, 나는 내가 고르고 싶은 맛을 고르지 않았던 것 같다.
먼저 아이가 좋아하는 맛을 하나, 남편이 좋아하는 맛을 하나 고른 후에 마지막에 남는 자리에 내 취향을 끼워 넣었다. ‘아님 말고’라는 말처럼, 내 선택은 늘 마지막이었다.

회사 점심 메뉴를 정할 때도 그랬다. 내가 뭘 먹고 싶은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래서 늘 호불호 없는 백반집, 무난한 선택으로 향했고 의견을 내는 것도, 취향을 드러내는 것도 점점 어려워졌다.

그런 습관은 일로도 이어졌다.
팀에 잘 어울리기 위해, 결정권자의 의견을 존중하기 위해, 입을 닫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어른스러운 태도라고 믿었다.
그리고 그럴수록 나는 조금씩, 조용히 시들어갔다.


퇴사를 하고 나서야 처음으로 시간이 ‘텅’ 하고 주어졌다.
그리고 그 빈칸 앞에서 막막했다.
‘이제 뭐 하지? 나는 뭘 하고 싶은 사람이지?’

나는 하고 싶은 일들을 꽤 많이 해온 줄 알았는데 돌이켜보면 늘 해야 하는 일의 틈새에서 겨우 밀어 넣은 것들이었다.
뮤지컬 동호회, 운동, 독서모임, 글쓰기…
하지만 그것들을 하기 위해 치러야 했던 대가는 생각보다 컸고, 결국 나의 욕구는 ‘여유가 있으면 하자’며 미루게 되었다.

요즘 나는
드라마를 밤새 보기도 하고,
멍하니 시간을 흘려보내기도 하고,
폰게임을 하며 아무 생각 없이 웃기도 한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찾으려고 애쓰기보다는 그냥 하고 싶은 걸 ‘허락’하는 쪽으로 조금씩 바꾸고 있다.

앞으로의 시간은 조금 더 나의 생각, 나의 취향, 나의 감각으로 채워보려 한다.
처음부터 잘 채우진 못하겠지만 나는 요거트랑 녹차 맛을 좋아해 라는 아주 사소한 사실부터
다시 시작해보려 한다.


"인생은 나를 찾아가는 여정"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삶을 원하는지 알려면 수많은 경험을 스스로에게 시켜줘야 한다는 걸..

런던베이글뮤지엄의 료님이 말했다.


그래서 이제는 ‘해야 하는 일’보다 ‘하고 싶은 일’에 조금 더 집중해보려 한다.

그건 욕심이 아니라, 회복이다.
하고 싶은 걸 찾아가는 건, 내가 나로 살아가기 위한 첫 걸음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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