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회를 다니다가 문득 든 생각들
나는 왜 전시를 볼까?
어렸을 때 전시회에 정말 많이 갔다. 부모님이 참 고생하셨다. 아무것도 모르는 애를 데리고 최선을 다해 많은 미술관과 박물관에 날 데려가셨고 알기 쉽게 설명도 해 주셨다. 귀찮다는 이유로 전시에 한창 싫증을 내던 초등학교 5학년부터 중학생 시절은 잠깐이었을 뿐, 고등학생부터 삼수생 시절까지 나에게 전시회는 소중한 도피처였다. 지긋지긋한 수능 세계를 벗어나 넓은 세계를 잠깐 구경 다녀오는 느낌으로 온갖 전시를 보러 다녔다.
그렇다면 건축학과에 온 지금은?
그리 원하던 예술세계에 한 발짝 발을 들인 나는?
다행히, 여전히 전시회가 좋다. 느릿느릿 걸으면서 작품 속에 담긴 작가의 생각을 엿보고 추측해 보는 게 재미있다. 이 사람은 왜 이런 작품을 만들어냈고 어떤 방법으로 이걸 만들어냈는지가 궁금하다. 요새는 심지어 내가 무언가를 그리고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것저것 도전하는 중이다. 그런데도 자꾸만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이 있다.
단지 재밌어서, 궁금해서 가는 게 다일까?
도피처라는 변명이 사라진 이후에 어떻게 보면 갈 이유가 없어진 거다. 오히려 지금이 더 자주 전시회에 가야 할 때인데, 요즘 들어 내가 왜 전시회에 가려 하는지를 잘 모르겠는 때가 많아졌다. 가고 싶지 않은 건 아니지만 의무감에 가려는 것 같기도 하다. 모래사장에 썼다가 금세 파도가 휩쓸어간 글씨처럼, 나를 스쳐 지나가는 여러 작가와 그 작품들… 도통 머릿속에 남지 않는 것이다.
이럴 거면 나는 왜 굳이 전시를 보러 가지?
이런 고민을 한다고 전시회를 무겁거나 거창하게 생각하는 것은 또 아니다. 오히려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다. 예술이 주는 위로의 힘은 생각보다 커서, 그걸 모두가 알았으면 하는 마음뿐이다.
전시장의 분위기 자체가 부담스러워서, 혹은 왠지 지루한 느낌이 들어 전시회에 가기를 꺼리는 사람들 이야기를 종종 들어서 이런 분위기를 좀 바꿔보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었다. 요새는 다행히도 그런 진입 장벽 자체를 낮추는 좋은 전시들이 많이 생겼고, 각종 SNS로 홍보도 잘 되고 있다. 가벼운 마음으로 가서 마음에 드는 작품이 하나라도 생기면 그걸로도 충분하다 생각한다.
그런데 전시회를 좋아하는 입장에서 이 단계를 벗어나니, 뭔가를 더 알고 싶은… 더 알아야만 할 것 같은 마음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면서 나는 왜 전시회에 가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게 되었다.
좋아한다 vs 잘 안다
좋아한다는 것과 잘 안다는 것은 같은 뜻이 아니다. 많이 볼수록 시야가 넓어지는 건 사실이다. 내가 만약 어렸을 때 그토록 전시를 많이 보러 다니지 않았다면 지금 이렇게 즐기기도 쉽지 않았을 것이라고 믿는다. 그렇지만 그렇게 오랫동안 가꿔온 취미라면 그걸 오래 지속해야 할 이유를 찾고 싶었다. 그래서 앞으로는 어떤 마음가짐으로 전시회에 가야 하나, 고민스러웠다.
예전엔 주로 작품을 보고 떠오르는 단순한 느낌들을 쌓아가며 봤는데 이젠 뭔가 좀 더 알아야만 할 것 같은 부담감이 생기는 것이다. 부담감의 출처는… 잘 모르겠다. 그냥 한층 더 깊이 알고 싶은 것 같다. 어렴풋이 알고 있던 각종 미술 용어, 시대 구분, 기법 등을 확실히 이해하고 작품들을 보면 더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해 보니 나는 결핍을 없애기 위해 전시를 보러 가는 것 같다. 지식이든, 감정이든 내 모자란 부분은 늘 전시를 통해 채워지고는 했기 때문이다.
전시하고, 전시되는 삶
미술과 음악을 비롯한 예술 분야가 너무 좋아서 한때는 온전히 예체능만을 꿈꿨고, 지금도 여전히 예술 분야에 대한 꿈이 깊다. 내가 다녔던 고등학교는 대학입시 준비로 인해 학년이 올라가며 예체능 과목이 사라지는 것이 아주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내 마음속 한 귀퉁이에는 여전히 예술에 대한 미련이 진하게 남아있어서 정말 힘들었다. 팍팍한 시간 속 유일하게 내가 파릇했던 시간이 일주일에 고작 한두 번 있던 미술이랑 음악 수업이었기 때문이다.
꿈을 이루기 위한 문턱도 높고,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길을 지나온 것 같아 내가 진짜 예술을 좋아하긴 하는지에 대한 회의감까지 들 무렵 한 가수를 좋아하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그의 취향이 너무 좋았다. 노래, 춤, 그림, 사진, 영상, 글로 본인의 예술적 역량을 펼치는 모습이 부럽고 너무 멋있었다. 내가 잃어버린 꿈을 자꾸만 끄집어내는 느낌. 이루지도 못할 꿈같아서 내가 예술을 싫어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 사람을 보면 볼수록 내가 진짜 예술을 좋아하는구나 확신이 들었고, 안 하던 일들을 하나씩 해보기 시작했다. 그림도 그려보고, 음악도 정말 다양하게 듣고, 영화도 많이 보고, 사진도 찍고, 글도 쓰고, 영상도 찍고.
특히 그가 다녀갔다는 여러 전시를 똑같이 따라가기도 했었다. 그 과정에서 전에는 몰랐던 ‘확신’이라는 걸 느낀 것, 이게 나에게 가장 중요한 일이었다. 그를 따라 전시회를 다니고, 여러 사람의 후기를 읽고, 내 느낌을 공유했다. 그러다 보니 전시회는 결국 작가의 삶을 전시하고, 관람객은 그 후기를 또 다른 곳에 공유하며 각자의 전시를 열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그의 전시를 보고 나만의 전시를 열기 시작한 것처럼, 그렇게 전시는 끊임없이 이어지고, 사람들의 삶에 천천히 전시의 가치가 녹아들어 간다. 그 점이 매력적이어서 나는 전시를 보러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