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듦과 진정성 사이에서 흔들리는 마음에게
드라마 자백의 대가를 보다가 결국 해가 뜨기 직전에서야 눈을 붙였다.
지금도 눈이 따끔한데, 이상하게 마음은 더 오래 아리다.
드라마 속 주인공은 화려하게 웃고 다니지만 어쩐지 허술해 보이는 사람.
순수해서 누구에게나 마음을 열고, 그래서 누구에게나 이용당하기 쉬운 사람.
그런데 그 순수함이 알고 보면 사람들의 심장을 건드리는 가장 강력한 힘이라는 걸 끝내 보여주는 사람.
보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 저거… 나 이야기 아닌가?”
나는 꽤 순수한 편이다.
어릴 때는 그게 칭찬이었지만, 나이 들고 나서는 “그런 건 좀 조심해야지”라는 충고로 바뀌었다.
순수함이 ‘아름다움’에서 ‘위험성’으로 변하는 나이.
그 나이의 문턱에서 나는 요즘 자주 멈칫한다.
나는 사실 순수함을 버리고 싶은 적이 있었다.
누군가의 계산 앞에서 상처받을 때면,
“나도 좀 날카로워져야 하는 거 아닌가?”
이런 마음이 툭 튀어나왔다.
그런데 너도 알잖아.
우리가 그걸 버리면 ‘편해지는’ 게 아니라
그냥 나 자체가 흐려진다는 걸.
순수함은 어리숙함의 표지가 아니라,
끝까지 남아주는 ‘심지’ 같은 거다.
쉽게 타지 않고, 쉽게 꺼지지 않는 나만의 중심선.
문제는 순수함이 아니라 순진함이다.
순수함은 본질이고 힘이지만,
순진함은 아무 보호 없이 내어주는 상태니까.
우리가 나이 들며 배워야 하는 건 순수함을 버리는 법이 아니라 순수함을 보호하는 법이다.
사람을 좋아하되, 너무 빨리 마음을 주지 않기
급하게 다가오는 사람은 한 박자 쉬었다 보기
마음이 불편하면 이유를 따져보고, “아니요”라고 말하는 연습하기
내 에너지부터 챙기고 남에게 무언가를 건네기
이건 차갑게 변하겠다는 선언이 아니라 끝까지 따뜻하게 남기 위한 준비다.
순수함을 지키려면, 그만큼의 경계가 필요하다.
드라마 속 주인공처럼
나의 순수함과 진정성이 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였으면 좋겠다.
하지만 그 순수함이 아무에게나 흩어지지 않고
흙 속에서 단단히 자리 잡은 뿌리처럼
지혜라는 흙을 품고 있었으면 좋겠다.
앞으로는 순수하지만 지혜로운 어른이 되고 싶다.
맑지만 허술하지 않고,
부드럽지만 쉽게 휘둘리지 않는 사람.
순수함을 잃지 않고 순진함을 벗어내고
어른스러움을 더해가는 사람.
그런 사람이 되기 위해
오늘도, 어제보다 조금 더 지혜로운 나를 연습해 본다.
조금 몽글몽글하게, 그러나 단단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