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불구하고 굴복하지 않을 마음이 있나요?
[내용 스포일러 포함되었습니다.]
어제 넷플릭스 드라마 [캐셔로]를 봤다. 넉넉지 않은 살림의 7급 공무원 주인공 상웅이가 아빠로부터 초능력을 물려받는다는 설정인데, 이게 참 웃프다. 그 무적의 파워가 오직 ‘돈’이 있어야 발휘되기 때문이다. 돈이 없으면 불의를 보고도 지나쳐야 하고, 그러면 몸엔 두드러기가 난다. 여자친구 민숙이와 아파트 청약을 위해 십 원 한 장 아껴야 하는 상웅이에게, 초능력은 축복이라기보다 차라리 '부담'에 가깝다.
남을 위해 일하라고 하지만, 내 돈 써가면서 5만원귄쥐고 싸우는데 우수수 떨어지는 동전들은 정말 생계형 영웅 그 잡채다. 배트맨, 아이언맨은 무적의 억만장자인데, 우리 캐셔로는 그토록 짠내가 난다는 것인가.....
반면에 돈이 무궁무진한 부자에게는 상웅의 초능력은 무조건 가져야 하는 절대적인 것.
참 사람에게 만족이란 것은 없는 법이다.
드라마 속 상웅 커플의 궁색한 연기를 보며 자꾸 내 모습이 겹쳐 보였다. 나 역시 어린 시절, 아주 가난하진 않았지만 늘 돈 때문에 소란스러운 집안에서 자랐다. 아빠가 주시는 생활비는 늘 엄마에겐 부족했다. 우리 삼 남매는 부모님이 돈 때문에 싸우는 소리를 들으며 컸다.
그래서였을까. 나에게 돈은 모든 의사결정의 1순위였다. 대학 시절엔 친구들과 10원 단위까지 더치페이를 할 만큼 철저했고, 단돈 선의로 집은 귤 몇 천원에 고민하던 기억들. 서운하고 억울하면서도, 어른이 되어서도 돈 앞에 벌벌 떠는 나를 발견할 때면 참 씁쓸했다. ‘내 돈은 내가 벌어야 한다’는 강박에 힘들어도 맞벌이를 당연하게 여겼고, 유복하게 자라 돈보다 귀찮은 걸 싫어하는 남편의 씀씀이를 볼 때면 속이 뒤집히기도 했다.
하지만 드라마의 끝자락에서 상웅이는 말한다.
불의를 보고 움직이는 힘은 돈이 아니라 ‘마음’이었다고.
돈이 없어 고전하는 주인공을 향해 아파트 주민들이 힘내라며 돈을 던져주는 장면에서, 돈은 더 이상 주인공이 아니었다. 그건 그저 마음을 전달하는 수단일 뿐이었다. 똑 부러지는 여자친구 민숙이도 인상적이었다. 대부업 회장의 의중을 꿰뚫고, 남친을 돕기 위해 3천만 원 결재를 올리는 그 담대함. 돈은 부족하지만 돈의 역할을 정확히 알고 그걸 이용했다. 허례허식보다 서로에 대한 신뢰로 9년의 세월을 버틴 두 사람의 관계를 보며 나를 돌아보게 됐다.
그래도 내 커리어에 있어서는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선택하며 살고 싶었다. 돈의 노예가 되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가치 있는 일들을 쫓았지만, 역설적이게도 나는 매 순간 돈 앞에 무릎을 꿇어야 했다. 아무리 의미 있는 선택을 하려 해도 결국 마지막엔 통장 잔고를 확인해야 했고, 허례허식을 부정하면서도 마음 한편으론 남들이 가진 여유를 지독하게 부러워했다. 돈을 무시하고 싶었지만, 사실은 그 누구보다 돈을 무서워하고 있었던 내 안의 모순.
드라마 속 상웅이가 초능력을 쓰기 위해 돈을 아까워하며 괴로워하는 모습은, 바로 그런 나의 굴복과 갈등을 그대로 비추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상웅이가 마지막에 휘두른 무기가 '돈'이 아닌 '마음'이었던 것처럼, 내 삶을 지탱하는 진짜 초능력 또한 통장 잔고가 아닌 내가 지키고 싶은 사람들에게서 나온다는 것을.
돈에 무릎 꿇지 않아도 되는 단 하나의 방법은, 돈보다 더 귀한 것을 가슴에 품는 일일지도 모른다.
나는 오늘, 나를 무릎 꿇게 했던 그 돈을 기꺼이 꺼내어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마음을 표현해 보려 한다. 그것이 내가 가진 가장 인간적인 초능력일 테니까.
오늘 당신이 돈보다 먼저 꺼내어 쓰고 싶은 '마음'은 무엇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