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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윤슬 Oct 02. 2024

내 미래를 걸고 시작된 삼각관계

나를 어떤 환경에 꾸준히 노출시키면 나는 그걸 원하게 될까?


건축학도가 마음에 찰랑였던 찰나를 글로써 기록합니다. 건축과 공연, 글쓰기를 늘 곁에 두고 살아가는 중입니다.


오늘은 내 프로필 소개글에 적어둔 내용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건축과 공연, 이 두 존재는 각자 명확한 이유로 나를 기쁘게도 슬프게도 만들고 있다. 그래서 어김없이 복잡하게 엉킨 마음을 글로 풀어보려고 한다.




첫 번째 상대, 건축


나는 건축학과다. 건축 하나만 바라보며 대학교에 왔고, 어느덧 3학년 2학기를 다니는 중이다. 크리틱에서 고칠 점이 이해될 때 나는 행복했다. 그런데 명쾌하게 그걸 고쳐본 기억은 없다. 그래도 몰입을 한 순간은 종종 있었다. 그러나 건축을 하며 일순간 확 행복했다거나 심장이 쿵쾅거린 적이 있었나 물어보면 미친 듯이 과거를 헤매게 된다. 촤르륵 시간을 펼쳐 샅샅이 뒤져봐도 없다. 잘 모르겠다. 건축은 나에게 시간이 지날수록 어려운 존재인 것 같다. 고백하기도 전에 매번 차이는 기분이다.




두 번째 상대, 공연


음악 없는 삶은 상상도 하기 힘들 만큼 나는 음악을 좋아했고, 자연스레 가수도 좋아했다. 음악과 가수를 좋아하는 일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공연은 수험생 신분인 나로서는 그림의 떡이었다. 세 번의 수능을 치르고 대학생이 된 나는 수험생활 때의 한을 풀 듯,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미친 듯이 공연을 다니기 시작했다. 공연을 가기 위해 공연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했고, 겁 많고 행동력이 없는 나지만 보고 싶던 공연이라면 주저 않고 먼 지방에 내려가기도 했다.


콘서트가 제일 좋지만, 사실 뮤지컬이든 클래식이든 발레든 가리지 않고 정말 즐겁게 봤다. 곁에 앉은 관객들 라인업까지 좋으면 거의 인생의 한 페이지가 될 정도로 기억에 남았다. 힘들 때 습관처럼 돌려보는 기억의 9할은 공연과 연관되어있다. 공연에 가기 전부터, 공연을 보는 중, 공연을 나온 후, 기억을 되짚으며 긴 글을 써 내려가는 과정까지 공연과 관련된 모든 일이 좋고 행복했다.


문제는 어느 순간 내 눈이 스태프분들에게 가 있다는 것이었다. 나는 단순히 공연을 보는 것만 좋아한 게 아니라, 공연을 만드는 일을 하고 싶었다. 공연장을 찾아갈수록 그 마음은 커져만 갔다. 내가 하고 싶은 게 아니라면 무슨 말로 이것을 설명해야 하지?


없다. 그런 말은.




나는 초등학교 때도 중학교 때도 방송부였다. 초등학교 때 나는 기계부 홍일점이었다. 매주 월요일 아침, 전교에 아침방송 예고를 한다. 단상을 놓고, 학교 로고가 새겨진 스크린을 내리고, 삼각대를 펼치고, 카메라를 연결하고, 애국가를 틀고, 조그만 방송실 구석에서 뚱뚱한 티브이로 모니터링을 하고, 다 같이 한 층씩 나눠 뛰어다니면서 전교에 방송이 잘 나가고 있는지 확인했다. 방송이 끝나면 모든 걸 정리하고 아침 조회가 다 끝난 교실에 들어갔다. 방송실을 들락거리는 것은 나의 일상이었고, 너무도 당연했고, 방송반이 주는 책임감은 언제나 행복했다.


그 기억을 잊지 못한 나는 중학교 때도 서류부터 면접까지 하나하나 준비해서 기어코 방송반이 되었다. 중학교 시절을 이야기할 때 방송반을 빼면 나는 시체였다. 점심방송 멘트를 쓰고, 선배에게 피드백받고, 마이크 들고 방송하고, 매달 학교 소식을 모아 뉴스를 만들고, 편집했다. 특히나 축제 때 방송제에서 드라마를 제작하고, 선생님들을 모아 광고까지 만들었다. 그걸 보며 돌아오는 친구들의 뜨거운 반응과 팀원들끼리 나누던 수고 했다 한마디… 난 그냥 그게 너무 재밌었다. 강당 꼭대기에 있는 방송실의 텁텁한 먼지향기가 그때부터 좋았던 것 같다. 그건 지금도 공연장에 갔을 때 맡을 수 있다. 곰팡이 냄새일 수도,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아무렴 상관없다.


원래도 모 아니면 도인 성격이긴 한데, 중학교 때 방송부에 너무 치중한 나머지 공부를 잘 안 했다. 그래서 부모님께서 고등학교 때도 방송반 하면 내쫓아버린다고 하셨다. 나도 심각성을 알고 있어서 안 들어갔다.


… 방송부 친구들을 부러워만 했다.


더 이상 무대 뒤편이 아닌 관객으로서 공연장을 찾는 나는 또다시 무대 뒤편으로 가고 싶어졌다. 방송부 시절의 그리움은 무서운 속도로 나를 잠식하고 있었다. 현실은 학생 때의 내가 겪었던 것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어려울 것이다. 그렇지만 현장의 이야기를 듣고 그 어려움을 알고 싶어서 찾아간 무대크루아카데미도 너무 재밌었고, 심장이 뛰었다.




나는 공연에 가는 것을 일종의 현실도피로 생각했다. 대학생이 된 나는 힘들 때마다 느닷없이 공연장에 가는 일을 좋아했다, 아니 그래야만 했다. 인간관계가 마음대로 안 풀릴 때, 지금 일이 재미가 없을 때, 해결책을 아무리 떠올려도 아무 생각할 힘이 없을 때… 되도록 내가 있는 현실과 멀지 않은 지점에서, 빠르게 다른 곳으로 도망가야만 했다. 그걸 가능하게 해 준 게 수험생 시절 미술 전시였다면, 요 몇 년 사이에는 공연뿐이었다.


힘들 때 공연이 필요했던 건지, 공연이 필요해서 힘든 건 지 헷갈리기 시작한 건 얼마 안 되었다. 검은 옷의 스태프분들에게서 눈길이 떨어지지 않는 내 모습을 깨닫고 나니 내가 이 일을 정말 하고 싶을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힘들어서 공연에 가려 했던 게 아니라, 그냥 공연장이 좋고, 그곳에 있는 내가 좋았다.


어떤 일을 하는 사람에게 그 일이 왜 좋냐고 물으면 솔직히 명쾌한 답이 돌아오진 않는다. 나는 좋아하는데 이유에 그냥 끌린다,라고만 말해도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지금 건축과 가장 가까이 있지만, 공연과 훨씬 친밀함을 느낀다.


이 일은 인간관계랑도 비슷하다. 가까이 붙어 있다면 친구가 될 가능성은 높지만, 가까이 있다고 무조건 친구가 되는 건 아니었다. 내가 어쩌다 얘랑 친해졌지 생각해도 결국 우린 친구가 될 사이었나 봐~ 얼버무리고 만다.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건 그냥 그렇게 될 뿐이었던 거다.


솔직히 미련 때문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내가 방송부에 있던 시간은 3년의 수능준비 때 산산이 부정당했기 때문이다. 나는 행복했지만 부모님은 내가 방송반에 치중했던 그 시간 때문에 내가 열아홉부터 20대 초반의 2년을 날리고, 부모님을 힘들게 했다고 말했다. 그런데 결국 나는 또 이 일을 하고 싶어졌다.






며칠 전 인스파이어 아레나 백스테이지 투어를 다녀왔다. 그곳의 방송실은 알 수 없는 향수를 불러일으키기도, 사람들에게 좋은 기억을 심어줄 수 있을 것 같은 신비감을 주기도 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내내 마냥 기분이 좋았다. 질문이 솟구치고 물어보고 답을 듣고 또 기어코 기억을 만들어 버렸다.


지금 나는 여전히 건축학과 학생이고 2학기 프로젝트는 공교롭게도 공연장 설계이다. 어쩌면 좋을까? 공연장에 가까워지면 건축과는 한 발짝 멀어지는 것 같다. 그게 솔직히 너무 무서운데 어떻게 할 도리가 없다. 피하던 게 아니라 좋아했다는 걸 알수록 더 어쩔 줄을 모르겠다. 그러면서도 결국 나는 공연장에 또 갈 것을 알고, 언젠가 그곳에 머무를 것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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